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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영화 ‘그르바비차’는 2006년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수작이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계가 점령한 사라예보 교외 지역 이름에서 제목을 따왔다. 이곳에 세르비아계가 운영하던 포로수용소가 있었다. ‘죽은 아버지는 세르비아계와 싸운 전쟁영웅’으로 알던 딸에게 사실은 수용소에서 ‘인종청소’를 위한 집단강간을 자행한 세르비아계의 피를 이어받은 것이라고 고백하는 어머니의 얘기를 담았다. 내전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1990년대 들어 탈냉전 바람이 불면서 사회주의 체제였던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붕괴되고 민족분규가 확산됐다. 당시 현장을 취재한 적이 있다. 크로아티아계 병사가 “한동네에서 사이좋게 살던 사람들이 서로 총을 겨누게 됐다”며 한숨을 내쉬던 게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3년 동안의 보스니아 내전에선 전체 인구의 10%가 학살당하고 절반 이상이 자기 땅에서 쫓겨났다. 보스니아 무슬림의 피해가 컸다. 유고 내 양대 세력인 세르비아계(정교)와 크로아티아계(가톨릭)보다 힘이 약했다.

유엔 산하 국제 유고전범재판소(ICTY)가 22일 라트코 믈라디치 전 세르비아계군 사령관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다. 1995년 보스니아 동북부의 무슬림 난민 거주지 스레브레니차에서 남성과 소년 8000여명을 죽인 ‘스레브레니차 학살’이 대표적 악행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최악의 집단학살로 ‘보스니아의 도살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믈라디치는 1995년 ICTY 기소 후 16년간 도피생활 끝에 세르비아 당국에 체포돼 ICTY로 넘겨져 재판을 받아왔다. 자이드 라드 알 후세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정의가 승리한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범죄자들이 얼마나 강하든,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우리는 그들을 법정에 세울 것”이라고 했다.

영국 역사학자 테사 모리스 스즈키는 저서 ‘우리 안의 과거’에서 “역사에 대한 진지함이란 우리 안에 있는 과거, 우리 주위를 둘러싼 과거의 존재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는 일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국제사회가 22년 전의 반인륜적 범죄를 끝까지 추적해 처벌한 것을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이런 범죄는 단죄해야 그 상처가 치유될 수 있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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