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시베리아·레나강을 가다] 다가올 북극항로 시대… ‘극동의 젖줄’서 한국 미래 찾자

입력 : 2017-10-14 18:00:00 수정 : 2017-10-14 13:29:0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1〉 사하공화국을 왜 가야하나
시베리아는 남북으로 연해주에서부터 북극해 연안까지, 동서로 우랄산맥 동쪽에서 베링해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다. 이 지역의 중심은 사하공화국이다. 사하공화국의 넓이는 한반도의 15배이지만, 인구는 100만명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동토에 속하는 툰드라이거나 타이가 삼림지역이다. 겨울이 7개월에 이르고 한겨울엔 영하 50도 이하로 내려가는 극한지역이다. 그러나 여름엔 영상 30도까지 오르고, 일조량은 흑해 연안의 소치보다 많아 농사도 제법 지을 수 있다. 척박할 것처럼 보이는 이 지역은 세계 다이아몬드 생산의 50%를 차지한다. 그밖에 철, 석탄, 가스와 우라늄, 토륨 등 희귀금속들의 매장량이 세계적이다.

시베리아와 북극권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하는 데에는 더 큰 미래지향적 이유가 있다. 최근 “북극해 항로를 통해 물류를 유럽으로 보낼 수 있다면?”이라는 명제가 단순한 가정에서 세계적 현안으로 떠올랐다. 중국은 이것을 그들의 “일대일로” 정책의 일부로 추진하고 있고, 일본도 이것을 위해 정부 내에 특별한 조직을 만들었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대륙을 향한 모든 행선지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보다도 중요한 위치에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북극권을 통한 물류는 한국의 미래에 생존적 요인이 될 것이다.

겨울철 꽁꽁 얼어붙은 레나강에서 시베리아 소수민족 중 한 종족인 에벤키인들은 매년 개최하는 축제의 하이라이트로 순록썰매경주를 한다.
북극항로 개척 역사는 16세기 말에 시작되었다. 16세기 말 네덜란드의 빌럼 바렌츠가 최초로 시도한 북극항로 개척은 실패로 끝났다. 바렌츠의 실패는 300여년이 지난 1878년 스웨덴의 아돌프 에리크 노르덴셸드에 의해 완성되었다. 북극항로는 이제 미답의 길이 아니다. 대우조선에서 건조한 쇄빙선이 2015년 이미 통과했다. 이 항로를 통하면 부산에서 네덜란드의 로테르담까지 수에즈 운하를 거치는 노선보다 10일 이상 단축시킬 수 있다. 이 북극항로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물류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북극항로는 풀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다.

사하공화국의 레나강 수로는 훨씬 안전하고 편리한 대안이 될 수도 있다. 동서로만 이어지던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네륜그리, 알단을 거쳐 니즈니베스탸흐까지 올라왔다. 시베리아 최북단 철도역에서 강을 건너면 야쿠츠크이다. 여기서 북극해까지는 강폭이 평균 10km에 달한다. 수심도 깊다. 유속도 빠르다. 베링해협을 우회하는 것보다 더 경제적일 수도 있다. 레나강 수로가 개발되면 강 유역의 삼림자원과 지하자원이 경제성을 갖게 될 수 있다. 이것은 러시아연방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북시베리아 등에 사는 소수민족인 에벤키족의 아이.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연구소의 북극권 항로 개척을 위한 레나강 탐사 프로젝트는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국가적 소명인 동시에 연구재단의 지원을 받는 HK연구소로서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해야 할 당연한 의무이다. 그러나 국내의 어느 누구도 해 보지 않은 일이어서 준비에 어려움이 많았다. 탐사 파트너인 북동연방대학교도 레나강에 대한 학술 탐사 경험이 없었다. 북극의 틱시까지 배로 탐사하려는 애초의 계획은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수정된 탐사 루트는 남쪽으로 연방도로를 타고 자동차로 알단을 거쳐 석탄산업의 중심 네륜그리까지 갔다 오고, 북쪽으로 산가르읍을 거쳐 북극권에 위치한 에벤키 마을 지간스크와 크스타트암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다가오는 북극권 항로 시대에 레나강 수로를 통한 대체 통로를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베링해를 돌아 북극권을 항해할 수 있다 해도 사하공화국을 물류 기지로 만들어 레나강을 대체 통로로 만들 수는 없을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네륜그리, 알단을 거쳐 야쿠츠크까지 기차로 물류를 보내고 야쿠츠크에서 틱시항까지의 수로를 북극권 항로와 연결한다면 북태평양을 거쳐 북빙양으로 들어가는 항로에 비해 더 경제적이지 않을까?

이와 더불어 레나강 탐사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소수민족의 생활상에 대한 고찰도 중요한 목적 중 하나이다. 이것은 지역 사회를 인문사회적인 관점에서 깊이 있는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선 꼭 수행해야 할 과제이다. 사하공화국에는 야쿠트인 외에 퉁구스어족 계통의 에벤키와 에벤족, 고대 아시아어족으로 분류되는 축치와 유카기르인이 공존하고 있다. 특히 문화와 언어가 소멸 직전에 있는 이들 소수민족의 관련 자료를 축적하는 것은 향후 이 지역에 대한 심층적 연구와 이해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시베리아 연구와 개발에서 주도적 위치를 갖기 위한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다.

