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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소주가 우리 것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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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2-13 22:36:39 수정 : 2017-12-13 22: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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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료인 주정의 40% 수입 의존
같은 포장에 비슷한 맛 대부분
인허가 쥔 국세청이 발전 막아
이제 세계 내놓을 소주 만들 때
달력의 마지막 한 장이 힘겹게 붙어 있다. 촛불이 거리를 뒤덮었던 지난해 세밑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송년모임이 확실히 늘었다. 음식점 주인들 목소리도 조금은 커진 듯하다.

어느 모임에서든 앉자마자 작은 고민이 시작된다. “술은 뭐로 하시겠어요?” 맛은 거기서 거기 같은데 상표만 다른 술을 골라야 한다. “카스처럼요.” 모 맥주회사 광고 탓이다. 이 회사의 맥주와 특정 회사의 소주 제품 이름을 결합한 이 말부터 오른다.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만드는 소폭을 선택하고 만다.

박희준 논설위원
해당 맥주회사, 소주회사는 착각하지 말라. 1등 맥주와 1등 소주라서가 아니다. 둔감해서 그런지 소주도 맥주도 맛의 차이를 별로 느끼지 못하겠다. 모양도 그렇다. 상표가 보이지 않게끔 각 회사 소주를 돌려 세워보자. 어느 소주가 어떤 회사 제품인지 구별하기가 어렵다. 소주병에 A사 이름이 양각되어 있는데 정작 상표는 B사 것인 경우도 많다.

술 얘기를 꺼낸 건 얼마 전 모임에서 들은 얘기 때문이다. 한 지인이 물었다. “지금 마시는 이 소주가 우리나라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웬 뚱딴지 같은 말인가. 한국을 대표하는 술이지 않은가. 그는 소주 원료가 되는 주정(酒精)이 대부분 동남아와 브라질에서 들어온다고 전했다. 국내 고구마 생산으로 감당하지 못해 브라질, 파키스탄 등에서 사탕수수나 타피오카 등으로 만든 주정을 들여오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우리 소주만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주정은 무색·무취·무미한 알코올 성분, 에탄올이다. 쌀, 보리, 옥수수 같은 곡류와 고구마, 감자, 타피오카 등 서류(薯類)의 전분이나 당분을 발효시킨 뒤 증류해 만든다. 발효주정이라고 한다. 외국에서 수입한 조(粗)주정을 한번 더 증류해 정제하기도 한다. 정제주정이다. 조주정은 말 그대로 거칠어서 불순물이 들어 있다. 알코올 성분이 95% 이상인 주정을 물로 희석하고 각종 첨가물을 넣으면 소주가 만들어진다. 희석식 소주라고 불렸던 이유다. 화학주 같은 오해를 부른다고 해서 지금은 사라진 용어다.

한국주류산업협회와 주정회사들에 문의해 봤다. 국내에 10개 정도의 주정회사가 있다. 외국에서 조주정을 들여오기도 하지만 직접 만들기도 한다고 했다. 국내 생산과 해외 수입이 6대 4 정도다. 소주가 우리 것만은 아니라는 말이 반은 맞는 셈이다.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주정 수입액은 1억7000만달러에 달한다. 미쓰비시와 미쓰이 등 일본 종합상사들이 주로 중개하고 있다. 우리 소주를 만드는 데에 외국산 주정이 들어가고 일본 기업이 돈을 버는 셈이다.

요즘 소주회사들이 알코올 도수나 맛 등에서 차별화를 꾀하고는 있다. 그래도 거의 같은 모양의 병에 거의 같은 맛의 액체가 담겨 있다. 원인이 무엇일까. 주류업계 관계자들은 주류 및 주정업 인허가권을 국세청이 쥐고 있는 탓이라고 지목한다. 탈세 방지와 세원 확보를 위한 규제가 집중되다 보니 주류산업 발전이 더뎠다는 것이다. 사실 세계시장에 내놓을 만한 소주 브랜드 하나도 없다. 소주회사들은 각자 지역을 기반으로 작은 성만 공고히 지키려고 할 뿐이다.

세원 확보와 식량 안보, 가격 통제 등을 위해 국세청 역할이 필요했던 시절이 있었다. 천몇백 원에 소주를 살 수 있는 것도 그 덕이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국세 전체에서 주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1970년 5.92%에서 이제 1% 남짓으로 떨어진 상태다. 주류 안전 및 위생관리 업무도 2001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 넘겨졌다.

국세청으로서는 선뜻 노른자위를 내어주고 싶지 않을 것이다. 주류산업을 쥐고 있어야 퇴직을 앞둔 국세청 관료들을 밀어내기가 용이했기 때문이다. 주류회사는 물론이고 주류산업협회, 서안주정 등의 주정회사, 주정 구입과 판매를 독점하는 대한주정판매, 병마개 제조회사까지 곳곳에 국세청 출신이 한때 자리를 꿰찬 적 있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주류산업 발전을 포기하면서 이른바 ‘세피아’들을 위한 공간으로 남겨놓을 순 없다. 이제 우리도 세계시장에서 영국의 위스키, 러시아의 보드카, 중국의 바이주(일명 ‘빼갈’) 등과 겨룰 수 있는 소주를 내놓을 때가 되었다.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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