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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밥그릇 싸움과 군자불기… 공자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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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2-04 21:31:38 수정 : 2017-12-04 21: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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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아야 / 새 시대에 창조적 대응 가능하고 / 인간 품성 또한 발전할 수 있어 / 한국, 器機 가득… 不器 찾기 어려워 소득 3만달러에 육박해도 우리는 아직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며칠 전 인문학자들의 모임에서 터져 나온 말이다. “우리의 싸움은 아직 밥그릇 싸움이야.” 자유니, 민주니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떠들어대고 있지만 속내는 야만스럽기 그지없다. 겉으로는 지식인인 체, 부자인 체, 위정자인 체 뽐내고 있지만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아직 자신이 차지한 밥그릇을 놓지 못해 죽을 때까지 안달하는 좀비, 졸부들의 배고픔사회인지 모른다.

좀비, 졸부들은 자신이 소유한 것마저도 놓칠까 봐 불안에 떨면서 박 터지게 싸움질하는 위선자들의 떼거지들인지 모른다. 거창한 슬로건으로 스스로를 속이고, 국민을 속이고, 끝내 나라마저 속이고 있는지 모른다. 마르크스의 노예들의 냄새가 풀풀 풍긴다. 가짜 좌파, 가짜 우파들의 요란 법석 속에 진정한 주인은 사라져버렸다. 우리 사회는 ‘돈 없는 노예’와 ’돈 있는 노예’ 혹은 ‘배운 노예’ ‘못 배운 노예’들의 집합소인지 모른다. 선진기술과 문화를 배웠다고 하지만 아직 제 것으로 소화하지 못했으니 창조단계로 들어서는 것은 아직도 요원하다.

원천기술, 오리지낼리티를 확보하거나 자랑할 만한 것은 없는 것 같다. 모방과 조립이 체질화됐으니 그저 남의 기술과 생각들을 표절해서 살아가는 앵무새들일 뿐이다. 공자의 말 가운데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말이 있다.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구절인데 ‘어떤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아야 새로운 시대에 창조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인간의 품성 또한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우리 사회는 가끔 ‘불기(不器)의 재목’이 나와도 밥그릇 싸움과 당파싸움에 휘말려 빛을 보지 못하거나 묻히기 일쑤다. 따라서 역사의 수레는 거꾸로 돌고 있다. 군자불기는 광의로 해석하면 ‘자유로운 정신과 영혼의 소유자’를 뜻하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군자는 되기 쉽지 않다. 양육과 교육과정 자체가 기존의 정답을 잘 외우게 하고, 유학을 가더라도 결국 앵무새처럼 선진문물을 잘 배워서 오면 모방사회의 후덕함으로 그들에게 설교하고 행세할 적당한 지위와 자리를 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온통 기기(器機)들로 채워져 있다. 불기(不器)는 찾아보기 어렵다. 공자는 ‘군자불기’를 말하기 전에 온고지신(溫故知新·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안다)을 먼저 말했고, 전후맥락을 보면 온고지신의 스승이 될 수 있느냐를 말하다가 나온 발설이다. 말하자면 온고지신하려면 군자불기가 돼야 한다는 뜻이다.

공자는 자공이 ‘군자’에 대해서 재차 묻자 이렇게 말한다. “말할 바를 먼저 행하고 말은 뒤에 하는 것이다.” 공자는 이 대답이 미흡했다고 느꼈는지 다시 이렇게 말한다. “군자는 두루 사랑하되 편당하지 않고 소인은 편당하되 두루 사랑하지 않는다.” 공자의 말은 이 대목에서 이어지기 바쁘다. “배우면서 생각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온고지신, 군자불기, 소인편당을 지적한 뒤에 배움과 생각의 피드백 등이 원활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아무튼 ‘위정’편을 보면 오늘날 한국인이 가장 부족한 점을 모두 열거해놓은 것 같다. 기술사회에 머물러 있는 한국인의 생활상이다. 한국인은 마치 기계의 부품처럼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삶에 신바람이 날 수가 없다. 그래서 스트레스사회이다. 공자는 그 옛날에 어떻게 한국인의 오늘의 약점이나 내홍을 잘 알았을까. 혹시 동이족 출신인 공자는 우리 조상의 성격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박정진 평화연구소장·문화평론가
동이족 출신의 공자는 어떻게 중국문화의 비조가 됐을까. 노(魯)나라 산동(山東) 곡부(曲阜) 출신인 공자의 조상은 송(宋)나라 사람이고, 송나라 사람들은 은(殷)나라의 유민들이다. 송나라 사람들은 후에 중국문화에서 ‘송나라 바보’ 취급을 당한다. 공자는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7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으며, 19살 때 송나라 출신 여인과 혼인했다고 한다. 무녀였던 어머니 안씨(顔氏)에 의해 훈육되는데 고대동북아문명의 주류였던 샤머니즘의 굿(의례) 전문가였다. 어머니로부터 의례와 음악을 전수받은 공자는 그것을 바탕으로 한 단계 높은 ‘원시유교(儒敎)문화’를 재창조하는 문화영웅으로 거듭난다.

송나라 바보가 영웅이 된 것이다. 바보스러운 데가 있어야 영웅이 되는지도 모른다. 공자는 고대문화유산을 새롭게 정리하는 사업에 뛰어들어 역사서인 ‘춘추(春秋)’(기원전 481년)를 씀으로써 춘추 필법을 남겼고, ‘주역(周易)’에도 ‘십익(十翼)’을 보탰다. 그렇지만 공자는 중국대륙을 주유천하하면서도 곤경에 처할 때마다 구이(九夷: 東夷族)로 돌아갈 것을 염원했다고 한다.

공자가 알고 있었던 고대문화의 원형 혹은 원형문화는 어떤 것이었을까. 필자는 대체로 그것이 고대샤머니즘의 문화 총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공자는 지금의 동북 삼성(三省)과 산동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동북아시아-동이족의 은나라 문화를 주나라문화로 중심이동하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문화영웅은 문화중심을 바꾼다. 우리는 지금 군자불기는 고사하고, 이데올로기 싸움과 밥그릇 싸움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의 문화영웅은 어디에 숨어있는가.

박정진 평화연구소장·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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