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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파고-혁신을 가로막는 장벽] 정권마다 반복되는 혁신안 … 규제 완화 없으면 ‘탁상공론’

입력 : 2018-01-01 15:05:00 수정 : 2018-01-01 14: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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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은행 ‘은산분리’ 벽에 막혀 / 가상화폐도 투자제한 등 규제 속도 / 온라인 결제 여전히 액티브X 필수 / 생명윤리법에 막힌 유전자 교정치료 / 세계 최고 기술력 갖고도 해외 연구 / 훗날 돌아보면 이해 못할 규제 많아
문재인정부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적극적인 규제완화를 천명했다. 이를 위해 대통령 직속 기구인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신설해 신성장 동력 발굴에 방해가 되는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새로운 산업이 등장해 모래밭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성장할 수 있도록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하겠다는 방안도 내놨다. 문제는 지난 정부에서도 규제완화는 단골메뉴였다. 전 정부에서도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규제를 타파하겠다”는 목표가, 앞선 정부에서는 “신성장 동력을 육성하겠다”는 정책이 각각 발표됐다. 이 시기 규제는 ‘손톱 밑 가시’와 ‘전봇대’와 비교돼 뽑아야 할 대상으로 평가받았다. 31일 재계와 정보기술(IT), 과학계 등에 따르면 새 정부의 규제혁신안이 지난 정부와 달라진 것이 없다고 평가한다.

인터넷 전문은행은 은산분리에 벽에 부딪혀 성장이 멈췄고, 세계 최대 규모의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가상화폐는 투자제한 등의 규제를 앞두고 있다. 기계학습(딥러닝)과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인 ‘데이터 수집’은 불가능하고, 온라인 결제를 위해서는 여전히 공인인증서와 액티브X는 필수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각종 ‘붉은 깃발법’이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붉은 깃발법은 1860년대 2차 산업혁명을 앞둔 영국에서 제정된 자동차 규제다. 영국은 자동차의 시속을 3㎞ 이하로 제한했고 차량에는 3명 이상 탑승해야 운행됐다.당시엔 마부들의 일자리와 마차산업을 보호하고 자동차 사고 예방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합리적’ 조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1980년대 초반까지 야간 통행이 제한됐다. 청소년들의 교육에 부정적이란 이유로 1990년대 중반까지 염색한 방송인의 TV 출연이 금지됐다. 24시간 운영되는 편의점이 골목마다 위치해 있고, 형형색색의 헤어스타일을 한 가수가 세계 방송국을 누비는 지금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힘든 규제란 평가다.

전문가들은 훗날 돌아보면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는 규제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의 경우 생명윤리법(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에 따라 배아(수정란)와 태아 등에 대한 유전자 교정치료를 금지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유전자 가위(질병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조작해 희귀병을 예방하는) 기술을 갖추고도 모든 연구는 해외에서 진행해야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신산업 육성을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규제혁파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최근 평창 ICT 체험관을 방문해 가상현실(VR) 롤러코스터를 직접 이용한 직후 “이 기구의 설치를 제한하는 규제가 있으면 풀겠다”고 약속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완화 정책이 와 닿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독특한 제품을 개발하고도 규제에 막혀 출시가 늦어지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파트론은 맥박과 체온 등을 측정하고 착용자의 위치를 알려주는 웨어러블 기기를 개발했다. 이 기기는 착용한 노약자에게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보호자에게 착용자의 위치와 상태를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한다. 파트론 관계자는 “제품이 IT기기와 의료기기 사이에 위치해 있다”며 “기술 개발은 한참 전에 끝났지만 승인 문제 등이 남아 아직 출시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지주의 출자를 받은 에덴룩스는 안경처럼 쓰고 있으면 시력이 교정되는 제품을 개발했지만 IT기기와 의료기기 사이에서 허가 문제를 놓고 고민 중이며, VR 놀이기구 업체인 상화는 주력 제품이 유기시설물과 모션시뮬레이터의 규제가 얽혀 있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힐세리온은 세계 최초로 스마트폰과 연계된 무선 초음파 기기를 개발하고도 규제 문제로 어떤 부처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아 1년을 소비했다.

전문가들은 규제완화에 앞서 우선 다양하게 얽혀 있는 규제의 정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상욱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는 “과학기술 규제가 특별법이나 기본법, 시행령 등 여러 층으로 구성돼 상충되는 부분이 많다”며 “규제에 대한 정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광호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기술규제연구센터장은 “사회적 합의와 개인편익 및 공공가치의 조화 등을 고려해 규제 불확실성을 완화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규제완화 방법를 제안하고 규제완화 이후 발생할 후폭풍을 예방할 방안도 함께 내놓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지선 선린테크앤로 변호사는 “피해를 보는 주체가 있기 때문에 정부가 규제로 제한해 보호하려는 것”이라며 “규제완화 이후에 발생할 혜택만 생각하지 말고 규제완화 이후 피해가 예상되는 쪽에 대한 대안도 제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규제완화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장윤종 4차산업혁명본부 선임연구원은 “정부와 IT 대기업, 혁신 스타트업 3자의 관계가 선순환으로 확대발전하는 구조를 갖춰야 할 때”라며 “기술발전을 제약하는 규제들은 모두 그 정당성에 대해 통시적인 관점을 가지고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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