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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문서로 본 한국 재건사] 6·25전쟁 당시 일부 한국인 日 피란 공식 확인

입력 : 2017-10-23 20:26:31 수정 : 2017-10-23 20: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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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정부, 881명 불법 입국자로 간주/경황 없는 이승만 정부에 송환 통보/美극동군사령부 나서 후속절차 진행 미국 극동군사령부(FECOM)가 1950년 11월 28일 작성한 공문에는 일본으로 입국하려던 한국인 피란민 881명 처리문제가 나온다.

공문에 따르면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하리오(針尾)수용소(오무라수용소의 전신·현 오무라입국관리센터)에 한국인 피란민 881명이 한국 송환절차를 기다리며 억류상태에 있었다. 일본 정부는 이들을 불법 입국자로 간주해 한국 정부에 송환절차를 밟겠다고 통보했으나 전란 중이던 이승만정부는 경황이 없었다. 일본 당국이 통보한 내용을 접수한 극동군사령부는 이승만정권에 이들 피란민을 송환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고는 승인 의사를 받아냈다. 한국 정부가 피란민 송환에 필요한 능력이 전무했던 만큼 후속 절차는 전적으로 미군에 의존해야 하는 처지였다. 공문에는 극동군사령부가 이들 피란민을 1950년 12월 11일까지 부산으로 데려오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한국인의 일본 피란이 어떤 경로로 이뤄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들이 부산항으로 안전하게 도착했는지도 기록에 남겨져 있지 않다. 다만 미군 측에서 상세한 송환 계획을 수립했고, 한국 정부가 이에 동의했던 만큼 송환은 정상적으로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6·25전쟁 당시 일부 한국인의 일본 피란이 이 문서로도 확인되는 것이다.

6·25전쟁 당시 일본에 입국하려던 한국인 피란민 881명 처리 문제를 언급한 미국 극동군사령부(FECOM) 공문.
숙명여대 글로벌거버넌스연구소 제공
공문이 작성된 시점이 11월 28일이므로 이들이 일본으로 향했던 시점은 중공군이 대거 참전하기 이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에서 대량의 피란민이 발생했던 시점은 흥남철수 이후다. 흥남철수는 1950년 12월 15일부터 12월 24일까지 열흘 동안 동부전선에 투입되어 압록강 유역의 혜산진과 두만강 유역까지 진출했던 미국의 제10군단과 한국군 제1군단이 함경남도 흥남에서 배편으로 철수한 작전이다. 당시 퇴각하는 한국군과 미군을 따라서 북한 지역에 살던 주민도 대거 남쪽으로 피란을 내려오면서 수많은 난민과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worldpk@segye.com 
취재지원=숙명여대 이민룡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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