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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스페셜 - 우주 이야기] (34) ‘발사체의 심장’ 터보 펌프

입력 : 2017-10-28 10:00:00 수정 : 2023-11-12 20: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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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발사체 75t급 엔진의 터보 펌프.

혈액 순환이 잘 되어야 건강하다. 혈액 순환에 가장 중요한 역할은 온몸 구석구석 혈액을 보내는 펌프인 심장이 담당한다. 심장이 멈추면 신체의 기능도 정지된다.

 

우주 발사체에도 심장의 역할을 하는 부품이 있다. 바로 터보 펌프(Turbo Pump)다. 터보 펌프는 연료와 산화제를 고압으로 압축시켜 연소실로 보내주는 역할을 해 ‘발사체의 심장’이라고도 불린다. 터빈의 회전력으로 펌프를 가동시키기 때문에 터보 펌프라는 이름이 붙었다.

 

◆극한의 기계적·물리적 환경 견뎌야

 

심장이 이완 수축을 반복해 일정한 압력으로 우리 몸 구석구석에 혈액을 보내는 것처럼 터보 펌프는 발사체의 에너지원인 연료와 산화제를 일정한 압력으로 엔진에 보내준다. 사람의 심장처럼 발사체의 생명을 좌우한다. 터보 펌프의 아주 작은 오작동이나 결함은 폭발과 발사 실패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그야말로 발사체의 핵심부품이라 할 수 있다. 

 

보통 터보 펌프는 유체(기체와 액체)의 흡입을 위한 부품인 인듀서(Inducer), 원심력을 이용해 유체를 가압하는 임펠러 등의 주요 구성품으로 이루어진다. 터보 펌프를 돌리기 위한 터빈도 빼놓을 수 없다. 가스 발생기에서 나오는 가스가 터빈을 돌리면서 터보 펌프의 작동이 시작된다. 저장 탱크에서 온 연료와 산화제는 인듀서를 통과해 임펠러에서 가압된 뒤 엔진으로 향한다.

 

 

한국형 발사체 75t급 엔진의 산화제 펌프(위 사진)와 연료 펌프 위치도.

터보 펌프는 터빈을 돌려 고속 회전에 필요한 동력을 일으키고 이 힘으로 액체나 기체를 가압해 이동시킨다는 점에서는 여느 펌프와 비슷하다. 다만 발사체 엔진에 적용되는 터보 펌프는 우주를 비행하면서 발생하는 극한의 기계적, 물리적 환경을 견디고 작동해야 하는 만큼 기술적으로 개발이 매우 까다롭다.

 

터보 펌프는 극저온의 액체산소와 상온의 연료, 터빈이 돌아갈 때 수반되는 고온이 한 몸체 내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열 구조 측면에서 매우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발사체에서 고속으로 돌아가는 회전 기계는 터보 펌프가 유일하다. 한국형 발사체 1·2단에 사용되는 75t급 엔진과 3단에 쓰이는 7t급 엔진에 적용되는 터보 펌프의 축 회전 속도 범위는 1만~3만rpm(1분 동안 몇번의 회전을 하는지 나타내는 단위)이다. 내연기관인 자동차 엔진에 사용되는 터보 차저(충전기)의 회전 속도는 5만~10만rpm에 달하지만, 크기가 작아 제작이 상대적으로 쉽다. 자동차 터빈보다 크기가 훨씬 큰 터보 펌프가 1만~3만rpm의 회전 속도를 보이는 만큼 기계적으로 매우 가혹한 상황에서 작동해야 하는 셈이다.

 

연료의 유량 측면에서도 자동차와 발사체의 터보 펌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가 난다. 한국형 발사체의 75t급 엔진에는 초당 255㎏의 연료와 산화제를 공급해 연소시켜야 한다. 200L짜리 드럼통에 담긴 엄청난 양의 연료를 1초 만에 태워야하는 셈이다. 또 하나의 큰 차이는 출구 압력이다. 출구 압력이 높아야 고압인 상태로 연료를 연소실로 보낼 수 있다. 발사체의 출구 압력이 100bar(1bar는 해면에서 100m 정도의 압력) 이상인데 비해 자동차는 10bar가 채 되지 않는다.

 

이들 이유로 자동차 터보 펌프의 기술을 쉽게 발사체로 연결하기는 어렵다.  

 

◆높은 압력을 만들면서도, 작고 가볍고 튼튼하게

 

발사체의 터보 펌프가 크기와 무게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면 문제는 달라질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집에서 쓰는 수도꼭지를 생각해보자.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잘 나오게 하려면 크게 하거나 압력을 높이면 된다. 그러나 크게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고 무게도 늘어난다. 같은 크기의 수도꼭지로 물이 더 잘 나오게 하려면 압력을 높이면 된다. 수도꼭지의 재질과 구조만 튼튼하다면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압력을 높여 물이 콸콸 쏟아지게 할 수 있다.

 

터보 펌프도 마찬가지다. 발사체는 가능한 한 최대한 가볍게 만들어야 하는 만큼 수십~수백㎏에 달하는 터보 펌프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무턱대고 크기를 크게 할 수는 없는 이유다.

 

터보 펌프는 연료와 산화제를 높은 압력으로 연소기로 보내 ‘격렬한’ 연소를 돕는다.

