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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궁궐은 역사 이해의 핵심… 어설픈 활용보단 보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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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19 21:01:06 수정 : 2017-11-19 21: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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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궁궐 연구서 펴낸 홍순민 명지대 교수/ 단순한 왕실의 생활 터전 넘어/ 조선 정치·행정의 최고 관청 역할/ 민심 살피기 위한 궐내각사 두기도/ 문화재 ‘활용’ 정책 기조엔 부정적/‘궁스테이’ 등 가치 잘 모르는 정책/ 상징적 의미 커… 자긍심 가져야 “궁궐은 왕조국가의 주권자이자 통치자인 임금이 살던 곳입니다. 그런 궁궐을 모르고는 우리의 역사와 정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조선시대 역사를 연구해 온 홍순민(61) 명지대 기록정보대학원 교수는 ‘왜 궁궐인가’에 대해 이같이 답했다. 홍 교수는 최근 궁궐에 대한 연구서인 ‘홍순민의 한양 읽기-궁궐’을 펴냈다. 최근 명지대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궁궐은 왕조국가의 중심이자 최고의 관청이었다”며 “궁궐에 대한 공간 배경을 알지 못하면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홍순민의 한양 읽기-궁궐’을 펴낸 홍순민 명지대 기록정보대학원 교수는 “궁궐은 왕조국가의 중심이자 최고의 관청이었다”며 “궁궐을 모르고는 우리의 역사와 정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남제현 기자
왕조의 시대가 저물면서 오늘날 궁궐은 본래의 기능을 잃은 채 겉모습만 남아 있다. 최근에는 한복을 차려입은 젊은이들이 사진을 찍는 배경이자 외국인들이 찾는 관광명소로 활용되고 있다.

홍 교수는 “조선왕조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고 우선적으로 지은 건조물이 종묘와 궁궐, 도성이었다”며 “그중에서도 궁궐은 왕조국가의 지존(至尊)인 임금이 정령(政令)을 내고 존엄을 보이는 곳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흔히 궁궐을 왕실 가족의 생활터전으로 생각하지만 그보다 정치와 행정의 최고 단계 집행이 이뤄지는 관부(官府)에 더 가깝다”며 “궁궐은 오늘날의 청와대처럼 조선시대 국정의 중심기관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궁궐은 ‘구중궁궐’(九重宮闕)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소통이 어려운 공간으로 여겨진다. 홍 교수는 “궁궐은 임금과 백성이 소통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공간이 아니었다”면서 “궁궐 안에 들어갈 수 있었던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이어 “궁궐은 통제력이 강해 밑에서 올라오는 힘을 억제하는 측면이 있다”며 “조선왕조가 500년을 이어온 것은 궁궐을 기반으로 한 강력한 왕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궁궐은 왕권 강화의 기반이었지만 국정을 운영하고 민심을 살피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다”며 “백성들이 궁궐 앞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면 임금에게 전달되는 경로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홍 교수는 궁궐의 핵심기관으로 ‘궐내각사’(闕內各司)를 꼽았다. 그는 “임금은 ‘궁궐 안의 관아’로 불리는 궐내각사를 통해 민심을 살피고 국정을 운영했다”며 “궐내각사는 임금이 거주하는 정전(正殿)과 인접한 곳에 위치해 기민한 국정운영을 가능케 했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궁궐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궁궐 내 건물의 이름을 살피라고 조언했다. ‘전당합각재헌루정’(殿堂閤閣齋軒樓亭)으로 끝나는 궁궐의 건물 이름에는 건물과 그 주인의 위계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는 “‘전’(殿)으로 끝나는 건물은 소위 ‘특급건물’로 볼 수 있다”며 “임금과 왕비, 대비가 쓰는 건물에만 ‘전’이 붙는다”고 설명했다. 경복궁의 근정전, 강녕전, 자경전이 이에 해당한다. 이어 “‘전’부터 ‘각’(閣)까지는 뒤에 하(下)를 붙여 건물의 주인을 높이는 이인칭 대명사로 썼다”며 “임금은 ‘전하’(殿下)라고 불렀고, 더 격이 높은 황제는 기단을 오르는 계단인 폐(陛)자를 사용해 ‘폐하’라고 했다”고 부연했다.

최근의 문화재 정책기조인 ‘활용’이 궁궐에 적용되는 것에 대해 홍 교수는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는 “궁궐에 대한 활용정책은 엄격한 잣대로 검토해야 한다”며 “궁궐에 대한 어설픈 활용은 자칫 오용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창덕궁 빈청에 운영되고 있는 카페나 궁궐 내 숙박시설로 추진했던 궁스테이는 궁궐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오늘날 궁궐 내 빈 곳이 많은 것에 대해서는 “일제강점기 궁궐 내 건물이 90% 가까이 훼손됐다”며 “일제도 조선을 침탈하면서 궁궐이 가진 힘과 상징적 의미를 그만큼 경계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500년을 이어온 조선왕조를 궁궐만큼 잘 대변하는 것은 없다”며 “우리 궁궐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 보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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