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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가을하늘은 한없이 높고 청명하다. 그래서인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는 유독 가을하늘 사진을 올리는 팔로어들이 많은 것 같다. 하늘이 파랗고 나뭇잎이 예쁘게 물드는 가을은 한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계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좋은 계절도 맑은 날과 비오는 날이 번갈아 찾아와 급속히 서늘해진다. 밤낮 기온이 10도 이상 되는 일교차 때문에 새벽에 짙은 안개가 끼는 날도 많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밤에 남편이 갑자기 산에 갈 준비를 하라고 해서 출발한 적이 있다. 서둘러 기차를 탔는데 자리는 없고 사람은 많아 신문지를 깔고 통로에 앉았다. 캄캄한 밤에 올라가는 야간산행이다. 산은 그렇게 높지 않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꽤 높아서 힘이 들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올라갔지만 막상 내려가려고 하는데 전날 비가 와서 길이 미끄럽고 혼자서는 도저히 내려갈 수가 없었다. 남편 친구들이 긴 막대기를 주워와 그 나뭇가지 앞뒤를 그들이 어깨에 메고 나는 그 막대기의 중간에서 대롱대롱 원숭이처럼 매달려 간신히 내려왔다. 

요코야마 히데코 원어민교사
여기까지였다면 쓸데없이 고생시키는 남편에게 화를 내려 했었다. 그런데 산에서 내려왔을 때 짙은 안개 속에서 나타난 새빨간 단풍이 너무나 예뻐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부부싸움을 할 뻔한 상황이 단풍잎 덕분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바뀌었다.

한국의 자연의 색은 봄에 피는 개나리, 진달래, 그리고 가을의 단풍나무처럼 화려하고 눈에 띄는 원색이 많다. 그것은 한국의 날씨가 비교적 맑은 날이 많고 햇빛이 강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아름다운 색은 의식주에 그대로 나타난다. 한국의 전통의상인 한복은 꽃이 피는 모습처럼 참 예쁘다. 또 한국의 음식은 김치도, 생채도 예쁜 빨간색이 나와야 먹음직스럽다. 한국의 대표적 음식인 비빔밥을 보면 검은색인 고사리, 황색인 콩나물, 초록의 시금치 등 오색이 어우러져 맛있게도 보이고 영양가도 많다. 또 한국의 절에 가면 기둥이나 처마에는 계속 이어지는 무늬가 화려한 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의 색은 음과 양, 남과 여, 천과 지라는 이질적인 성질을 가진 음양오행설과 자연계의 수목화토금의 다섯 요소가 서로 영향을 주면서 변해가는 오방색이 기본으로 되어 있다. 그 색의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고 오방색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상징해서 그 다섯 가지 색은 우주의 에너지를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색은 자연에서 만들어진 정감이 있는 부드러운 색이 많아서 그러한 파스텔 색을 선호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뚜렷한 색을 통해서 기를 받고 에너지를 얻고 있는 것 같다. 일교차도 연교차도 큰 한국에서는 기운이나 에너지를 잘 받고 건강하게 사는 것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인 듯싶다. 그 일교차 때문에 한국의 단풍은 진하고 참 예쁘다. 일부러 멀리 가지 않아도 길을 산책하면 단풍구경을 할 수 있다. 단풍은 하나의 노화작용이라고 하는데 이렇게나 예쁘게 노화를 진행하는 나무가 부럽기도 하다. 머지않아 색이 다 없어지는 겨울을 맞기 전에 아름다운 색을 보여주는 자연에 감사한다.

요코야마 히데코 원어민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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