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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지구의 미래] 땅·하늘·물, 무엇이 떠오르나요?

입력 : 2018-01-03 19:01:10 수정 : 2018-01-03 21:5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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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지렁이·구름 말할 때… 어른들은 집값·먼지 떠올려요 / 메말라 가는 환경감수성… 나이들수록 경제적 가치 추구
눈앞에 땅이 있습니다. 아직 포장되지 않은 공터군요. 흙이 날리는 땅을 보고 있자니 무엇이 떠오르나요?

땅 위를 부지런히 기어가는 개미의 모습이 그려지나요, 아니면 택지 개발이나 부동산 투자가 생각나나요?

사람이 자연에 기대 살아가는 한, 자연을 둘러싼 보존과 이용가치는 맞설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땅과 강과 하늘에 깃들인 생명을 먼저 보고, 어떤 이들은 개발에 따른 경제적 이득과 편익에 더 큰 가치를 두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요. 세계일보는 새해를 맞아 ‘환경을 바라보는 시선’을 엿볼 수 있는 가벼운 설문을 해봤습니다. 
◆흙과 지렁이에서 투기와 부동산으로

설문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자연을 대표하는 땅(토지), 하늘(공기), 물(강/바다), 이렇게 세 가지 단어를 제시하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세 개를 적도록 한 것이죠. ‘자유연상’이라고 하는 방법입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잠재된 정신세계를 파악하기 위해 고안해낸 것인데, 이번 설문은 자연과 관련해 연령대별로 관심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환경감수성’은 어떻게 변하는지 알아보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다만 답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이러한 목적은 사전에 밝히지 않았습니다.

설문에는 서울 양목초등학교 2학년, 김포 장기중학교 1학년, 인천 제물포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참여했고 성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는 인크루트 협조를 받았습니다. 응답 내용은 통계 프로그램 ‘R’로 분석했습니다.

결과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흥미로웠습니다. 학생과 어른의 응답에서 뚜렷한 차이가 나타난 것이죠.

가장 극명한 차이는 ‘땅’이라는 키워드에서 나타났습니다.

초등학생들은 흙(31회), 풀(17회), 나무(13회), 지렁이(13회), 개미(9회), 꽃(9회) 등의 순으로 대답했습니다. 모두 자연 상태의 땅과 관련된 것들이죠. 도로, 건물, 아파트, 지하철 등 이용가치에 관한 응답도 있었지만 다 합쳐도 18회에 그쳤습니다. 총 응답수(244개)의 7.4% 수준이죠. 중학생과 고등학생 답변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굳이 차이를 꼽자면 고등학생 중에는 꼬마돌(포켓몬스터 캐릭터. 암석 포켓몬), 롱스톤(돌뱀 포켓몬) 같은 게임 캐릭터와 맨틀, 4대 원소 같은 교과 용어를 떠올린 경우가 있었다는 것 정도죠.
어른들은 지렁이, 나무, 개미에 더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투기(22회), 부동산(17회), 흙(16회), 아파트(13회), 땅값(8회), 강남(7회), 농사(7회), 투자(7회), 건물(6회), 식물(6회) 등으로 상위 10개 단어 중 7개가 경제적 가치에 관한 것이었죠. 총 301개 응답 가운데 투기, 아파트처럼 부동산 관련어가 무려 139개(46.2%)에 달했습니다.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집값, 분양, 임대소득, 벼락부자, 역세권, 원룸, 재건축 등 다양한 단어가 쏟아져 나왔죠. 흙, 식물, 나무, 산, 새싹처럼 자연 그대로의 것은 49번 언급되는 데 그쳤습니다.

‘하늘’을 접했을 때 떠오르는 심상도 어린이·청소년과 성인이 서로 달랐습니다.

초·중·고교생은 구름, 비행기, 새, 해, 바람, 파란색처럼 직관적인 단어를 주로 떠올렸습니다. 공기청정기, 매연, 이산화탄소처럼 대기오염을 언급한 경우도 있었지만 소수에 그쳤습니다. 총 771개 응답 가운데 23개(3.0%)에 불과했으니까요. 콧구멍이나 프테라노돈(익룡)이 떠오른다는 귀여운 답변도 있었습니다. 고등학생 중에는 꿈, 희망, 길, 공허함, 이상, 정의처럼 진로·미래와 관련된 고민을 떠올리는 경우도 제법 있었죠. 
하지만 어른들은 하늘을 보며 익룡이나 꿈과 희망을 떠올릴 여유가 없었습니다. 구름(28회), 비행기(25회)는 여전히 많았지만 새, 태양, 파란색을 밀어내고 미세먼지(34회), 황사(12회)가 상위권에 진입했습니다. 미세먼지와 황사를 비롯해 매연, 대기오염, 초미세먼지, 마스크, 스모그 등 대기질 연관어들은 모두 66차례나 언급됐죠.

