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의 한 제조업체에 다니는 김모(35)씨는 지난해 5월 징검다리 연휴에 연차를 쓰고 아내와 일본 온천여행을 다녀왔다. 결혼한 지 5년만에 제대로 된 첫 여행이라며 아내는 좋아했다. 김씨는 그런 아내에게 미안하면서도 회사 사람들 다 일하는데 떠나는 여행이 편치 않았다. 그는 “상사에게 연차 이야기를 했더니 납품 물량이 밀려있는데 다음에 가면 안 되겠느냐고 설득을 하더라”며 “물러서지 않고 재차 부탁을 하자 ‘그럼 다른 사람들은 안 쉬고 싶겠냐’고 면박을 줬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지난해 부여받은 연차 16일 중 일본여행으로 2일을 썼을 뿐, 나머지 연차 14일은 결국 쓰지 않았다.
법정공휴일이 69일로 1990년 이후 가장 많고 주말을 포함한 ‘빨간 날’이 모두 119일인 올해. 휴일 사이에 낀 평일에 연·월차 휴가를 내면 ‘황금연휴’가 줄줄이다. 많은 이들이 즐거운 상상에 빠져 들 만하지만 온갖 타박을 견뎌야 휴가를 쓸 수 있는 김씨와 비슷한 사정의 직장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에 가깝다. 상대적 박탈감에 쓴 입맛을 다셔야 할 일이 더 많은 한 해가 될 지 모른다.
4일 통계청의 ‘2017 일·가정 양립 지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휴가는 1년에 1주일도 안 되는 평균 5.9일(공휴일 미포함)이다. 15세 이상 전국 거주자를 상대로 2016년 9∼10월에 과거 1년간 휴가를 사용한 기간을 조사한 결과인데, 1년 동안 단 하루도 휴가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응답한 비율이 35.8%에 달했다. 즉, 국민 3명 중 1명 이상이 1년 동안 단 하루의 휴가도 없었던 것이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만 20세부터 59세까지 경력 1년 이상의 임금 근로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도 연간 휴가 사용일이 5일 미만이라는 응답(35.3%)이 전체 응답 중 가장 높았다. 이 중에는 연차휴가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응답자도 11.3%에 달했다.
연차 만료 6개월 전에 회사가 직원들에게 연차 사용을 촉구하고 근로자가 사용하지 않은 경우에는 회사의 금전보상의무가 면제되는 ‘연차사용촉진제도’도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높다. 충북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안모(39)씨는 “회사에서 연차를 소진하라고 권고한다지만, 연차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직장인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이 제도 때문에 연차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악용되는 사례가 상당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부터 바꿔야 나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리 사회에는 오래 일해야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평가하고, 업무효율보다 업무시간을 더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한인임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원은 “노동자의 휴가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취약 사업장에 대해 규제를 강화하고, 휴가를 완전히 소진하면 세금 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다방면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선영 기자 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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