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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레나강을 가다] 1920년대 ‘골드러시’, 조선인들도 뿌리내려… 천혜의 풍경 ‘새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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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0-28 10:35:16 수정 : 2017-10-28 10:3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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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황금의 도시’ 알단 가는 길
이른 아침 야쿠츠크시 레나강 포구에서 모터보트를 타고 30분 정도 걸려 레나강을 건넜다. 야쿠츠크시는 북극해로 흘러 들어가는 레나강 좌측 강변에 위치하는데, 사하공화국 남부 중심도시 알단과 네륜그리로 가려면 레나강 우측 지역을 남북으로 이어주는 M56 연방 도로를 타야 하기 때문이었다. 레나강에는 야쿠츠크와 연방 도로를 이어주는 교량이 아직 건설되어 있지 않다. 레나강에 길이 3㎞ 이상의 교량을 건설하는 프로젝트가 수립되어 있지만, 막대한 자본과 높은 수준의 건설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레나강을 건너간 우리는 먼저 니즈니 베스탸흐 철도역으로 갔다. 니즈니 베스탸흐 역은 현재로선 야쿠티아 간선철도의 최북단 철도역으로서, 남으로 톰모트, 알단, 네륜그리, 베르카키트 역을 거쳐 틴다에서 바이칼∼아무르 간선철도와 접속된다. 철도역사에는 승객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역장의 설명에 따르면, 니즈니 베스탸흐∼톰모트 구간은 2014년에 임시 개통되어 여객 차량은 아직 운송되지 않고 있고 석유제품과 컨테이너를 수송하는 화물열차만 다니고 있다. 1985년에 베르카키트∼톰모트∼야쿠츠크 구간 철도 건설이 시작되어 베르카키트에서 니즈니 베스탸흐까지 약 800㎞의 철도가 건설되는 데 거의 20년이 걸렸다. 수많은 강과 개천, 타이가 수림, 영구동토지대, 혹한 등 다양한 자연적인 악조건을 극복하고 이루어낸 성과였다.

사하공화국 수도 야쿠츠크시에서 레나강을 건너면 니즈니 베스탸흐 역사가 있다. 역사 전면에서 이번 한국탐사단이 기념촬영을 했다.
니즈니 베스탸흐 역을 떠나 10여㎞를 달려 파블롭스크 마을에 위치한 안 알렉산드르 농장으로 갔다. 그는 1998년 우즈베크에서 사하공화국으로 이주하여 채소 재배로 성공한 고려인 동포다. 농장에 도착하니 강 선생과 아들, 손녀 등 가족이 나와 맞아 주었다. 넓은 노지에 수박이 열려 있는 것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춥고 척박한 야쿠티아 노지에서 수박이 자라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게 보였다. 여러 동의 비닐하우스에서는 배추, 파 등 다양한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수확한 채소는 야쿠츠크의 상점과 식당 등에 납품한다고 했다. 집안에 들어가니 강 선생의 며느리가 국수를 삶아 푸짐하게 담아주었다. 김치와 함께 먹은 국수의 맛에 사하공화국에 있는 것인지 한국의 시골 할머니 댁에 온 것인지 잠시 혼란스러웠다. 