결국 터보 펌프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압력을 높일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소재부터 최대한 가볍고 튼튼한 것으로 사용한다. 터빈은 고온에서도 잘 견디는 내열강을 쓴다. 극저온에서도 작동해야 하는 산화제 펌프는 스테인리스강, 상온의 연료 펌프는 알루미늄 소재를 주로 사용합니다. 연료와 산화제가 새면 안 되기 때문에 기밀(氣密)도 매우 중요하다. 가벼운 무게를 유지하면서도 완벽한 기밀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그만큼 달성하기도 어렵다.

 

◆연료와 산화제를 터보 펌프로 보내는 이유는

 

이렇게 극한의 환경에서 견딜 수 있도록 제작된 터보 펌프는 한국형 발사체의 75t급 엔진에서는 영하 183도의 액체산소(산화제)를 초당 175㎏, 상온의 케로신(연료) 70㎏을 연소기로 공급한다. 이때 산화제 펌프와 연료 펌프에는 각각 100bar, 120bar의 압력이 가해진다. 

 

액체 로켓에서 터보 펌프로 추진제(연료+산화제)를 연소기로 보내는 이유는 압력과 무게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액체 로켓은 연료와 산화제를 연소실로 보내 격렬하고 힘차게 연소시켜 여기서 얻은 힘으로 날아간다. 격렬하게 연소시키려면 연료와 산화제가 높은 압력과 유량으로 흘러들어가야 한다.

 

처음에는 연료 탱크와 산화제 탱크 자체에서 압력을 가하는 방식(가압식)이 쓰이기도 했다. 직접 압력을 주려면 추진제 탱크가 이를 견딜 수 있도록 두껍고 튼튼하게 제작되어야 한다.

 

한국형 발사체의 75t급 엔진(왼쪽)과 75t급 엔진 4개로 구성된 1단 로켓. 각각의 엔진에 터보 펌프가 달려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렇게 탱크가 무거워질수록 발사체의 효율은 급격히 떨어진다. 발사체는 인공위성이나 짐을 우주에 보내기 위해 필요하다. 따라서 탱크가 무거우면 인공위성도 작아져야 하고, 짐도 조금밖에 싣지 못한다.

 

이런 문제 때문에 고안한 것이 바로 터보 펌프다. 추진제 탱크에는 아주 낮은 압력만 가하는 대신 추진제 탱크와 연소기 연결 부위에 따로 터보 펌프를 달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여기서 높은 압력으로 추진제를 보내는 방식인 터보 펌프식으로 바뀐 것이다.

 

◆실매질 시험 도중 폭발도···실패 딛고 국산화 성공

 

국내 터보 펌프의 개발은 ‘무’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외의 구체적이지 않은 자료를 참고해 자력으로 설계하고 시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소재 선정부터 조립 과정까지 모두 우여곡절이 많았다. 조립 과정에서 너무 많은 힘을 가해 구조가 변형되는 등 여러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국내에는 우주 발사체용 터보 펌프를 제작해 본 산업체도 없었다. 산업용 터보 펌프를 만든 경험이 있는 업체 가운데 우주 개발에 참여할 열망이 있는 곳을 찾아 나서야만 했다.

 

이러한 어려움을 딛고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연구진은 지난 2000년대 중반 30t급 엔진의 선행 연구를 통해 터보 펌프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실매질 시험(실제 발사체에 사용되는 연료와 산화제를 넣고 지상에서 시행하는 시험)을 위한 설비조차 없던 시절이다.

 

연구진은 터보 펌프를 완성하고, 2007년 4월 해외 설비에서 첫 실매질 시험에 들어갔다.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순조롭게 보였던 시험은 시작한 지 14초가 지나 터보 펌프의 회전 수가 1만8000rpm이 되었을 때 산화제 펌프 내부에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산화제 펌프가 폭발하는 사고로 이어졌다.

 

다행히 연료 펌프의 손상이나 연료 유출은 일어나지 않아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산화제 펌프의 부품이 모두 망가졌다. 연구진은 부서진 산화제 펌프를 모두 들고 한국으로 돌아와 하나하나를 점검하고 원인을 찾아냈다. 

 

지난 2014년 전남 고흥군에 완공된 ‘나로우주센터’의 터보펌프 실매질 시험(실제 발사체에 쓰이는 연료와 산화제를 넣고 지상에서 시행하는 시험) 설비.

그 후 1년이 지난 2008년 연구진은 다시 터보 펌프를 들고 해외의 시험 설비장으로 향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우주 개발을 향한 도전에서 ‘100% 완성’, ‘100% 성공’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순간이었다.

 

연료 탱크와 산화제 탱크, 연소기, 터보 펌프를 비롯한 75t급과 7t급의 엔진 등 한국형 발사체를 완성하기 위한 발걸음은 계속 진행 중이다. 몇몇은 개발을 마쳤고, 다른 일부는 시험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각각의 개발과 시험이 완료되면 엔진과 부품을 연결해 또 시험이 이루어진다. 30t급 터보 펌프의 실매질 시험 역사에서 보듯 100% 완성, 100% 성공은 없다. 개발을 마쳤다고 하더라도 시험 과정에서 또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우리 손으로 만든 발사체가 완성과 성공을 향해 조금씩 다가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것이 결승점이 아니다. 완성과 성공은 또 다른 도전의 출발점이다. 항우연은 실패와 좌절이 반복되더라도 결승점인 동시에 출발점인 목표를 향해 한걸음씩 전진할 것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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