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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살아보고 결정?'…빈부격차가 혼인신고 시기도 정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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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28 19:29:22 수정 : 2017-11-30 21:3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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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도움 못 받는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받아 집 구하려 결혼 전 일찌감치 신고 마쳐 / 여유 있으면 살다가 결정하려 장기간 신고 안 하는 부부 많아
#1. 지난해 12월 결혼한 김모(33)씨는 최근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다. 결혼 전엔 몰랐던 성격 차이가 극대화된 데다 본가·처가 간의 갈등을 겪다보니 결혼 관계가 깨질 위기다. 자연스레 이혼도 생각해보게 됐다는 김씨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게 다행일지도 모르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김씨는 결혼한 지 1년이 다 되가는 지금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아기가 생기면 혼인신고를 하려고 했다. 굳이 빨리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고 답했다. 김씨는 부모님의 재정적 지원 덕택에 혼인신고를 해야만 가능한 ‘신혼부부 전세자금대출’ 등의 대출 없이 신혼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김씨는 “결혼 관계 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 하겠지만, 갈등이 봉합되지 않으면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면서 “만약 헤어지게 되더라도 서류상으로 정리할 게 없으니 깔끔한 것 같다”고 말했다.

#2. 올해 8월에 결혼한 이모(32)씨는 결혼 5개월 전인 3월에 이미 혼인신고를 마쳤다. 양가 부모님 모두 신혼집 마련에 거의 보탬을 주지 못할 형편이다 보니 결혼식 전에 일찌감치 혼인신고를 마친 뒤 신혼부부를 위한 전세자금대출을 받아 신혼집을 장만했다. 이씨는 “어차피 할 것이긴 했는데, 요즘 혼인신고를 늦추는 추세다 보니 주변에서 ‘뭘 그렇게 빨리 했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부끄러운 것은 아닌데 ‘대출 때문에 그랬다’는 말이 하기 그래서 대충 얼버무렸다”고 말했다. 이씨의 고민은 역시 대출이자다. 억대의 대출을 받다보니 이씨 월급의 1/3쯤은 대출 이자로 들어가고 있다. 이씨는 “최근 TV프로그램에서 연예인 예비부부가 서울 강남의 신혼집을 알아보면서 ‘10억으로도 쉽게 못 하구네. 지방 가서 살아야겠네’ 등의 푸념을 늘어놓는 것을 보면서 자괴감이 들더라”고 괴로움을 토로했다.

위 사례처럼 최근 신혼부부들의 혼인신고를 하는 시기에도 ‘빈부격차’를 보인다는 지적이다. 혼인신고를 결혼식 전에 하던 결혼식 이후로 늦추던 두 사례 모두 고민을 안고 있다. 김씨처럼 혼인신고를 늦춘 부부는 조그마한 갈등에도 ‘어차피 서류상으로 복잡할 게 없다’는 생각에 쉽게 이혼을 생각하고, 이씨 부부처럼 혼인신고를 일찍 한 부부들은 치솟는 집값의 부담과 주택 대출 이자의 늪에 허덕이고 있다.

결혼식을 올린 뒤에야 혼인신고를 하는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8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5~49세 기혼여성의 동거, 결혼식 및 혼인신고 간 순서 중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인 것은 ‘결혼식-함께 삶-혼인신고’였다. 1994년 이전부터 2015년까지의 그 비율은 75.1%에 달했다. 2010~15년 사이에는 그 비율이 61.2%로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대다수는 결혼식을 치른 뒤에야 혼인신고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찌보면 예나 지금이나 결혼식 뒤에 혼인신고를 올리는 게 당연한 수순일 수도 있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은 결혼식을 치른 뒤 6개월 이상이 지나도 혼인신고를 올리지 않은 채 '사실혼' 관계로 사는 젊은 부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결혼식은 올리되 일정기간 살아본 뒤 혼인신고와 결혼생활 지속 여부를 판단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를 두고 TV 드라마에서 ‘결혼인턴제’라고 불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한 이혼 전담 변호사는 "최근에는 요즘엔 '살아보고 결정하자'는 생각이 많아서인지 결혼식 이후 1년이 넘도록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사는 젊은 부부들이 많다. 이혼 소송 의뢰를 받았던 부부의 경우에는 결혼식 이후 3년쯤 됐을 때 첫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 출생신고를 하러 가면서 혼인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결혼 문화가 합리적일 수도 있지만, 문제는 헤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로 두는 혼전 동거 때문에 혼인신고 전에 갈라서는 커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대법원이 발간한 2016 사법연감에 따르면 동거기간 0~4년차에 이혼하는 부부들은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다. 2012년엔 2만8204쌍이 이혼했고, 2016년엔 2만4597쌍이 남남이 됐다. 전체 이혼에서 이들의 이혼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2년 24.6%에서 22.9%로 떨어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수치에는 허수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혼 전문 변호사는 “실제로 신혼 이혼이 감소한 이유도 있겠지만,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결혼생활을 하다 헤어지는 부부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수치가 나오는 것”이라면서 “최근엔 혼인 신고를 하지 않은 부부 관계의 재산 분할 등에 대한 상담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일단  혼인신고부터 한 뒤 동거를 시작하거나, 결혼식을 치르는 커플들도 늘고  있다. 동거나 결혼식보다  혼인신고를 먼저 한 부부는 통계청이  집계한 전체 표본(1994∼2015년 5.6%)에 비해 최근인 2010∼15년에는 11.1%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법적인 부부가 됨으로써 누릴 수 있는 혜택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부모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고, 자신이 가진 경제력도 부족한 이들이 큰 돈이 들어가는 결혼식, 신혼생활 등을 위한 자구책으로 이런 선택을 하는 것에 적극적이다. 

이들은 치솟는 집값과 대출이자에 허덕이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2016년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 지역에서 가구주가 된 이후 내 집 마련까지 걸리는 시간을 표본 분석한 결과 10년 이상이 3명 중 1명인 33.2%로 가장 많았다. 1년 미만은 26.1%, 5∼10년은 21.4%, 3∼5년은 10.2% 등의 순이었다. 부모 등의 도움을 받아 집을 산 경우가 아니면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이상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다. 주거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출산을 미루고, 이는 저출산이라는 사회문제로 귀결되는 셈이다. 김순옥 청년이 만드는 세상 대표는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자금 대출 신청자격 완화 및 대출 금리 인하 등의 지원과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행복주택 등이 아이를 낳아도 키울 수 있을 만큼의 지원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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