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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집행 20년, 사형제를 말하다] 새로운 유형 흉악범죄 느는데…사형 판결 고민 깊은 법원

입력 : 2017-10-10 20:01:30 수정 : 2017-10-11 07:2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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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수법·심리상태 등 양형요소에 포함 ‘준엄한 심판’

20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실질적 폐지 국가’지만 법률상 ‘사형제 존치 국가’인 한국의 법원은 고민이 깊다. 우선 사형제를 찬성하고 집행까지 요구하는 여론과 폐지에 적극적인 진보 성향의 정치인, 법률 전문가, 시민·종교단체의 주장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해서다. 사이코패스의 출현 등과 같은 새로운 범죄 유형에 대한 적절한 대응도 필수다.

 

10일 국회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사형수 61명의 판결문을 세계일보 취재팀이 분석한 결과 법원은 이런 요구와 변화에 대해 판결 논리의 정교화로 대응했다. 범행 수법과 결과, 동기뿐만 아니라 범죄자의 성장과정, 범행 당시의 심리상태, 사회적 책임의 여부 등도 형량을 정할 때 감안하는 요소로 포함시켜 극히 보수적으로 사형 판결을 내린 것으로 분석됐다.

 

 

◆황금 좇는 흉악범죄, 분명한 엄벌

 

1990년대 후반까지 법원이 사형을 선고한 범죄의 유형은 대체로 금품을 노린 살인, 묻지마 살인, 조직폭력배 살인으로 분류된다.

 

돈은 흉악 범죄의 가장 큰 동기였다. 사형수 박진봉이 전형이다. 그는 1998년 10월 경남 김해에서 양모(10)군을 납치, 살해 후 양군 부모에게 돈을 요구하다 붙잡혔다. 박한상, 박광, 이동진, 박경수, 이규상, 강영민 등도 비슷한 유형의 사형수들이다. 이 가운데 박한상은 거액의 유산상속을 받으려고 부모를 살해 후 화재사건으로 위장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박한상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사형수로는 임동수가 있다. 임동수는 1997년 7월 서울 봉천동의 한 주택가에 들어가 6살, 4살 형제와 아이들의 엄마를 죽였다. “울적한 기분에 무슨 일이든 저질러야겠다는 생각”이 발단이었다.

 

조폭 범죄는 엽기적이었다. 영웅파 두목 이순철은 1999년 10월 후배 조직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죽인 뒤 인육까지 먹는 잔인함을 보였다. 막가파 두목 최정수는 주점주인을 납치한 뒤 “손에 피 묻히기 싫다”며 산 채로 매장했다.

 

법원은 이 같은 범죄들에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법원은 “범행에 상응하는 형벌로써 피고인을 응징하고 우리 사회에 갈수록 심화하는 인명경시·황금만능 풍조를 타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는 제2, 제3의 동종범행을 예방하기 위한 차원”(박경수 사건)이라는 이유에 입각해 사형을 선고했다. 선고 이유를 꼬치꼬치 밝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있다 해도 “인명경시와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경종” 등 일반적 원칙만을 밝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이코패스의 등장… 심리학 연구의 반영

 

사이코패스의 등장은 21세기 들면서 법원이 본격적으로 맞닥뜨린 새로운 범죄 유형이었다. 이에 대응해 법원은 범죄심리학과 정신의학의 최신 연구 성과를 판결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정두영은 사이코패스 출현의 예고판이었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부산·경남 일원에서 9명을 잇달아 살해한 정두영은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성을 보였다.

 

우리 사회에서 사이코패스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법원에서도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거론하기 시작한 것은 정두영을 롤모델로 삼아 무려 20명의 목숨을 빼앗은 유영철 사건 때였다. 당시 모든 언론이 사이코패스란 말을 썼고 사이코패스에 대응하기 위한 ‘프로파일링’이 주목을 받았다. 법원은 유영철에 대해 “반사회성 인격장애 및 경계선 인격장애 성격의 소유자”라고 판단했다. 사이코패스란 용어를 판결문에 쓰진 않지만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범죄자란 점을 법원도 주목한 것이다.

 

2009년 강호순 사건부터 법원은 사이코패스 여부를 판결에 적극 도입했다. 1심과 2심은 강호순을 두고 “심리분석 결과 반사회적 성격과 타인의 감정에 관한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이코패스”라고 거듭 지적했다. 이후 사이코패스 진단은 흉악범 재판의 단골 쟁점이 됐다. 사형을 선고하지는 않았지만 오원춘, 박춘풍, 인천초등생 살인 사건 등에서 사이코패스 여부가 쟁점이 됐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뇌과학적 또는 의학적 판단기준으로서의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가 법률적 판단을 내릴 때의 심신미약 또는 심신상실이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다”며 “의학적 사이코패스는 실제 양형에서는 ‘묻지마 살인’으로 평가돼 더 엄중한 양형사유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흉악범죄, 국가의 책임은 없는가”

 

‘삐뚤어진 사회가 낳은 괴물은 아닐까’라는 의문을 품게 하는 범죄자를 두고 법원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폐쇄적·억압적 사회 구조에 강제 편입된 사람의 이상심리가 발달해 극단적 범죄로 치달은 것에 대해 “국가가 사형으로 단죄할 권한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 것이다. 2005년 530GP 총기난사 사건, 2011년 강화도 총기난사 사건 등 일련의 군대 총기 사건이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법원은 “지휘체계의 확립과 상관에 대한 복종을 생명으로 하는 군대에서 일어난 범행으로 일반 국민이 입은 불안감과 충격 등을 고려할 때 극형의 선고가 정당화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강화도 총기난사 사건)는 태도를 취했다.

 

 

동부전선 GOP(일반전초)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킨 임모 병장(가운데)이 사건 현장인 22사단 GOP에서 총기 난사 상황을 재연하고 있다. 자료사진
하지만 2014년 6월 GOP에서 발생한 ‘임 병장 사건’에서 대법원의 의견은 갈렸다. 다수 의견은 사형을 선고하며 “피고인에 대한 조직적인 따돌림이나 폭행, 가혹행위 등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의 정신적, 신체적인 괴롭힘이 존재했다고 보기 어려운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소수의견은 달랐다. 정신감정 결과를 길게 인용한 뒤 “소초 내의 집단 따돌림으로 쌓인 분노와 적대감에 이성적인 판단력을 잃어 갑자기 범행을 결심하게 된 것”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범행의 결과가 매우 중하다고 사회적 파장과 형벌의 일반예방적 목적 등을 내세워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소수의견은 “극악한 범죄의 원인에는 국가·사회의 환경적 요인도 작용하는데, 범죄의 결과에 아무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는 국가가 범죄인에게 사형으로 책임을 묻는 것은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는 판단까지 내놨다.

 

소수의견은 개인에 가해진 구조적 억압과 그로 인한 범죄에 대해 국가, 사회의 책임은 없는지를 묻는 우리 사회의 견해들이 판결에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부 경찰팀=강구열·박현준·남정훈·김선영·김민순·김범수·이창수 기자 hjun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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