이색적인 ‘푸른 들판과 얼음덩어리’ 야쿠츠크시 남쪽에 있는 영구동토지대 불루스에서는 푸른 나무와 초지 바로 앞에 얼음 덩어리가 펼쳐지는 이색적인 풍경을 볼 수 있다. 불루스는 야쿠트어로 ‘빙하, 얼음덩어리’라는 뜻으로 한여름임에도 저지대에 옅은 옥색의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남아 있다.
안 알렉산드르 농장을 떠나 연방도로로 가는 길에 불루스라는 이름의 빙하 지역에 잠시 들렀다. 불루스는 야쿠트어로 ‘빙하, 얼음덩어리’라는 뜻이다. 그곳에는 한여름임에도 저지대에 거대한 옅은 옥색의 얼음덩어리가 남아 있었다. 많은 현지인 가족들이 그 신기한 자연현상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관리소 옆에 설치된 매점에서 차를 마셨는데, 관리인이 찾아와 10대 손녀 두 명이 케이팝을 좋아해 9월에 한국 광주에서 열리는 댄스경연대회에 참가할 것이라고 자랑했다. 그런 외진 곳까지 한류 열풍이 불어 어린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마침내 우리는 연방 도로 M56을 타고 알단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M56 연방 도로는 아무르주 북부 네베르라는 마을에서 시작되어 북으로 틴다, 네륜그리, 알단을 거쳐 니즈니 베스탸흐까지 1156㎞, 그리고 니즈니 베스탸흐에서 동쪽으로 마가단까지 2032㎞를 이어주는 사하공화국의 대동맥이다. 이 도로는 많은 강과 하천을 지나고 또 영구동토대에 건설되어 있기 때문에 봄에 강과 하천이 범람하고 여름에 동토가 녹으면 곳곳이 진창이 되어 많은 사고가 났었다. 그런데 2010년부터 구간 보수 및 아스팔트 포장공사가 시작되어 2022년까지 아스팔트 포장이 완료될 예정이라고 한다. 마을에서 가까운 도로, 포장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른 아스팔트 길을 달릴 때는 충분한 속도를 낼 수 있었고, 좌우로 휙휙 지나가는 자작나무 숲과 길가에 지천으로 자라있는 분홍색 이반 차이 꽃, 멀리 보이는 작은 호수와 개울, 도로 옆으로 나란히 지나는 철로 등은 아름답고 평온하게 보였다. 다만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는 마주 오는 차에 의해 날아오르는 먼지 기둥에 앞이 완전히 가려져 위험하기도 했다. 그 먼지는 차의 문틈으로 새어 들어올 정도로 입자가 작아 옷에 묻으면 잘 털리지도 않았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햇볕과 바람, 물, 그리고 타이가 수풀의 뿌리에 의해 아주 곱게 부서져 휘날리는 먼지는 인간이 파헤친 타이가의 속살이자 상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니즈니 베스탸흐에서 남쪽으로 518㎞ 거리에 위치한 알단에 밤 9시쯤 도착했다. 도시 초입에서 군청 관계자들이 우리를 맞이해 우리가 묵을 ‘러시아연방 스키선수훈련센터’로 안내했다. 센터는 스키경기장과 관중석, 호텔과 트레이닝 홀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012년 10월에 완공되었다. 호텔 시설은 수준급이었다. 알단은 사하공화국 내 다른 곳에 비해 덜 추운 데다 가장 일찍 눈이 오고 또 늦게 녹는 곳이라 스키선수들에게는 최적의 연습과 경기 장소로 알려져 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나가 보니 호텔 옆 숲속에서 스키 스틱을 든 10여명의 어린아이들이 코치의 지도로 열심히 몸동작 연습을 하고 있었다. 겨울에 있을 경기에 대비해 무더운 여름부터 훈련을 하는 것이었다. 

알단시 군청서 브리핑 알단시 군청에서 알단시에 대한 브리핑을 듣고 있는 한국외대탐사단.
아침 식사 후 우리는 알단 군청으로 가 부군수를 면담했다. 그는 알단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재도 금 채취가 주된 산업이며, 동시베리아∼태평양 송유관 통과와 가스파이프라인 연결로 가스공장 건설 등 에너지산업 발전 전망이 크고, 여러 강과 산이 아름다워 관광지로서의 전망도 크다고 했다.

알단이라는 말은 황금을 뜻하는 튀르크어 ‘알탄, 알틴’에서 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알단이라는 도시 명칭은 레나강 우측 지류로 길이가 2273㎞인 알단강에서 따온 것이다. 1923년에 알단강에서 가장 큰 금 매장지가 발견되어 네자메트니라는 마을이 형성되었고, 그 소식이 러시아 전역에 알려지자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1923년 10월 350명이던 마을 인구는 1년 후 3700명으로 불어났고 그해 말에는 5000명에 달했다. 금을 캐기 위해 모여든 사람은 러시아인과 야쿠트인뿐 아니라 중국인, 조선인도 있었다. 1939년에 그 마을을 도시로 조직하고 알단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현재 알단시 인구는 약 2만1000명이며, 알단군 전체 인구는 4만9000명이다.

김민수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연구소 교수
부군수와의 면담 후 우리는 청소년 문화담당관의 안내로 알단역을 방문했다. 알단역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알단역에서 북으로 톰모트역까지 1일 1회 여객열차가 운행되고 있고, 알단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모스크바에 도착하는 데 일주일이 걸린다. 알단역을 둘러본 후 우리는 알단 북서쪽 약 50㎞ 거리의 알단 강변에 위치한 마을 하티스티르로 향했다. 하티스티르는 인구 약 1만3000명에 순록 유목과 사냥, 말 사육 등 전통산업에 종사하는 에벤키 씨족 마을이다. 마을 초입에서 먼저 순록 모피로 외투, 신발 등 전통 의상을 만드는 명인 할머니의 집에 들러 순록 가죽을 전통방식으로 무두질하는 모습 등 민예품 제작과정을 보았다. 에벤키 민족전통 부활을 위한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이어서 우리는 마을 문화회관으로 가 에벤키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마을 주민들과 대화하면서 민족·산업 공동체로서의 하티스티르의 현재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네륜그리로 향하는 일정이 빡빡하여 에벤키인들의 삶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 아쉬움을 가지고 다시 차를 타고 네륜그리로 출발했다.

김민수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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