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들은 각종 계획을 수립할 때 실현 불가능한 인구 성장치를 제시하면서도 '도시 축소 현상'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동안 빈집 정비사업은 단독주택 공실 문제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으나, 앞으로는 공급된 공동주택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정책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미 일본, 독일, 미국 등에서는 도시 축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주 환경을 재조정하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토연구원은 도시 기능이 존속하려면 축소된 인구에 맞게끔 주택과 기반시설 규모를 재조정하고, 도시생활거점으로 공공서비스를 재배치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국내 20여곳의 지방 중소도시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빈집과 기반시설은 남아도는 '도시 축소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10일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도시정책연구센터 구형수 책임연구원 등은 최근 '저성장 시대의 축소도시 실태와 정책방안'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인구가 줄어들면서 방치되는 부동산도 증가하는 도시를 일컫는 '축소도시'는 1980년대 독일 학계에서 개념이 나온 이후 전 세계적으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연구팀은 1995~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데이터 등을 활용해 42개 지방 중소도시를 상대로 인구 변화 추이 등을 분석한 결과, 절반에 가까운 20개 도시를 심각한 인구 감소를 겪는 '축소도시'로 규정했다.
이는 1995~2005년과 2005~2015년 두 기간 연속으로 인구가 감소했거나, 두 기간 중 한 기간만 인구가 줄었으면서 최근 40년간 인구가 가장 많았던 '정점인구'에서 25% 이상 인구가 줄어든 도시다.
이들은 경상북도에만 영주, 안동, 문경, 상주, 김천, 영천, 경주 등 7곳이 모여 있다. 강원도에는 태백·동해·삼척 등 3곳, 충청남도에는 공주·보령·논산 등 3곳, 전라북도에 익산·김제·정읍·남원 등 4곳, 전라남도에 나주·여수 등 2곳, 경상남도에는 밀양 1곳이 있다.
20개 도시 모두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7~14%인 고령화 사회 이상 단계에 들어있다. 이중 삼척, 공주, 보령 등 9개 도시가 고령사회(65세 이상 비율 14~20%), 정읍, 남원 등 6곳은 초고령사회(65세 이상 비율 20% 이상)에 도달했다.
◆지방 중소도시 빈집, 기반시설 남아돌아
모든 축소도시 공가율(빈집 비율)이 전국 평균인 6.5%를 넘어섰다. 평균의 2배를 넘는 13.0%보다 공가율이 높은 곳도 4곳(태백, 삼척, 나주, 영천)에 달했다.
여수, 나주, 경주 등 7개 도시에서는 최근 10년(2005~2015년)간 빈집 수가 연평균 6.0% 이상씩 급증했다.
이들 축소도시는 2015년 기준으로 재정자립도가 30%를 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읍, 남원, 김제, 안동, 상주 등 5곳은 재정자립도가 15%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0년간 재정자립도가 눈에 띄게 악화한 곳은 익산과 김제로, 각각 자립도가 연평균 4.5%, 3.4%씩 감소했다.
구 연구원은 "시설 설치 사업비 기준 100억원 이상의 공공시설을 유지하는 데 거의 모든 도시에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이 권역별로 최근 10년간 인구변화율이 낮은 곳인 삼척, 상주, 김제, 보령의 주민 610명을 상대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73.0%가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체감한다고 밝혔다.
인구 감소를 실감하게 하는 현상에 대한 질문에 33.9%는 '도시를 떠나는 사람이 많을 때', 33.3%는 '빈집이 많아질 때'라고 답했다. 이어 '관리되지 않는 시설이 많아질 때'(11.7%), '버스나 철도 노선이 없어질 때'(10.6%), '백화점이나 슈퍼마켓이 문을 닫을 때'(6.1%) 등 순으로 답했다.
응답자의 66.3%는 인구 감소의 원인으로 '일자리 부족'을 꼽았다. 전 연령에서 일자리 부족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는데, 이런 경향은 사회 초년생인 30대(응답률 76.5%)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그 외 12.6%는 '출산율 저하', 8.3%는 '기반시설 부족'이라고 답했다.
◆日·美 축소된 도시규모 맞춰 거주환경 재조정
연구팀에 따르면 일본과 독일, 미국 등 해외 각국에서는 도시축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축소된 도시규모에 맞춰 거주 환경을 재조정하는 '도시 다이어트'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도야마시와 구마모토시는 도시기능을 집약화하는 거점을 설정, 해당 지역으로 공공시설과 주거 입지를 유도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라이프치히시와 라이네펠데시는 빈집을 철거한 후 남은 공지에 녹지를 조성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한때 미국 자동차 산업의 메카였으나 산업 쇠퇴와 함께 도시기능이 축소된 디트로이트시는 개발용지와 공공서비스의 적정 규모화 전략을 담은 도시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지역공동체 회복을 위해 공지에 녹지와 텃밭을 조성하고 있다.
연구팀은 "도시기능 존속을 위해 축소된 인구에 맞게 주택과 기반시설 규모를 축소하고, 도시생활거점으로 공공서비스를 재배치해야 한다"며 "공동시설의 중복투자를 방지하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인접 도시 간 공공서비스 공동이용을 지원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사진=김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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