‘물’은 비교적 연령별 차이가 크지 않았습니다. 초등학생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물 하면 ‘물고기’를 가장 많이 떠올렸습니다. 배, 수영, 그리고 최근 유행 때문인지 낚시도 전 연령대에서 많이 나왔습니다. ‘갓파’를 떠올린 기발한 초등학생도 있었습니다. 갓파는 정수리에 물이 마르면 죽는 일본 요괴이자 만화 캐릭터입니다. 
그런데 유독 ‘이 단어’는 어른들만 언급했습니다. 그것도 무려 3위를 기록할 정도로 높은 빈도로 말이죠. 바로 ‘4대강 사업’입니다. 4대강과 더불어 낙동강, 녹조, 오염, 수질오염, 보 등 연관어를 떠올린 경우도 많았습니다.

◆환경감수성이 높으면 실천도 잘할까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어린아이들이나 청소년은 자연이 가진 본래 가치에 방점을 찍지만 어른들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그 맥락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윤 교수는 “도시라는 공간이 자연과 순수하게 만나기 어렵다보니 어른들은 본래 가치와 멀어지게 되는데, 환경을 생각한다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게 숙제”라고 지적합니다.

자연 본연의 가치를 존중하고 인간활동이 자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세심하게 따지는 사람을 ‘환경감수성이 높다’고 하죠. 과거에는 환경에 대한 지식을 높이면 환경감수성이 올라가고, 친환경적인 생활방식을 택할 거라고 믿었죠. 그러나 실제론 그렇지 않았습니다. 환경감수성이 비교적 높다고 생각하는 유럽에서도 말이죠.

예를 들어 지난해 영국 정부는 가정용 태양광발전 보조금을 65% 깎았는데, 그러자 태양광전 용량이 두 달 만에 3분의 1로 줄기도 했죠. 즉 환경감수성은 친환경적인 태도를 이끌어내기 위한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럼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미국과 유럽에서는 친환경적인 생활방식을 유도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수십년 전부터 연구해왔습니다. 그중 2014년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3만여명의 기후변화 인식 조사 결과를 분석한 내용을 보면 젊은 세대일수록 환경 문제에 관심을 보였지만 가장 적극적으로 친환경 생활을 실천하는 연령대는 45∼56세 중장년층이었습니다.

결국 적극적 실천에 중장년층 참여율이 가장 높은 데는 이들의 넉넉한 주머니 사정과 관련이 있으리란 분석입니다. 환경감수성을 적극적인 실천 단계로 끌어올리려면 경제적 여력도 따라줘야 한다는 뜻이죠.

환경 지식도 중요한 요소입니다만 디테일이 숨어있습니다. 기후변화의 ‘원인’에 대한 지식은 적극적으로 친환경운동에 가담해 온 이들의 태도를 고취했지만 평소 분리수거나 전기 절약 정도만 해온 평범한 다수에게는 큰 효과가 없었습니다. 평범한 다수에게는 환경 문제의 원인보다는 그로 인해 초래될 ‘결과’에 대한 지식이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더 유용했습니다.

◆지렁이와 부동산… 당신은 어디쯤?

그렇다면 그 ‘결과’를 엿볼 수 있는 자료 하나를 살펴볼까요.

지난해 11월 녹색연합은 한국인의 소비가 지구를 얼마나 혹사했는지 알려주는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1990년과 2016년 식품 소비량과 주거 면적, 에너지 소비량으로 국민 1인당 생태발자국을 분석했는데요. 불과 26년 동안 3.16g㏊(글로벌헥타르·생태발자국 측정 단위)에서 5.81g㏊로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1인당 생태발자국은 1.7g㏊입니다. 쉽게 말해 세계 모든 사람이 2016년 한국인처럼 소비한다면 지구가 3.4개(5.81÷1.7)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장대익 서울대 교수(자유전공학)는 그의 책 ‘울트라 소셜’에서 이같이 말합니다.

“역지사지는 영장류 중에서도 우리 인간에게만 장착된 신무기다. 인지적 공감은 오직 인간만이 지닌 특성이다. 우리는 심지어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동식물의 관점까지 취할 수 있다.”

복잡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은 공감능력을 발달시켜 왔고, 이제는 종을 초월해 개와 고양이, 들꽃에까지 공감하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현대사회에 와서 인간의 공감 능력이 자꾸 줄어드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땅을 보며 개미와 지렁이가 궁금했던 아이는 자라서 재개발과 땅값을 걱정합니다. 하늘에서 독수리와 태양, 희망을 바라 본 청소년의 시야는 미세먼지와 황사로 좁혀지죠. 올해는 진화의 산물인 공감능력을 십분 발휘해 환경감수성을 키워보면 어떨까요.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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