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세계포럼] 반려견 진료비 폭탄 맞고보니

관련이슈 세계포럼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18-01-03 23:06:56 수정 : 2018-01-03 23:09:15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입원 사흘 200만원 훌쩍 넘겨부르는 게 값인 천차만별 현실 / 부담 탓에 생명 포기 안하도록 표준수가·공시제 등 정비 시급 호모 사피엔스는 신체조건이 더 나은 네안데르탈인을 몰아내고 살아남았다. 미 인류학자 팻 시프먼은 저서 ‘침입종 인간’에서 “개와 동맹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현생 인류가 늑대를 길들여 개로 가축화하면서 먹이사냥에서 우위에 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왜 늑대였을까. 시선을 통한 의사소통이 능해서다. 조용히 조직적으로 사냥하기 좋다. 개는 인간을 응시하는 시간이 조상인 늑대보다 두 배나 길다. 가축화의 영향이다.

개는 이제 사육에서 애완을 넘어 반려의 대상으로 격상됐다. 사람과 눈을 맞추면서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특별함 때문이다. 소·닭은 전염병이 돌면 떼로 살처분되지만 개에겐 그런 상상조차 안 된다. 소설 ‘28’(정유정 작)은 그래서 잔인하다. 공교롭게 사람과 개의 눈을 매개로 한 인수공통전염병이 소재다. 가상도시 화양에서 걸리면 수일 안에 죽는 ‘빨간 눈’ 괴질이 창궐한다. 멀쩡한 반려견들이 마구 버려지고 사살된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한 재앙이다. 주인공 수의사 등은 개를 살리려 목숨을 건다. 인간에 대한 희망과 동물 사랑에 대한 책임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빨간 눈 설정은 극단적이다. 안 그래도 반려견에 대한 책임문제는 현실에서 충분히 시험대에 오른다. 특히 병이 중할 때다. 김애란 소설집 ‘바깥은 여름’ 중에서 안락사를 다룬 ‘노찬성과 에반’은 솔직해서 짠하다. 열 살 소년 노찬성은 늙은 유기견(에반)을 데려와 키운다. 할머니와 둘이 살아 형제처럼 아낀 에반은 2년 뒤 아프고 수의사는 안락사를 조언한다. 고민하던 찬성은 일주일간 아르바이트로 비용을 마련해 병원에 간다. 하필 며칠 휴원이란다. 처음 손에 쥔 중고 스마트폰에 돈이 야금야금 들어가면서 안락사는 차일피일 미뤄진다. 묘한 안도와 함께 스마트폰에 빠진 소년. 에반은 작별인사인 양 한밤에 찬성의 뺨을 핥고 사라진다. 일부러 차에 뛰어들어 죽은 듯이 소설은 끝난다.

15년 넘게 함께한 반려견이 지난 연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자식보다 1년 먼저 찾아온 인연이었다. 췌장염·신부전으로 병원에 있던 일주일. 생사를 넘나들던 하루하루가 고문이었다. 버거운 몸에도 마주치려 애쓰는 눈길. 볼 때마다 지난 세월의 기억이 눈과 가슴을 찔렀다. 살리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항생제·진통제·복막투석·수혈 등등. 보험이 안 되는 치료비는 턱없이 비쌌다. 사흘치가 200만원을 쉽게 넘겼다. 입원 엿새째 진료비 폭탄은 위력을 배가했다. “이러다 열흘이 넘어가면….” 힘겹게 버티는 생명이 대견하면서도 생활에 대한 부담은 떨치기 어려웠다. 안락사 유혹이 어른거렸다. 편히 보내주자는 합리화는 솔깃했다. 아직은 아니라고 마음을 다잡는데 생명의 끈이 툭 끊어졌다. 후회·자책·상심…. 제 명대로 해준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얼마전 아내는 반려견 꿈을 꿨다. 예전의 건강한 모습이었다며 오랫만에 밝게 웃었다. 

허범구 논설위원
생명과 생활 사이에서 시험에 드는 건 반려인의 숙명이다. 반려견 보유 가구(최근 조사 24.1%)가 급증세라 국민적 사안도 될 수 있다. 2016년 동물병원에서 쓴 카드결제액은 7864억원으로 전년보다 1058억원 늘었다. 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진료비는 민생의 중요한 영역이 됐다.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했다.

동물 진료비는 천차만별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균등화를 요구하는 글이 올라올 정도다. 1999년 폐지된 표준수가제를 부활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표준수가제는 여야 공통 대선공약이다. 수의계는 입장이 다르다. 비보험 환경에서 표준수가제는 맞지 않는다고 반발한다. 정 의원은 “당장 모든 진료과목이 어렵다면 중성화 수술 등 공공성과 빈발성 진료부터 표준수가제를 적용하자”고 했다.

미국 등에서 시행되는 진료비 공시제 도입도 검토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해외사례를 중심으로 진료비 공시 필요성을 강조한 연구용역 결과를 연말에 보고했다. 한 관계자는 “진료비는 부르는 게 값이라서 국민들이 불만”이라며 “공시방향으로 갈 것 같다”고 했다. 정부는 공청회 등을 거쳐 최종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올해 무술년은 60년 만에 돌아온 ‘황금 개띠의 해’다. 반려견에 대한 책임과 배려가 더해지길 바란다.

허범구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