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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응어리진 삶… 가련한 악마를 만들다

입력 : 2017-11-09 20:49:18 수정 : 2017-11-09 21:3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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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만 장편소설 ‘잔아’ 출간 “이제는 기존의 교육적 장치로는 야비의 극치를 건드릴 수 없습니다. 착한 사람은 살아가기가 불가능한 이 무서운 현실을 개혁하는 데는 저런 눈물겨운 혁명적 몸짓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정의와 진실을 무력화시키고 거짓과 가면으로 자신의 잇속만을 챙기는 야비가 지금 우리 사회의 새로운 덕목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습니다. 지조나 양심은 촌티나는 퇴물이 되었고 요령주의와 기회주의가 판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모함이 진실을 뭉개버리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정치적 아집이, 종교의 타락이, 문화의 위선과 종파성이, 우정과 애정의 상품화가 썩은 오물처럼 질질 흐르고 있습니다.”

소설가 김용만(77·큰 사진)이 최근 펴낸 장편 ‘잔아’(지성의 상상)에 등장하는 청년은 지금 이곳의 ‘야비’를 격렬하게 성토하며 “이제 우리는 진실을 찾기 위해 대낮에 등불을 켜들고 다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김용만의 필명이기도 한 이 소설의 제목 ‘잔아’(殘兒)에서 그는 기독교적 사상을 읽었다. 소설 속에서 작가의 분신, 혹은 그가 모시는 신처럼 비유되는 여인 ‘수나’의 말이 그것이다.

“선생님이 살아오신 삶 자체가 악마의 원형을 찾아갈 수 있는 자격이 된 셈이죠. 우연의 일치라고 여기기에는 너무 어이없는 우연이고요. 이름처럼요. 선생님은 잔아(殘兒)를 ‘마지막 아이’로 의역하셨지만, 거기에는 기독교의 중심사상인 ‘남은 자’의 뜻이 담겨 있어요. 노아의 가족도 남은 자이고, 앞으로 구원받을 사람들도 남은 자이고,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도 남은 자시고요.”

이 소설의 부제가 ‘악마의 원형을 찾아서’이거니와 김용만은 온갖 고난을 겪어야 하는 수많은 인생들의 고통에 ‘악마’의 이미지를 덧입혔다. 그는 이 이미지를 붙들고 지금까지 써온 소설들을 축약해 자서전처럼 장편을 완성했다. 김용만이 이 작품에서 사용한 ‘악마’는 축출하고 척결해야 할 극악한 대상이라기보다는 고통스러운 삶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구원받을 가능성이 남아 있는 악마인 것이다. 김용만이 구축한 이 가련한 악마에게는 ‘눈물’이 있다.

소설 속에서 작가의 분신으로 짐작되는 인물은 이스라엘 성지순례 중 겟세마네 교회에서 한없이 운다. 그는 이 뜻밖의 눈물이 “온갖 간난신고를 겪어오면서 생성된 내 진실이, 허위의식에 젖은 율법주의자를 매도하고 안식일에도 병자를 돌보게 한 예수님의 내용주의와 순간적으로 스파크를 일으킨 현상”이라며 “허무 극복보다 더 큰 감격이 어디에 있겠는가”라고 성찰한다. 김용만은 “이 소설은 내 자서전이나 진배없다”면서 “나 자신의 응어리진 고통스러운 삶을 눈물을 통해 풀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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