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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궁궐 곳곳엔 왕실의 번영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장치들이 널려 있다. 창덕궁 후원의 불로문(不老門)이 대표적이다. 임금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세워졌다. 이 문을 지나면 늙지 않는다는 뜻으로, 바위를 통째로 깎아 만들었다. 이 불로문을 흉내 낸 짝퉁 불로문이 전국 도처에 만들어져 불로장생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불로장생에 즐거움까지 더하면 금상첨화다. 창덕궁 연경당의 대문, 창덕궁과 창경궁의 경계에 자리 잡은 낙선재의 정문 이름은 오래 즐거움을 누리라는 뜻의 장락문(長樂門)이다. 신선들의 궁궐이라는 장락궁에서 따온 이름이다. 건물의 기와 단청에도 번영과 불로의 의미가 담겨 있다.

궁궐의 장식과 그림에는 백성들의 행복을 바라는 애민정신도 깃들어 있다. 이런 염원과 달리 조선왕조 500년은 기구했다. 건국 이후 근대의 격랑에 휘말려 막을 내릴 때까지 내우외환이 끊이지 않았다. 민초들의 삶이 평탄할 리 없다. 5000년 역사 이래 최고의 태평성대를 누린다는 오늘을 지켜보는 선조들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을 것 같다. 그런데도 삼전도의 굴욕을 다시 끌어내고 구한말의 위기를 떠올리는 까닭은 무엇인가. 과거를 거울 삼아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경계하는 징비(懲毖)의 교훈이 이토록 절실할 수가 없다.

창덕궁 불로문은 오랜 세월 비바람에 씻겨 갈라지고 파였다. 돌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는데 사람이 부서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진시황도 이루지 못한 불로장생의 꿈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인간의 진정한 꿈은 무병장수 자체가 아니라 무병장수를 향한 도전에 있는지 모른다. 세상에 태어난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영원불멸을 좇는 것은 불가에서 말하는 고통일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 김정숙 여사와 멜라니아 여사가 청와대 산책길 불로문을 지나며 무병장수를 빌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트 대통령도 불로문 밑을 함께 거닐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불로문 밑에서 양국 국민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나아가 한반도와 동북아,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함께 기여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김기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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