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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정보추구 욕구는 생존에 필수적 / SNS, 분노 대리 발산해주는 매체로 전락
‘루머의 루머의 루머’란 미국 드라마가 있다. 자살한 여학생이 보낸 테이프가 도착하면서 주변 친구 각각이 직간접적으로 자살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를 조명하는 드라마이다. 처음 시작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 이 여학생이 치마를 입고 미끄럼틀을 내려오는 민망한 사진을 한 남학생이 찍어 전교생에게 퍼뜨리게 된다. 그러면서 이 여학생은 헤픈 여자로 낙인찍히고, 이러한 소문은 소문에 소문을 낳으면서 회복되지 않을 상처가 주어지게 된다.

인간은 늘 정보를 추구한다. 이런 정보추구 욕구는 생존에 필수적이다. 진화심리학적으로 원시 사회에는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산사태가 일어날 조짐이 보일 때나 강물이 넘쳐흐르는 것과 같은 정보가 전해지면서 사람들은 신속히 대처할 수 있었다. 이렇게 소문에 민감한 사람이 더 잘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래서 현대 사회에서도 사람은 늘 정보수집에 급급하고, 또 이를 전달하는 것에 주력한다. 바로 그 많은 사람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사용하고 거기에 전적으로 매달려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불확실하거나 애매한 정보를 접하게 되면 사람은 그 어떤 설명이나 해석을 찾으려 한다.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원인을 알려고 하는 욕구이다. 불확실한 것을 확실하게 만들어서 불안이나 두려움을 해소하려 한다. 이에 본인의 경험과 지식에 근거해 애매함을 나름대로 명확하게 만들고 때로는 거기에 자신의 상상과 편견이 입혀지기도 한다. 결국 부풀려지고 왜곡돼 허위가 사실인 양 둔갑하기도 한다. 이렇게 사실이 돼 버린 허위 소문은 무섭게 전달되기 시작한다. 친한 사람뿐 아니라 몇 번의 전달과정을 거쳐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연결된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동질의식을 확인하고 일체감을 느끼며, 같은 생각을 가졌다는 집단소속감을 가진다.

개인적인 기쁨도 크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고 이런 정보를 내가 가지고 있다는 만족감이 크다. 여러 사람에게 전달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가르쳐 준다는 쾌감도 커진다. 사건을 파헤치고, 상대를 비난하고 음해하면서 자신이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착각과 환상까지 가지게 된다.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자신감마저 커진다. 그러다 보니 어떤 정보를 접하든 즉각 답을 달아야 할 것 같고, 전달해야 할 것 같은 강제적인 압력도 느끼게 된다. 바로 ‘자기-강제적’ 연쇄반응이다.

이 과정을 핵분열 연쇄반응과 비교한 학자도 있다. 원자핵을 중성자와 충돌시켜 분열시킨 뒤 다시 생성된 중성자로 핵분열 연쇄반응이 일어나게 하는 최소질량인 임계질량이 있다. 근거 없는 허위 정보에 수긍하고 신상 털기와 같은 음해공작에 대해 답을 달고 퍼나르는 사람의 숫자가 어느 임계치에 도달하면 그 다음은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계속 스스로 분열을 일으키면서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연쇄반응으로 급속히 퍼져 나가게 된다. 최근 일어난 240번 버스 기사에 대한 마녀사냥이나 연예인, 학자에게까지 허위가짜 뉴스를 만들어 음해 비방하는 사건에서 일어나는 핵분열반응을 목격할 수 있다.

SNS는 정보를 공급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긍정적인 매체가 더 이상 아닌 것 같다. 신상털기, 욕설과 비방이 난무하는 마녀사냥터가 돼 개인적 분노를 대리 발산해주는 매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어쩌면 북한 핵만큼이나 무서운 매체로 말이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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