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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철칼럼] 서희의 반만 따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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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23 23:52:11 수정 : 2017-11-23 23:5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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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새우, 마음의 빚, 3불… / 감성적 접근은 국익에 큰 손실 / 강대국과 생존게임 벌이려면 / 이벤트성 외교 과감히 접어야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 이 말은 국제 질서의 철칙이다. 외교의 본질은 여기서 출발한다. 외교는 주고받는 단순 거래가 아니라 되로 주고 말로 받아내야 하는 생존게임이다. 능수능란하게 외교의 기술을 발휘한 사례가 고려의 거란 외교전이다.

993년 동북아의 최강자 거란이 고려를 침공했다. 옛 고구려 땅을 갖다 바치라고 했다. 고려 조정이 평양 이북 땅을 내주고 화의하자는 입장으로 기울 때 서희가 나섰다. 서희는 송나라와 국교를 끊기를 바라는 거란의 속셈을 꿰뚫고 먼저 국경 주변의 여진족을 쫓아내라, 그러고 나서 강동 6주를 돌려주면 길을 내 거란과 국교를 맺겠다고 역제의했다. 대담한 실리외교로 고려 영토는 압록강까지 넓어졌다. 거란은 송과 전쟁이 일단락되자 돌변했다. 강동 6주의 반환을 요구하며 2차 침공을 했다. 고려는 한 수 위였다. 끊었던 송과의 관계를 주도적으로 재개한 뒤 단호하게 군사력을 동원해 거란을 패퇴시켰다. 나라를 지키려면 이처럼 명분보다 실리를 챙기고 눈치보기보다 전략적 사고로 접근해야 한다.

조선 시대 이래 우리에게 진정한 외교는 없었다. 시대별로 절대 갑인 중국→일본→미국의 눈치만 잘 보면 기본은 했다. 그러다보니 실속 없는 감성외교가 성행한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기 말 독도를 방문한 것은 이벤트 외교의 해악을 여지없이 보여준 경우다. 독도 방문은 결과적으로 우파 민족주의자 아베 신조 총리를 재기하게 만들었다. 더 큰 잘못은 일본이 노리는 독도의 국제분쟁화 전략에 말려든 것이다. 독도 방문에서 얻은 것은 대통령의 지지도 소폭 상승이고 잃은 것은 심대한 국익이었다.

이명박정부야 실용외교를 내세워 그렇다 치자. 박근혜정부의 중·일 외교는 전략적 사고는커녕 그저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였다. 한국 대통령이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열병식이 열리는 톈안먼 망루에 오르려면 고려해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다. 미국과 일본의 부정적 반응을 상쇄하고도 남을 그 무엇을 얻어내야 한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혹독한 사드 보복이었다. 일본에 대해서도 역사문제로 일본 총리와 눈도 마주치지 않더니만 느닷없이 위안부 합의문을 발표했다. 윤병세 외교장관은 “한·미 관계가 더 이상 좋을 수 없다”는 자화자찬만 늘어놓았다. 눈치외교나 벌이고 있는데 나라의 바탕이 튼튼해지는 것을 바라는 것은 과욕일 뿐이다.

백영철 대기자 겸 논설위원
감성외교가 문재인정부에서도 되풀이되는 것은 우려스럽다. 문재인 대통령은 베트남 방문에 즈음해 영상 축전을 통해 “한국은 베트남에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앞서 청와대 페이스북에는 “한국군은 미국의 용병으로 참전해 베트남인에게 몹쓸 짓을 많이 했다”며 “한국군 증오비 앞에서 사죄하라”는 댓글이 달렸다. 문 대통령이 지지자들의 아우성에 이끌려 유감 표명을 한 것은 아니겠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베트남 참전용사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조국 경제가 살아났다”고 말한 것과도 배치된다. 베트남은 승전국이다. 그 이유로 베트남을 초토화한 미국의 어느 대통령도 유감 표명을 하지 않고 베트남도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국빈방문 만찬장에서 독도새우를 이슈화한 것은 긁어 부스럼 만든 격이다. 국내 지지자를 위한 ‘팬 서비스’일 수 있지만 외교 철칙과는 거리가 멀다. 중국에 주권과 관련된 사드 추가 배치 불가 등 ‘3불(不) 정책’을 선뜻 선물로 준 것도 현명하지 않다. 조급했고 받은 것에 비해 너무 많이 지불했다. 중국은 벌써 기회만 나면 우려먹으며 한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

우리는 한·미 동맹을 견고하게 다지면서 중국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일본도 친구처럼 곁에 둬야 한다. 외교의 본질에 충실하지 않으면 사자와 곰과 늑대 같은 이 강대국들을 견제하면서 국익을 지키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이벤트성 감성외교와 과감히 결별하고 전략적인 실리 외교전에 나서야 한다. 서희의 반만 따라 해도 나라의 위상이 확 달라질 것이다.

백영철 대기자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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