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세계포럼] “서울대 가면 망할 것 같았다”

관련이슈 세계포럼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18-01-10 19:29:51 수정 : 2018-01-10 19:29:5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미네르바대학의 한국 학생이 캠퍼스 없는 ICT 기반 대학에서 혁신교육 받은 뒤 쏟아낸 우려
우리 고등교육 절벽 개혁해야
영재고교 졸업생 김모군은 2년 전 서울에서 미국 미네르바대학의 설립자 벤 넬슨을 만났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 합격한 그는 미네르바대학의 면접에 갈지를 고민했다. 넬슨이 왕복비행기표를 끊어주며 인터뷰를 권했다. 김군은 최종적으로 혁신을 앞세운 대학을 선택했다. 그는 대학 2학년 때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으로부터 취업 제안까지 받았다.

벤처 자본을 투자받아 강의실, 연구실은 물론 캠퍼스조차 없이 설립된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이 대학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2014년 신입생을 처음 뽑았는데 전 세계의 수재들이 몰려들면서 입학경쟁률이 100대 1을 넘었다. 미국 기업들이 입도선매식으로 졸업예정자들을 스카우트하고 있다. 

한용걸 논설위원
미네르바대학과 양해각서(MOU)를 맺고 지난해 가을학기에 교환학생 180명을 받았던 한양대는 생소한 교육방식을 목격했다. 교수와 학생 20명이 컴퓨터 화면에 동시에 얼굴을 들이밀고 토론했다. 학생들은 사전에 교수가 제시해준 SSCI(사회과학논문 인용지수)·SCI(과학기술논문 인용지수)급 논문 두 편을 읽고 수업에 참여했다. 교수는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계속 던졌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내놓았다. 이들은 집에서 예습한 뒤 토론식 강의에 참여해 비판적 사고를 발전시켜 나갔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집에 가서 복습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했다. 이른바 ‘플립러닝(Flipped learning·역순학습)’이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분석, 유추, 종합 능력을 키워갔다. 창의적 역량을 강화하고 도전정신을 배양하기 위한 교육법이었다.

학생들은 샌프란시스코 베를린 서울 등 세계 7개 지역을 다니면서 체험 교육을 한다. 현지에서 인턴을 하면서 문제점을 골라 답을 찾아낸다. 19세기 영국 부잣집 자제 교육방식인 ‘그랜트투어’를 현대화한 것이다. 졸업생들이 취업했을 경우 맞닥트리게 되는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갖추도록 이런 프로그램이 도입됐다. 지식을 전수받는게 아니라 지식을 활용하는 데 관심을 갖는다고 한다. 한양대 김성제 교무처장은 “지식교육과 역량교육의 완벽한 결합”이라고 평가했다.

학생들은 기숙사, 호텔, 카페에서 인터넷을 통해 수업에 참여했다. 학교는 숙박비(1만달러)를 사전에 받지만 학생들이 호텔 등을 선택해 돈이 부족할 경우 보조했다. 교육비는 기존 대학의 4분에 1에 불과하다. 정보기술(IT)과 인공지능(AI) 등 4차산업을 활용해 인터넷상에서 학생관리가 가능하도록 완벽한 플랫폼을 구현해 놓았다. 컴퓨터 화면에서 토론에 열심히 참여한 학생에게는 빨간불이 켜지고 말이 없는 학생에게는 녹색불이 켜지도록 했다. 다자간통신이 가능토록 최적의 망 연결속도를 내는 지역이 사전에 지정돼 있었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을 본떠 역량교육을 도입한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올해 시행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창의융합형 인재양성과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지 않는 통합 과정이 특징이다. 올해 고 1년생들에게 적용되는데 이들이 대학 진학 때 역량교육에 대한 평가를 받게 된다. 그런데 교육현장에서 제대로 준비됐는지 의심스럽다. ‘창의력에 대한 정의’를 학생들에게 암기시키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IT 강국이라면서 왜 미네르바대학 같은 교육기관이 탄생하지 못하는 것일까. 제약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교육 1시간 인정을 받기 위해 녹화된 강의 25분을 틀어야 하는 등 구석기시대 규제가 널려 있다. 행정 지원도 형편없고 재정은 말할 나위 없이 열악하다. 반값등록금을 앞세운 교육정책이 가로막고 있는 한 새로운 시도가 이뤄질 리 없다.

국경을 넘나드는 고등교육의 혁신 파고를 보면 한국의 미래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인재 양성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지 않으면 국력까지 쪼그라들게 된다. 김군은 “서울대에 들어가면 망할 것 같았다”고 했다고 한다. 김군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실명을 밝히지 않는다.

한용걸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