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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 비틀어진 인체 조각에 담긴 실존주의 철학

입력 : 2018-01-09 20:38:19 수정 : 2018-01-09 20:3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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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자코메티 작품 첫 국내 전시 / 금방이라도 부서질것같이 여윈 몸 / 그럼에도 굳건하게 내딛는 발걸음 / 걸작 ‘걸어가는 사람’ 등 120점 선봬 “인간의 삶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마 그건 딱 한번 죽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인간이 두 번 죽을 수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더 진지하고 진실해질까라는 상상을 해 봅니다. 가령, 한번 죽고 두 번째 삶을 살아가는 인생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의 삶을 에워싼 그 많은 부질없는 것들을 걷어 내버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자신을 진실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선물 받은 겁니다. 남의 시선에서 벗어난 시간인 거죠. 또한 우리 집 앞에 무심히 있던 나무들이 다시 보이고,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는 기적이 일어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난 매일매일 죽고 매일매일 다시 태어나는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조각들도 나처럼 매일매일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실존적 인간을 형상화한 ‘걸어가는 사람’ 석고 원본. 이 작품의 브론즈 에디션 6점 중 하나가 2010년 경매에서 1158억원에 팔렸다.
그리스 로마 등 서구 조각사의 온갖 치장을 걷어낸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의 첫 국내 전시가 오는 4월 15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다. 오직 뼈대만 남은 것 같은 자코메티의 인체조각 작품들은 실존주의 철학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걸어가는 사람’은 2010년 소더비 런던 경매에서 1158억원에 팔렸고, 2015년 크리스티 뉴욕경매에선 ‘가리키는 사람’이 1575억원에 낙찰돼 세계에서 가장 비싼 조각으로 등극했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가느다란 철사 같은 형상, 부처의 고행을 닮은 흉상은 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유럽인, 나아가 세계인이 통찰한 인간의 초상이다. 인간에 대한 그동안의 이데올로기들이 고작 기름덩어리들였음에 직면한 것이다.

최소한의 선과 형태가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까지의 허약함을 연상시킨다. 사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물은 ‘연약한 모호함’ 속에 사라지기 마련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걸어가는 사람’ 등 석고 원본 15점을 비롯해 드로잉, 판화, 회화 등 120여점이 출품됐다. 자코메티 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것들이다. 스위스 태생의 자코메티가 본 것은 인간이 자신의 몸무게를 잃어버리고 가볍게 걷는 것이다. 죽거나 의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볼 수 없는 가벼움이다. 절대 고독, 인간 실존의 모습이다. 생전에 그가 남긴 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걸어가는 사람, 우리는 실패하였는가? 그렇다면 더욱 성공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그 모든 걸 포기하는 대신에 계속 걸어 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좀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만약 이것이 하나의 환상 같은 감정일지라도 무언가 새로운 것이 또다시 시작될 것이다.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는 계속 걸어 나가야 한다.” 시지프의 신화를 연상시키는 인간 실존이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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