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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대통령과 ‘가가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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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2-20 22:42:10 수정 : 2017-12-20 22:4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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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 정부 국정운영 도긴개긴
신조어 ‘내로남불’ 사자성어로
중국 안하무인, 북한 핵협박 속
국론 모을 참리더십 발휘해야
을씨년스럽다. ‘을사년스럽다’에서 나온 말이다.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 빼앗긴 을사조약으로 온 나라가 비탄에 빠진 상태를 뜻한다. 열흘밖에 남지 않은 올해 달력의 맨 마지막 장의 빨간색 공휴일 표시가 유난히 을씨년스럽다. 20일은 ‘대통령선거일’이었으나 조기 대선으로 달력상으로만 휴일인 ‘비운의 날’이 됐다.

한 해에는 기념일과 역사적인 날들이 많지만 2017년은 대통령 탄핵 이전과 이후로 기록될 것이다. 현직 대통령을 탄핵하고 정권이 바뀐 지 7개월이 지났다. 새로 들어선 정권이 탄핵당한 정부보다 나은지 아닌지 벌써 평가가 구구하다. 자기들이 한 짓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남이 한 일만 적폐로 몬다는 신조어 ‘내로남불’이 이젠 사자성어로 굳어졌다.

조정진 논설위원 겸 통일연구위원
신정아씨는 자신의 책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밖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서 질문하셨고, 나는 연설에서의 어휘 등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말씀드렸다. 또한 대국민 담화나 기자회견 때마다 내게 크고 작은 코멘트를 들어보려고 하셨다”고 썼다. 이를 비난한 사람은 없다. 대통령 연설문을 수정했다는 등의 이유로 국정농단 장본인이 된 최순실씨가 어찌 생각할지 궁금한 대목이다.

김대중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핑계로 북한에 몰래 수억달러를 갖다줬다. 들통나니 통치행위라고 했다. 노무현정부는 편법증여와 X파일로 코너에 몰린 삼성그룹이 헌납한 8000억원으로 ‘장학재단’을 만들어 당시 정부 성향에 맞는 개인과 좌파 단체를 집중 지원했다. 이명박정부는 기업 기부금과 휴면예금 2조원을 재원으로 미소금융재단을 만들었다. 미르·K스포츠재단 재원 조달 방식은 얼마나 별다른지 따져볼 일이다.

장관 등 공직 후보자의 행태와 답변도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대통령은 후보 시절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 전입, 논문 표절 중 하나라도 위반하면 고위공직자 등용에서 배제하겠다고 큰소리쳤으나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청와대 민정수석의 국정감사 불출석은 여야가 바뀌고, 정권이 교체돼도 여전하다.

최근의 MBC 사장 체포영장 발부와 2008년 KBS 사장 해임·체포영장 발부는 기시감이 들 정도로 판박이다. 9년 전엔 민주당이 “공권력을 동원한 정권의 방송 장악 시도”, “대통령이 직접 저지른 쿠데타”, “군사독재 시절에나 가능했던 일”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번엔 공수가 바뀐 자유한국당이 같은 용어로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정권마다 이전 정부 때 취임한 공영방송 사장을 핍박해 교체하는 것은 관례가 됐다.

언론의 본령은 살아있는 권력을 감시하는 일이다. 집권자들은 항상 과거 권력을 짓밟고, 미래 권력을 경계하는 데 관심이 많다. 언론이 여기에 부화뇌동하면 그것은 이미 언론이 아니다. 탄핵 국면에서 언론이 기여했다고, 새 정부에 지분이라도 있는 양 착각해 나팔수를 자처한다면 언론은 스스로 권력의 시녀가 되는 것이다.

한국의 민주화에도 적잖이 기여한 돈 오버도퍼 전 워싱턴포스트 도쿄특파원은 1994년 방한 특강에서 “미국 대통령 수석보좌관과 재무장관, 국무장관을 지낸 제임스 베이커와는 프린스턴대 동창이다. 그가 공직에 입문하자 ‘우리가 비록 친구이지만 소임이 다르니 적으로 대하겠네’ 하고 통보한 후 공직에 있던 18년 동안은 소원하게 지냈다”고 말했다.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진 참언론인으로 사후에도 존경받는 이유이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생트집, 기자 집단폭행, 군용기 방공식별구역 침범 등 중국의 안하무인이 도를 넘어도 속수무책이다. 핵·미사일 위협은 북한이 하는데 동맹국 미국을 향해 ‘전쟁 불가’만을 외치고 있다. 투명행정을 하겠다고 해놓고 청와대 비서실장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특사 파견은 쉬쉬해 국민적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정부와 언론, 정부와 국민의 간극이 점점 벌어지고 있다.

경상도 사투리 중 ‘가가가가?’가 있다. 악센트를 넣어 발음하면 네 개의 ‘가’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북이 분단되고 지역별로도 사분오열된 나라에서 통치자는 최소한 ‘가가가가’의 ‘가’자 네 개를 헷갈리면 안 된다. 후보 때는 편을 갈라 경쟁하더라도 취임 이후에는 모두의 지도자여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섬겨야 할 국민이다.

조정진 논설위원 겸 통일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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