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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동칼럼] ‘낭’과 ‘패’가 하나 되는 세상을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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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2-31 19:50:37 수정 : 2017-12-31 20: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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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전설에 나오는 동물 ‘낭’과 ‘패’
서로 떨어지면 그야말로 ‘낭패’
새해에는 모두 낭패 겪지 않도록
한 몸이 돼 희망의 미래로 전진을
중국 전설에 따르면 저 옛날 ‘낭(狼)’이라는 동물과 ‘패(狽)’라는 동물이 살고 있었다. 개사슴변 ‘ ?(犬)’ 부에서 엿볼 수 있듯이 둘 다 이리나 늑대 과에 속하는 짐승이다. 그런데 처음 창조될 때부터 낭은 앞다리가 짧았고, 패는 뒷다리가 짧았다. 그래서 두 짐승은 늘 서로 붙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 만약 둘이 다투기라도 해 서로 떨어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야말로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어떤 일이 크게 어긋나는 것을 두고 흔히 ‘낭패’라고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낭패’에 관한 이야기는 중국 진(晉)나라의 정치가 이밀(李密)이 쓴 ‘진정표’라는 글에 처음 나온다. 이밀은 어릴 적부터 부모 없이 할머니 슬하에서 외롭게 자라나 촉한(蜀漢)의 관리가 됐다. 촉한이 진에 멸망하자 무제(武帝) 사마염(司馬炎)은 이밀이 유능하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관리로 임명하려고 했지만 이밀은 한사코 사양했다. 그러나 사마염이 거듭 요청하자 이밀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자신의 딱한 처지를 글로 써서 올렸는데 이 글이 바로 ‘진정표’다.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이 진정표에서 이밀은 자신이 태어난 지 여섯 달 만에 아버지를 여의었고, 네 살 때 어머니는 외삼촌의 권유로 개가했다고 밝힌다. 고아가 된 그를 할머니가 불쌍히 여겨 길러 주셨는데, 지금 할머니가 연로해 자신이 아니면 할머니를 돌볼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딱한 사정을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제가 관직을 받지 않으면 이 또한 폐하의 뜻을 어기는 것이 되니, 오늘 신의 처지는 정말로 낭패스럽기 그지없습니다”라고 글을 맺는다. 이밀의 진정표를 읽은 무제는 화를 내기는커녕 그에게 돈과 곡식을 보내어 할머니를 잘 모시라고 위로했다.

이제 우리는 2018년 무술년(戊戌年) 새해를 맞이했다. 무술은 육십간지 중 서른다섯 번째에 해당한다. ‘무’는 황금색이므로 올해는 ‘황금 개의 해’인 셈이다. 그동안 동아시아에서는 무엇보다도 황금에 자못 큰 상징적 의미를 부여했다. 황금은 부귀영화의 상징이요, 상서로움의 상징이다. 또한 개는 성질이 온순하고 영리해 서양과 동양을 가르지 않고 두루 인간에게서 사랑을 받았다. 이렇게 황금색과 개가 맞물리면서 중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몇 주 전부터 조금 요란할 정도로 새해맞이 준비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황금 개의 마력에만 심취해 있을 수만은 없다. 우리에게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여러 모습의 ‘낭’과 ‘패’가 서로 첨예하게 나뉘어 있었다. 지난해 국회를 돌이켜보면 반목과 질시가 팽배해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여당과 야당의 갈등이 심했다. 여당과 야당은 전설의 두 짐승 낭과 패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짐승이 서로 몸을 합치지 않으면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듯이, 여당과 야당도 타협과 협치를 통해 서로 힘을 모으지 않고서는 국회는 더 이상 민의를 대변하는 기관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현안을 두고 여당과 야당의 입장이 서로 차이가 난다는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다. 서로 다른 입장과 견해를 조율하고 절충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다름아닌 정치다. 정치를 두고 ‘타협의 예술’이라고 하지 않는가. 정치가 낭패가 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이렇게 낭과 패가 하나가 돼야 하는 것은 비단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만이 아니다. 사회 각계각층의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도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과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밖에도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기성세대와 신세대, 남과 여, 노(勞)와 사(社) 등도 하나같이 낭과 패처럼 서로 떨어져 있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무술년 새해에는 무엇보다도 우리 정치권과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갈등과 반목을 극복해야 한다. 무한경쟁의 세계화 시대에 세계 각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눈팔다가는 자칫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 낭패를 겪지 않도록 한 몸이 돼 희망의 미래를 향해 힘껏 전진하도록 하자.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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