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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살리는 한마디 괜찮니] '내재된 폭탄' 터지지 않게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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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27 23:33:28 수정 : 2017-11-29 15:2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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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예방하는 방법이 있을까? 2012년 시행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약칭: 자살예방법)’이 그 명칭에서 보는 바와 같이 법이라는 수단으로, 그리고 국가의 법적 책무로서 자살예방을 하겠다고 나섰다. 과거 서구 일부에서는 법으로 자살을 금지하고, 자살자에 대한 매장금지나 재산몰수를 통하여 명예를 떨어뜨리고, 향후 유족의 삶을 궁핍하게 만드는 방법을 사용하였지만 그것으로도 자살을 예방할 수는 없었다. OECD 국가 중 한국이 자살률 1위가 된 2003년 이후 마련된 국가의 자살예방계획이나 자살예방 종합대책은 한국사회의 자살률의 상승세를 꺾지 못하였다. 2012년 이후에는 인구 10만 명당 30명대의 자살률에서 20명대 후반으로 자살률이 감소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OECD 자살률 1위 국가를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우리는 과거의 자살률 증가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최근의 자살률 감소이유도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의 1990년대 이후의 높은 자살률과 거기에 더한 낮은 출산율은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까? 국가는 끊임없이 자살을 막기 위한, 그리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우리가 왜 낳아야 하는지? 왜 힘든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대답은 하지 않고 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자국의 사람들을 뭉뚱그려진 인구, 그것도 수치화된 노동가능한 노동력으로 바라보는 경제적 시각에서 비롯된다고 보인다. 하지만 인구는 개별화된 사람을 대표하지도, 대신하지도 못 한다. 그리고 우리는 월급을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 아니다.

프랑스 법학자 알랭 쉬피오의 말처럼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위해 몸을 던질 수 있는 인격체(법주체), 즉, 내재된 폭탄을 몸 속에 숨기고 있는 존재이다. 거기에 더하여 사람은 스스로에게 부여된 의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인격체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내일 하루가 더 필요한 이유는 나 자신 때문만이 아니라 나 아닌 타인, 예컨대 어린 자식, 늙으신 부모, 사랑하는 연인과 동료들에게 나의 존재가 의미와 가치를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자살을 예방하는 방법이란 사람에게 내재된 이러한 폭탄이 터지지 않게 하는 사회적 인식과 제도의 확보라 할 수 있다. 사람에게 내재된 폭탄은 언제 터지는가? 아마도 그 때란 사람이 태어날 때 얻었던 것들을 하나둘씩 잃어갈 때, 그 때부터 스위치를 찾기 시작할 것이다. 태어나는 아이는 가족의 축복과 돌봄 속에서 자신의 보금자리를 얻고,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이름이 불리우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이후 살아가면서 가족과 일터, 친구와 같은 사회적 관계를 잃어 버리고, 스스로의 이름을 불릴 기회마저 잃어버릴 때 사람은 주저앉게 된다. 마치 마리오네트 인형의 모든 줄이 끊어져 버리는 것처럼, 한 사람의 사회적 관계의 씨줄로 날줄로 엮여져 있는 사람들의 사회적?법적 연결망이 소멸되는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폭탄이 내재된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스위치를 찾게 된다. 국가와 사회의 본연의 임무는 사람들이 그 스위치를 켜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인간사회가 오래 지속되었던 이유는 경쟁과 지배가 아니라 서로를 돌보며, 부양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족 간의 부양의무로서, 사회적 연대의 원리로서, 국가의 법적 책임으로서 만들어져 왔다. 그러한 의무와 연대와 책임을 사회의 다수가 의심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으며, 더 이상 삶을 지탱할 수도 없다.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삶을 버티게 하는 것은 개인적 성취가 아니다. 우리의 삶을 버티게 하는 깊은 내면에는 가족과 타인에 대한 의무가 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살고 있다. 그 의무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끊임없는 사람들의 욕망을 지난 수천 년 동안 법이 부양의무라는 이름으로 통제하고, 달래고, 얼러왔다. 그것이 지금까지 사회와 가족의 세대를 전승해 이어온 유일한 생존방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그리고 국가는 타인에 대한 의무를 지닌 인격체이어야 한다. 이러한 의무는 결코 의심되어서는 안 된다.
 


신권철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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