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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도 공원을 누빈 소녀 중 한 명이었겠지요

입력 : 2017-09-23 13:02:59 수정 : 2017-09-22 18: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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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별로 무섭게 생기지 않은 것 같은데요?”

22일 오후 1시30분쯤, 인천 연수구의 한 근린공원에서 만난 소년은 “처음 보는 아저씨가 과자를 주는데도 안 무섭니?”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소년은 팝콘 건네는 기자를 뚫어지게 쳐다보고는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은 나이를 묻자 “아홉 살이요”라고 답했다.

해당 공원은 인천 초등생 살인범 주범이 피해아동(8)을 만난 곳이다. 지난 3월29일, 오후 12시47분쯤 집에 전화를 걸고 싶다며 아무것도 모른 채 주범에게 다가갔던 가엾은 아이는 뒤를 따라갔다가 다시는 가족을 만날 수 없었다.

 

인천 연수구의 한 근린공원. 이곳은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주범 김모(16)양이 피해아동을 만난 곳이다. 선고공판이 열리던 22일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공원을 지켰다.


조금 전 근처 초등학교 저학년 하굣길은 무척 시끄러웠다. 아이를 기다리는 여러 학부모와 학원 관계자 등이 정문에 길게 늘어섰다. 노란색 학원차량도 보였다. 엄마들이 타고 온 것으로 추정되는 각종 승용차가 비상깜빡이를 켠 채 인도 옆에 대기했다.

인천광역시 학원연합회 ‘안전인증 어린이 통학버스’라는 스티커가 창문에 붙은 학원차가 보였다. 연합회 측에 전화를 걸어 취지를 질문했다. 관계자는 “아이들 안전을 위해 지난 1월 도입했다”며 “3700여곳 학원 중 약 2000곳이 동참하고 있다”고 답했다. 2년마다 도로교통공단에서 담당자들이 자격을 검증받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차량이 얼마나 동원되는지는 파악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날 선고공판에서 인천지법 형사15부(허준서 부장판사)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미성년자 약취·유인 후 살인 및 사체손괴·유기죄로 기소된 주범 김모(17)양에게 징역 20년, 같은 혐의로 기소된 공범 박모(18)양에게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지난달 29일 열린 재판에서 검찰은 이들에게 같은 형량을 구형한 바 있다. 재판부는 두 사람에게 재범의 위험성을 이유로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30년도 명령했다.

학부모들은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발생 후, 자기 자녀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하굣길뿐만 아니라 등굣길에도 아이들 안전을 챙겼다. 부모가 아이와 학교에 오가지 못하면, 조부모가 나서서 손자와 손녀를 책임졌다. 손 흔든 뒤 교문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보호자들은 안심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특이하고 유례가 없는 끔찍한 사건이 빚어낸 씁쓸한 현실이다.

 
인천 연수구의 한 근린공원. 이곳은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주범 김모(16)양이 피해아동을 만난 곳이다. 선고공판이 열리던 22일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공원을 지켰다. 사진은 연수구가 설치한 수신자부담전화부스 안에서 촬영.


오후 5시쯤, 다시 같은 공원에 들렀다. 친구들과 미끄럼틀에서 놀던 한 여자아이가 “잠깐만!”이라고 외치더니 웃옷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초등학교 2~3학년쯤으로 추정됐다. 엄마라며 말문을 뗀 아이는 몇 분간 통화하면서도 노는 친구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잠시 후, 전화를 끊은 아이는 친구에게 영어학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더 놀지 못하고 가야하는 게 무척 아쉬운 표정이었다.

연수구가 공원에 설치한 수신자부담전화부스에도 두 여자아이가 들어갔다. 아이들은 집으로 전화를 거는 듯했다. 수화기를 든 채 몇 분간 무어라 말한 아이는 곧장 문을 열고 나왔다. 역시나 발길을 돌렸다. 부스는 피해아동에게 전화기가 없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 연수구의 대책이다.

해가 점점 기울자 놀던 아이를 부르는 엄마들 목소리가 공원 여기저기서 들렸다. 아이가 하나둘 엄마에게 뛰어갔다. 접착제라도 바른 듯 꼭 붙잡은 엄마 손과 함께 아이들은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만약 피해아동이 주범을 만나지 않았다면 우리가 모르고 지나치는 평범한 아이 중 한 명, 밝은 꿈을 그리는 아이 중 한 명, 공원을 누비는 아이 중 한 명이 아니었을까.

인천=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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