레나강에서 만난 어부들.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긴 레나강은 광막한 시베리아의 타이가를 동서로 가르면서 북극해로 흐른다.
본 시리즈는 탐사 프로젝트 여정에 따라 연재된다. 총편에 이어 사하공화국의 수도이며 ‘북동 시베리아의 별’이라고 불리는 야쿠츠크를 소개한다. 이 시는 366년 된 도시로서 러시아인과 야쿠트인이 어떻게 협력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도시에서만 볼 수 있는 민속박물관, 전시물을 통해 역사적, 문화적 정체성을 살펴볼 것이다. 세 번째로는 야쿠츠크에서 530km 남쪽에 위치한 도시 알단을 방문할 것이다. 이 도시는 한때 금광으로 유명하여 대한제국 시절 많은 한국인 유민들이 금을 찾아 왔다가 뿌리를 내린 최초의 지역이다. 이 지역의 에벤키 마을 하티스티르도 소개한다. 300km를 더 내려가면 석탄도시 네륜그리가 있다. 이 도시는 러시아 정부의 ‘동방정책’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다. 남야쿠티야의 산업 중심지이면서 시베리아 횡단철도(TSR)과 레나강 수로를 연결하는 교통 요충지이다. 남쪽으로는 중국과 인접한 아무르와 연결되는 지정학적 중심지이다. 우리 정부의 ‘신북방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선 새로운 극동·시베리아 진출을 위한 전진기지로서 주목해야 할 곳이다.

레나강은 사하공화국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다. 바이칼 호수 북쪽 인근에서 발원하여 북극해로 흘러가는 4300km의 길고 넓은 강이다. 길이로는 세계 5대 강 중 하나로서 레나강 석주(Lena pillar)는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레나강은 사하공화국의 주요 운송과 경제 활동의 기반이며, 사하공화국의 주요 거점들은 이 강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북위 66도 부근 40여개의 크고 작은 무인도들의 아름다운 경관을 다섯 번째 이야기가 전할 것이다.

야쿠츠크에서 북쪽으로는 도로가 발달하지 않았다. 이 지역은 항공로나 레나강 수로를 이용해야만 한다. 2대의 모터보트에 북동연방대학교 교수들과 분승하여 레나강을 따라 함께 탐사하면서 겪은 경험을 우리나라 연구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레나강 수운 요충지인 산가르 마을, 그곳에서 본 민속 공연, 주민과의 인터뷰, 세월의 변화 속에 묻혀 사라진 마을 타아스 투무스의 운명, 불의 신에 대한 헌제 풍습, 무인도에서 겪은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경험, 북위 66도를 넘으며 백야가 빚어내는 레나강의 일몰과 일출의 교차 광경이 여섯 번째 이야기가 될 것이다.

북극권에 위치한 에벤키 마을 지간스크와 크스타트암에서의 이틀이 일곱 번째 이야기의 주제가 될 것이다. 북상하면서 본 66도 북극권 표지석, 에벤키박물관, 열악해 보여도 없어선 안 될 공항의 광경, 중요한 비타민 공급원인 야생딸기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들판, 이들의 행복지수에 대해 일곱 번째 글에서 생각해 본다.

강덕수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연구소장·교수
연재를 마무리하며 총론적 관점에서 소수민족, 사하인의 현재와 미래, 한국과 사하의 미래 교류 전망을 제시한다. 북극권의 소수민족, 특히 에벤키와 에벤은 퉁구스어족으로서 한국인과 많은 공통점이 있다. 이 공통점들이 무엇인지 알아볼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 발해 유민이라고 한다. 이들을 연구하는 것은 가설 단계에 머물러 있는 한국어와 퉁구스어의 연관 관계를 언어학적으로 입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발해 연구에서 잃어버린 조각을 복원하는 계기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어 지난 20여년간 사하공화국 주민의 생활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살펴본다. 이것을 러시아 전체와 비교하면서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변화 양상과 과정을 짚어볼 것이다. 이것은 모스크바, 페테르부르크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 양상을 비교하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과 사하공화국의 미래 관계를 예측해 볼 것이다. 한국과 사하는 이미 1990년대 초부터 민간 차원의 교류가 시작되어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1994년에는 영재학교 개념으로 사하·한국학교라는 특수학교가 개설되어 2014년에는 개교 20주년 행사가 성대하게 치러졌다. 태평양·아시아협회가 보내는 대학생 봉사단이 2011년까지 활동하고, 이어 한국·사하친선협회가 주관하는 대학생 포럼이 5년째 이어지고 있다. 인천과 야쿠츠크 간에는 1주 1편의 정기노선이 있다. 최근에는 아시아나항공이 운항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 전체에서 사하공화국보다 더 친한국적인 곳이 또 있을까 의심스럽다. 이러한 분위기를 바탕으로 우리는 미래 시베리아에서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 것인가? 탐사 프로젝트를 세계일보에 연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강덕수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연구소장·교수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