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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 지고 신부족주의 시대 온다

입력 : 2018-01-13 03:00:00 수정 : 2018-01-12 20: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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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의 시대/미셸 마페졸리 지음/박정호·신지은 옮김/문학동네 / 현대 신·정신·개인 자리에 집단이 터 잡아 / 문화·스포츠·종교 관심사 따라 소집단 탄생 / 그들만의 네트워크 구축… ‘함께 하기’ 공유 / 연예인 팬동호회·극우성향 ‘일베’도 한 사례 / 저자, 30년 전 이미 현대 사회 현상 예견 / "신부족주의는 문화 현상이자 감정의 혁명"
파리 제5대학 명예교수로 있는 저자 미셸 마페졸리는 “현대사회는 개인주의를 넘어 새로 부족 사회로 진입하는 단계에 있으며, 사회 현상에 대한 갖가지 대응책을 이런 차원에서 재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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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의 시대’는 현대사회 분석을 위한 필독서로 꼽힌다. 프랑스에서 1988년 출간된 이 책은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 등 30여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게 일반적 서평이다. 지금의 사회 현상을 이미 30년 전에 예견하고 이를 사회학으로 정립한 저자의 통찰력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파리5대학 명예교수인 저자 미셸 마페졸리(73)는 포스트모던 사회학의 기수로 불린다. 20세기 유럽의 대표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1929~2007년)의 뒤를 잇는 사회학자로 명성을 얻고 있다.

저자는 통상 지식인들이 연구대상으로 삼지 않았던 분야에 주목하면서 현대 사회의 흐름을 읽어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개인주의의 종언을 고한다. 개인주의는 사라지고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어다는 것. 18세기 근대 이전이 공동체 사회였다면 근대는 개인의 시대였다. 이어 포스트모던 대중사회에 새로운 ‘부족’이 출현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씨족이나 혈족 같은 고대적 의미의 부족이 아니다. 문화, 스포츠, 성(性), 종교 등 다양한 관심사에 따라 불규칙하게 재편되는 소집단을 가리킨다. 새로운 ‘부족의 시대’라는 것.

다시 말해 오늘날 대중사회의 인간은 개인주의를 버리고 소집단들로 뭉치면서 거대한 연대를 형성하고 있다. 록과 테크노 음악, 외모지상주의, 감각, 연금술 등을 매개로 하는 사회 일상이 그 사례들이다. 이는 언론계, 학계, 법조계에도 존재한다. 때때로 학연과 지연에 따른 편 가르기 문화로도 나타난다. 집단이나 부족을 통해 집단적인 분노와 슬픔, 열광을 분출하며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같은 신부족주의는 사회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긍정적인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일종의 일상에 대한 긍정이다. 저자는 이런 현대인을 일컬어 근대적 주체, 즉 합리적 성인이 아닌 ‘영원한 아이’로 규정한다. 삶의 아노미적인 것들, 유희적이고 무질서하며 행위자인 대중은 모순된 혼합물과 같다. 영원한 아이들의 집단과도 같다. 하지만 여기에서 창조적 힘이 들끓고 분출한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저자는 “대중이 가진 창조성의 가장 완성된 형태는 현대 소집단들의 네트워크 구축”이라고 했다. 타인을 인지하고 경험하는 토대는 감각적인 것 내지 ‘함께 하기’이다. 함께하기는 서로 접촉하도록 해주며, 즐거움은 군중 혹은 집단의 즐거움이다. 연예인을 쫓아다니는 팬들이 만든 동호회나 극우 성향 ‘일베’는 부족의 시대를 입증하는 사례들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부족에 가입해 소속감을 느끼며 자아를 형성한다.

저자는 이런 현상들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했다. 저자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현상이기에 앞서 부족주의는 문화적 현상”이라면서 “진정한 정신적 혁명. 가공되지 않은 원시적이며 천연의 삶이 안겨주는 희열을 강조하는 감정의 혁명”이라고 풀이했다.

아울러 저자는 “젊은 세대의 순응주의, 집단 혹은 부족 안으로 결집하려는 열정, 다양한 유행, 외모의 유니섹스화 같은 모든 현상은 분명하다”면서 “명확히 구별되지 않는 대중 속으로 개인 관념이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나는 역사가들에게 묻는다”면서 “인간사의 변천 속에서 중대한 단절 즉 혁명, 데카당스, 제국의 탄생이 있을 때마다 새로운 생활 스타일들이 늘어나지 않았던가”라고 반문한다.

저자는 결론에서 “신(신학), 정신(철학), 개인(경제학)은 집단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인간은 더 이상 개별적으로 고려되지 않는다”면서 “나는 신부족주의라는 가설을 공식화한다. 다양한 형태의 대중 속에는, 사회 분석가들이 습관적으로 표명하는 동일성의 명령과 예측에서 벗어나는 수많은 부족이 존재한다”고 했다. 현재 온라인상에서 펼쳐지는 움직임을 보면 이 같은 저자의 주장을 수긍할 수 있다.

다만 오프라인에서 1인 가구가 증가하고 혼자 밥을 먹거나 혼술, 혼행 같은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개인주의가 진정 쇠퇴할 것인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저자는 현대사회의 흐름을 설명하면서 다소 난해한 사회학적 용어와 이론을 적용했다. 전공자가 아닌 경우 읽기에는 조금 부담스럽다. 하지만 포스트모던 담론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며 사회학적 담론을 이끌어내는 저자의 필력은 탁월하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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