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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은 시민 아닙니까?” 투신자살한 서울시 공무원 떠나 보내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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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9-29 06:00:00 수정 : 2017-09-28 23:3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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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은 시민이 아닙니까? 직원이 있어야 시민을 위해서 일할 것 아닙니까.”

지난 28일 저녁 서울시청 본관 1층 로비에서 마이크를 잡은 중년 남성이 절규했다. 가장 앞줄에서 이야기를 듣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지난 18일 서울 도봉구 한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서울시 공무원 A(28)씨의 아버지 B씨는 이날 열린 아들의 이별식을 찾았다. 
서울시청 본청 1층 로비에 설치된 추모의 공간.

지난 25일부터 시청 본관 1층에는 A씨의 죽음을 추모하는 공간이 설치됐다. 고인의 영정사진 앞에는 동료들이 두고 간 국화꽃이 가득했다. 영정사진 옆 기둥은 ‘추모의 벽’으로 꾸며져 직원들이 남긴 400여장의 포스트잇이 붙었다. 이날 열린 이별식은 지난 추모의 시간을 정리하고 A씨를 떠나보내기 위해 직원들이 마련한 추도행사였다. 행사에는 A씨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박 시장, 류경기 행정1부시장, 김종욱 정무부시장 등 서울시 간부들이 대거 참석했다. 직원 70여명도 퇴근을 미루고 자리에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을 애도했다.

2014년 서울시 7급 행정직에 합격한 A씨는 2015년부터 서울시 본청에서 근무했다. 입직 후 청소년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A씨는 지난 1월 예산과로 발령을 받았다. B씨는 “예산과에서 일한 뒤 아들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며 “6월부터 거의 매일같이 야근하고 주말마다 출근했다”고 말했다. 평소 공무원이 된 것을 자랑스러워하던 아들은 어느 순간부터 “업무가 너무 많아서 힘들다”고 토로하기 시작했다고 B씨는 전했다. B씨는 “아들이 워낙 바빠서 같이 저녁 먹자고 시청 근처에서 약속해도 아들이 밥 먹기 직전에 ‘일이 너무 많아서 나갈 여유가 없다’며 끼니도 챙기지 못하고 일했다”며 “사람이 다 살자고 일하는 건데 매일 야근하고 새벽 3∼4시에 퇴근해서 아침 8시에 출근하는 직장이면 사람 죽이려고 작정한 거 아니냐”고 울먹였다.

한동안 말을 잊지 못하던 B씨는 “아들이 초등학생 때 얼굴에 큰 화상을 입어 중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힘들게 치료 받으면서 검정고시로 중졸 졸업장을 땄다”며 “어린 나이에도 힘든 내색하지 않고 치료를 견딘 아이인데 이렇게 떠난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아들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철저하게 조사해달라”고 부탁했다.

B씨가 아들의 영정사진 앞에서 울먹이자 일부 직원들은 울음을 감추지 못했다. A씨와 같은 과에서 근무했다는 한 직원은 “정말 착하고 성실한 직원이었는데…”라며 말을 잊지 못했다. 울음을 참으려는 훌쩍임과 흐느끼는 소리만이 시청 로비를 채우고 있었다. 
지난 28일 서울시청 본관 1층 로비에서 열린 이별식에서 참석자들이 A(28)씨 죽음을 애도하며 묵념을 올리고 있다.

박 시장은 유가족과 동료 직원들 앞에서 머리 숙여 사과했다. 그는 “고인의 죽음을 헛되지 않도록 충분히 조사해 서울시 조직문화를 개혁하는 계기로 삼겠다”며 “모든 것이 다 제 잘못이다”고 말했다.

A씨와 함께 입직한 동료 직원은 추모사에서 “언제부터 우리는 힘들면 안 되는 세상이 됐을까. 힘들다고 말하면 ‘나약하다’는 편견 때문에 우리는 힘들다고 말할 권리조차 빼앗겼다”며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깊은 유감을 표현했다.

1시간에 걸친 이별식은 서울특별시청지부 김경용 위원장의 ‘잊지말자 000아, 잘 가라 000’이라는 외침으로 마무리됐다. A씨를 추모하며 기둥을 빼곡히 채운 포스트잇에는 다음과 같은 메모가 하나 남아있었다. ”당신은 갔지만 또…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더 두렵습니다.” 2011년 박 시장 취임 후 7번째 자살사건을 마주한 서울시 공무원들은 문제를 두고 변화하지 않는 조직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직원은 “직원은 그대로인데 새로운 사업만 자꾸 벌이면서 조직을 키우다보니 과부하가 걸리지 않을 수 없다”며 “자살한 8번째 동료가 생기기 전에 반드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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