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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진실 앞에 용기낼 분들 위해… 공익제보상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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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2-14 19:11:09 수정 : 2017-12-15 17: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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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수사 단초 제공한 박헌영 前 K스포츠재단 과장 / 첫 검찰 조사 후 ‘태블릿 PC’ 보도 / 거짓말 할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 / 연루자 등 알리며 수사 단서 제공 / ‘밝은사회상’ ‘호루라기상’ 등 수상 / ‘촛불의 힘’ 더 큰데 상 받기 죄송 / 공익제보 활성화되는 계기 되길 “검사님에게 드릴 말이 있습니다.”

1년여 전인 지난해 10월25일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조심스럽게 통화했다. 하루 전(24일) 첫 검찰 조사에서 ‘최순실씨를 전혀 모른다’고 거짓말로 일관했던 그였다.

‘들어오라’는 답이 돌아오자, 그는 자신을 조사한 서울중앙지검 최재순 검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최씨의 국정농단 전모를 털어놨다. 
‘제1회 이문옥 밝은사회상’을 수상한 박헌영 전 K스포츠재단 과장은 지난 8일 서울 장충동 우리함께회관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아버지에게 이 상을 건네주면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적 ‘의를 보고도 행하지 않는 건 용기가 없다’는 의미의 ‘견의불위무용야(見義不爲 無勇也)’라는 좌우명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제원 기자

“첫 검찰 조사를 마치고 나오니까 ‘최순실 태블릿PC’ 보도가 이뤄졌더군요. ‘저런 것(대통령 연설문을 미리 받아보고 수정)까지 관여했다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어마어마하구나, 거짓말로 모른다고 할 상황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이후 “셀 수도 없이” 서울중앙지검을 찾아 국정농단 수사에 협력했다. 지지부진하던 검찰 수사는 그의 진술과 제보 등을 토대로 급물살을 타게 됐다.

‘제1회 이문옥 밝은사회상’을 수상한 박헌영 전 K스포츠재단 과장은 자신이 공익 제보를 한 순간을 이같이 회고했다. 상은 시민단체 ‘내부제보실천운동’이 1년에 한 차례씩 공익 제보를 통해 사회 발전에 기여한 이들을 대상으로 선정한다.

검은 뿔테 안경을 한 박씨를 지난 8일 오후 서울 장충동 우리함께회관에서 만났다. 그는 15일 ‘호루라기재단’이 올해 최고의 공익 제보자에게 주는 ‘올해의 호루라기상’도 받는다.

“제가 진실을 말했을 때만 해도 고영태씨 등은 아직 검찰에 사실을 말하지 않고 있었어요. 언론에 ‘밑밥’을 먼저 던졌지만 일이 커지자 입을 닫은 거죠. 내부자로서 제가 처음 진실을 말한 셈이었어요.”

박씨는 다만 2차 진술 조서에 자신의 지장을 찍지 않았다고 한다. 검사가 자신을 보호해준다고 했지만 그는 날인을 강하게 거부했다.

“제 조서가 서울중앙지검, 법무부, 청와대 민정수석 등으로 올라가는 의사결정 라인에 이 사건 또는 최씨와 관련 있는 인물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느냐. 지금 우병우 민정수석, 안종범 경제수석, 문고리 3인방이 그대로 다 있지 않으냐. 살려 달라.”

수사관은 이에 “머리 똑똑하네, 최순실이 너를 좋아했겠네”라며 그의 의견을 최 검사에게 전달했고 최 검사는 이를 허락했다. 박씨는 대신 수사의 핵심 포인트를 조언했다.

“정현식 전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을 부르면 SK와 관련 내용을, 조성민 전 더블루K 대표를 부르면 포스코와 김상률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과 만난 내용 등을 알 수 있다며 수사 퍼즐을 맞춰줄 사람을 알려줬어요. 그랬더니 검찰이 다음 날부터 제가 말한 사람들을 차례로 불러 조사를 하더군요.”

검찰 수사로 국정농단 실체가 드러나자 10월30일 우병우·안종범 등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들이 사퇴했다. ‘박근혜정권의 둑’이 무너진 것이다. 그는 이때서야 조서에 지장을 찍었다. 박씨는 이후 2016년 1월부터 K스포츠재단에서 근무하며 작성한 업무수첩도 땅속에 묻어 보관해 오다가 검찰에 증거 자료로 건네기도 했다. 그는 수사뿐만 아니라 국회 국정조사청문회(2회),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1회), 서울중앙지법의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재판(2회) 등에도 출석해 진상 규명에 적극 협조했다는 평가다.

박씨는 이날 인터뷰 내내 “부끄럽다”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국정농단 사건의 주요 당사자들이 구속되거나 처벌을 앞두고 있는데, 이건 몇몇 제보자의 고발로 이뤄진 게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저와 몇몇 내부 제보자들의 고발로 여기까지 온 게 아닙니다. 시민들이 추운 겨울 광장에 나와 ‘대통령은 내려오라’고 외치고 호응해줘 된 것이죠.” 그는 “훌륭한 제보자들이 많이 있는데 큰 상을 받게 돼 민망하다”며 “앞으로 공익 제보를 준비하거나 할 수 있는 분들께 용기를 주기 위해 상을 받는다”고 말했다.

박씨는 한때 태블릿PC와 관련해 국회 위증 모의 논란에 연루돼 곤욕을 치렀다. 그는 위증모의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했고, 청문회에서도 사실만을 답했다고 거듭 확인했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K스포츠재단을 그만둔 그는 현재 특별한 직업이 없는 상태다. 이날도 강원도의 한 스키장에서 스키 강습을 하다가 왔다고 전했다.

김용출 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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