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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일, 이 농약같은 머스마야. 너를 우야면 좋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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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1-05 06:00:00 수정 : 2018-01-05 01: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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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프로배구 삼성화재의 세터 황동일(32)은 감독이라면 한 번쯤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은 선수다. 세터로는 보기 드문 1m94의 장신을 자랑해 토스 높이가 좋다. 공을 밀어주는 힘도 좋아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힘있고 높은 토스로 공격수들의 타점을 제대로 살려줄 수 있다.

키가 큰 세터의 장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리시브가 다소 길어 넘어가는 공을 타점을 앞세워 오버네트 전에 잡아낼 수 있다. 황동일은 공격력도 빼어나기 때문에 전위 포지션일 때는 그런 공을 2단 패스페인트나 오픈 공격으로 처리해내며 상대를 깜짝 놀라게 할 수 있는 능력도 지니고 있다.

세터 치고는 장신이기 때문에 블로킹 능력도 준수하다. 대부분의 세터들은 신장이 작기 때문에 모든 팀들은 세터가 전위로 올라올 경우 그 코스로 공격을 노리는데, 삼성화재를 상대할 땐 황동일을 우습게 봤다간 큰 코 다친다.

그러나 황동일은 2008~09시즌 데뷔 이후 ‘저니맨’ 신세를 면치 못했다. 우리캐피탈에 지명되자마자 9일 만에 LIG손해보험(現 KB손해보험)으로 트레이드됐고, 이후 대한항공을 거쳐 삼성화재에 오게 됐다. 분명 한 팀의 중심이 되어 팀을 이끌 기회를 주어진 적도 있었지만, 결국 기회를 잡지 못했다. 세터 자리에서 밀려나 라이트나 센터 등 타 포지션을 보기도 했다.

끝내 꽃피우지 못하고 ‘만년유망주’로만 남을 것 같았던 황동일은 2017~18시즌을 앞두고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잡았다. 삼성화재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주전 세터 유광우가 FA 박상하의 보상선수로 우리카드로 떠난 것. 대한항공에서는 한선수, 강민웅(現 한국전력), 삼성화재에서는 유광우까지 1985년생, 한 살 위의 세터들에게 밀려 백업세터로 머물던 그에게는 더 없이 좋은 기회였다.

물론 우려는 있었다. 황동일이 그간 한 팀의 공격을 조율하는 주전세터가 되지 못한 것은 신체조건이나 기량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바로 심리적인 이유였다. 세터는 어떤 상황이 와도 냉철한 상황 판단으로 팀 공격을 이끌어야 하지만, 황동일은 잘하다가도 승부처만 되면 공격 코스 선택이 아쉽거나 토스가 흔들리곤 했다.

올해 삼성화재 사령탑으로 부임한 신진식 감독은 황동일에게 주전 세터를 맡기면서 ‘침착해라’, ‘흥분하지 마라’, ‘기본에 충실해라’ 등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황동일은 신 감독의 믿음에 부응했다. 삼성화재는 시즌 첫 2경기를 모두 패하며 불안하게 시작했지만, 이후 파죽의 11연승 행진을 달리며 독주 태세를 갖추는 듯 했다.

그랬던 삼성화재가 삐걱거리고 있다. 지난달 6일 현대캐피탈과의 올 시즌 세 번째 V-클래식에서 패하며 12연승에 실패한 이후 좀처럼 연승을 달리던 때의 위용을 뽐내지 못하고 있다.

삼성화재와 한국전력의 2017~18 V-리그 남자부 4라운드 경기가 펼쳐진 4일 수원체육관. 한국전력은 이전 4경기를 모조리 승리를 쓸어담아 상승세를 달리고 있었고, 삼성화재는 새해 첫날 시즌 네 번째 V-클래식에서 1-3으로 패하며 2연패에 빠진 상황이었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신진식 감독은 “오늘 경기에 지면 첫 3연패”라면서 “오늘 승점 3을 온전히 따내면 선두로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은 신경쓰지 않는다. 다만 현대캐피탈과의 선두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최대한 붙어가야 한다. 그래서 오늘 연패를 끊어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다.

