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 오전 찾은 전북 순창군 밤재(국도 21호선) 도로변에는 보기만 해도 섬뜩한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려 있다. 마을 청년회와 면민회, 주민자치위원회 등이 운전자들에게 교통사고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내붙인 것이다.
밤재는 순창지역 11개 읍면 중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쌍치면과 읍내를 왕복 2차로로 오가는 최단거리 도로다. 요즘 같은 단풍철이면 하루 2만명이 찾는 강천산 군립공원 관문 도로이자 인근 구림·인계·적성·동계면을 이어주는 동맥이다.
마을 주민들에게 이 도로는 절대 넘지 말아야 할 악명 높은 노선이다. 비나 눈이 내리면 어김없이 교통사고가 발생한다. 쌍치면 반계마을 주민 설동일(71)씨는 “도로가 가파른 데다 선형이 매우 불량해 해마다 40∼50건의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설씨는 2015년 겨울 승용차로 이 고갯길을 넘다 미끄러져 벽면을 추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순창군 제설차량도 지난겨울 제설작업 도중 전복돼 차량이 크게 파손되고 운전자가 중상을 입었다. 이곳은 겨울철 ‘제설작업 1순위’로 꼽힌다.
![]() |
전북 순창군 쌍치면 반계마을 주민 설동일(71)씨가 9일 ‘죽음의 도로’로 꼽히는 밤재(국도 21호선) 급커브길에서 교통사고의 위험성을 설명하고 있다. 김동욱 기자 |
이후 25년간 도로 폭이나 선형 개량 등이 전혀 이뤄지지 않다 보니 주민들은 ‘죽음의 도로’로 전락해 17㎞가 더 먼 전남 담양군 용면을 지나는 우회도로(국도 24호선)를 이용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도로 개선 필요성에 공감해 2005년 국도 21호선 순창 동계∼정읍 부전동 41.4㎞ 구간을 3개로 나눠 추진하려는 시설개량사업(3300억원)을 제2차 국도·국지도 건설 5개년 계획에 반영해 기본설계까지 마쳤다. 그러나 가장 위험 구간으로 꼽히는 밤재 일대 24㎞에 대해서는 2100억원의 사업비 투자에 효율성이 낮다는 이유로 제외했다. 이어 제4차 5개년 계획(2016∼2020)에서도 교통량이 적어 비용편익분석이 0.12에 불과하다며 다시 배제했다.
전북도가 지난 5월 국토연구원에 의뢰한 도로 안전성 평가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구간 종합 위험도는 70%로 나타났다. 순창군과 전북도는 안전운행을 위해 우선 밤재 위험구간만이라도 5차 계획(2021∼2025)에 반영해 개선해 달라고 요구했다. 산악구간에 터널(1.4㎞)을 뚫으면 운행 거리도 절반 수준인 4.0㎞로 단축되고 사업비 역시 480여억원으로 크게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구체적인 개량계획까지 제시했다.
황숙주 순창군수는 “최근 귀농·귀촌 인구와 관광객이 증가하고 있으나 통행이 불편하고 위험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주민들의 안전한 이동과 교통편의를 위해 관리기관인 국가가 나서 달라”고 요구했다.
순창=김동욱 기자 kdw7636@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