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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정성으로 버무린 진수성찬 … “밥심으로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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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1-09 19:04:08 수정 : 2018-01-09 21:5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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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선수촌 선수식당 가보니 어릴 적 맛있는 음식을 원 없이 먹겠다는 일념으로 ‘피자가게 사장’이 되겠다는 꿈은 군대 취사병이 되면 산산조각이 난다. 새벽에 일어나 밥을 짓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는 건 뒷전이다. 수백명, 많게는 수천명에 달하는 인원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밤을 새우다 보면 식판만 봐도 저절로 몸서리가 쳐진다.

9일 점심시간이 막 지난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 선수식당은 그야말로 군부대 이상의 애환이 서려 있었다. 녹초가 된 상태로 식사 뒷정리를 하는 조리사들은 신경을 잔뜩 곤두세워 눈빛이 매서웠다. 당장 오후 6시부터 시작되는 저녁시간에 맞춰 쉴 틈도 없이 식사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수촌 평균 주거 인원인 600명을 기준으로 하루 세끼 1800식을 소화해야 하는 반면 조리 인력은 50명 남짓. 단순 계산으로 하루에 1명이 36식을 책임져야 하는 ‘지옥’의 일정이다.

이처럼 근무 환경이 열악해도 이를 악물고서 선수촌 선수식당을 진두지휘하는 ‘삼총사’가 있다. “나는 굶어도 선수들 식단은 책임진다”고 말하는 한정숙(54) 영양사, 신승철(57) 검식사, 황대진(58) 조리실장이다.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맛좋기로 소문난 선수촌 식단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렇다. 우선, 한 영양사가 2~3일 단위로 꼼꼼하게 식단을 짜면 식재료 발주가 시작된다. 이후 들어온 식재료는 신 검식사의 예리한 눈을 통해 엄선된 것으로만 걸러지고, 황 조리실장을 필두로 조리사들이 식단에 따라 음식을 만든다.

언뜻 간단해 보이지만 보통 작업은 아니다. 선수 식비 예산이 1인당 하루 3만8000원으로 책정돼 비용을 맞춰야 하는 데다 선수들의 다양한 입맛을 고려해 매번 다른 메뉴를 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강훈련을 거듭하는 선수들은 일반 성인의 하루 권장량을 2배 이상 뛰어넘는 5500~6000㎉를 섭취한다. 입맛이 없는 선수들마저 억지로 먹여야 하는 상황이니 랍스터, 한우 스테이크 같은 특식도 틈틈이 차린다. 이쯤 되면 “선수촌 밥이 그리워 다시 운동을 시작하고 싶다”는 은퇴 선수들의 어리광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신승철 검식사, 한정숙 영양사, 황대진 조리실장(왼쪽부터)이 선수들의 선전을 응원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진천=서필웅 기자
진천 ‘삼총사’는 1984년 진해선수촌이 개촌하면서부터 태릉을 오가며 선수들의 식단을 책임졌다. 지난해 9월 진천선수촌이 공식 개촌하면서 일터를 이곳으로 옮겼다. 한 영양사는 “어느 종목이든 골고루 균형 잡힌 식사가 최우선이다. 선수들의 훈련 패턴에 따라서 지구력이 필요한 선수는 탄수화물 위주로, 체중관리가 필요한 선수들에게는 가벼운 음식을 마련한다”고 설명했다. 황 조리실장도 “방부제가 없이 음식을 제공하다 보니 빵 하나도 우리가 직접 만든다. 가공품은 철저히 배제하고 되도록 자연식으로 간다. 손이 많이 드는 작업이지만 선수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감수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뷔페식으로 식사를 주기 때문에 반찬의 가짓수도 상상 이상이다. 이날 주식인 밥을 제외하고도 아침에는 22가지, 점심은 16가지, 저녁은 15가지의 반찬이 나왔다. 이탈리안 스파게티 같은 양식부터 중식인 부추잡채, 미소된장국을 포함한 한식까지 국가별 대표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다.

신 검식사는 “신라, 쉐라톤 호텔처럼 특급호텔의 식단을 벤치마킹할 때도 있다. 또한 튀김, 국, 제과류 등 음식 종류에 따라 전담 조리사를 따로 둬 최상의 맛을 내려고 한다. 하지만 내 가족이 먹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만드는 ‘정성’이 선수들의 호평을 받는 비결이다”고 밝혔다. 이런 ‘정성’ 덕분에 선수촌 선수식당은 귀화선수들도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남자 아이스하키 수문장 맷 달튼(32) 등 한식의 매운맛에 익숙지 않은 선수들도 갈비찜, 잡채를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여자 아이스하키의 새러 머리(30·캐나다) 감독은 특식으로 나온 랍스터를 사진으로 담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올리기도 했다.

황 조리실장은 “선수는 휴일이 있어도 우리는 하루 9시간씩 365일 일한다. 사명감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내 특제 ‘플레인 요거트’를 좋아하는 선수들이 많다”며 함박웃음을 지은 뒤 조리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저녁을 알리는 구수한 밥 내음이 장내에 퍼졌다. 이날은 달콤한 고구마밥과 불닭이 구미를 당겼다. 식당은 고된 훈련 일정을 마치고 우르르 몰려든 선수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면서 한 영양사 등은 길었던 식단과의 사투를 마무리했다.

진천=안병수 기자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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