그러나 신 감독의 바람과는 달리 삼성화재는 연패를 끊어내는 데 실패했다. 한국전력은 팀 공격의 58.2%를 책임지면서도 53.52%의 공격성공률로 40점을 몰아친 펠리페를 앞세워 풀세트 접전 끝에 3-2(25-21 23-25 25-27 25-20 15-11) 승리를 거뒀다. 전광인은 블로킹 5개를 엮어내며 61.9%의 고감도 공격성공률을 뽐내며 19점을 올리며 뒤를 든든히 받쳤다.

반면 삼성화재는 발목과 어깨 상태가 좋지 않은 박철우가 2세트에 빠진 뒤 4세트에 복귀하는 등 들쑥날쑥한 컨디션을 보이며 10점에 그쳤고, 박철우의 부재 탓에 팀 공격의 절반(50.38%) 이상을 책임진 타이스가 4세트부터 체력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타이스는 35점을 올리긴 했지만, 범실이 16개나 됐다. 이날 패배로 삼성화재는 승점 1을 추가하는 데 그쳐 승점 40(14승7패)로 현대캐피탈(승점 42, 13승7패)으로부터 선두 자리를 탈환하는 데 실패했다.

표면적으로는 양팀 쌍포의 맞대결에서 희비가 엇갈린 듯하지만, 이날 삼성화재의 숨은 패인은 경기 내내 공격 코스 선택과 토스 구질이 흔들렸던 황동일의 부진이 컸다. 1세트 초반 삼성화재가 좋은 분위기를 이어갔지만, 박철우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8-6 상황에서 전광인의 1인 블로킹에 막힐 정도였다. 그랬다면 승부처에서 박철우의 활용보다는 타이스쪽에 더 집중해야 했다. 그러나 1세트 후반 21-21 동점 상황에서 박철우를 활용하다 전광인의 블로킹에 잡혔고, 21-24에서도 박철우가 또 다시 전광인에게 잡히면서 세트를 내주고 말았다.

2세트는 비교적 무난하게 경기를 풀어나갔던 황동일은 세트 후반 ‘공격 본능’을 주체하지 못해 역적이 될 뻔 했다. 24-22 세트포인트 상황에서 상대 세터 이호건의 토스가 그대로 넘어온 것을 다이렉트킬로 연결했으나 공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상대코트와는 훨씬 먼 곳에 공이 떨어졌다. 24-23 한 점차. 이후 황동일은 이어진 공격에서 에이스 타이스에게 올리지 않고 김규민의 속공을 활용했다가 상대 블로커에게 유효블로킹을 허용했다. 상대의 공격을 가까스로 걷어올려 타이스의 오픈으로 세트를 따냈기에 망정이지 2세트를 내줬다면 온 몸으로 비난의 화살을 맞을 뻔 했다.

이후에도 황동일의 경기 운영과 토스는 흔들렸고, 그럴 때마다 삼성화재의 경기력은 요동쳤다. 결국 황동일은 4세트 2-4에서 신인 김형진과 교체돼 4세트 내내 벤치를 지켰고, 5세트는 주전으로 대부분 경기를 운영했지만 흔들린 경기력은 돌아오지 못했다. 8-9에서 타이스에 올린 백어택 2개가 아웃되고, 네트에 걸려 8-11로 벌어졌고, 그대로 경기를 끝나고 말았다.

경기 뒤 신진식 감독은 황동일을 거명하진 않았다. 신 감독은 “연승을 질주할 때는 선수들 간에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니다”라면서 “전체적으로 선수들 간의 플레이가 안 맞고 있다. 그러다 보니 2단 연결도 흔들린다”고 분석했다. 팀이 흔들릴 때 중심을 잡아줘야 할 선수가 바로 세터임을 감안하면 황동일이 흔들리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결국 삼성화재가 연패를 끊고 시즌 초반의 기세를 회복하려면 황동일의 경기 운영이 되살아나야 한다.

과거 한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김수현)이 여자 주인공(수지)을 향해 “농약같은 가스나”라는 말을 던진다. 농약은 치명적인 독이기에 멀리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멀리할 수도 없는 것이다. 삼성화재와 신진식 감독에게도 황동일은 ‘농약같은 머스마’ 아닐까. 잘 쓰면 팀을 훨훨 날게 할 수도 있지만, 흔들리면 연패에도 빠지게 하는 남자. 황동일 , 이 농약같은 머스마야 , 너를 우야면 좋노 !”... 황동일 , 그의 반등이 시급하다 .

수원=남정훈 기자 che@segye.com
사진 제공=발리볼코리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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