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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와 만납시다] 편리함 좇아 스스럼 없이 진입…자전거 사이로 ‘위험천만’ 보행

입력 : 2017-09-23 08:00:00 수정 : 2017-09-22 15:4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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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행금지 안내판 등 무용지물 / 위반땐 20만원 이하 벌금 부과 / 당국, 단속은 못하고 속앓이만 “유진(가명) 엄마, 여기로 가면 안 될 것 같아. 자전거 전용도로라고 표지판이 세워졌네! 반대쪽으로 가야겠어.”

지난 18일 오후 1시쯤. 서울 서대문구 홍제천 인근 자전거 전용도로 앞에서 한 여성이 일행 팔을 잡더니 건널목으로 이끌었다. 바로 앞 자전거 전용도로는 차도 접근을 막는 철제 난간이 세워져 무심코 보면 인도라 여기기 십상이었다. 자전거 전용도로로 들어서려다 ‘보행자와 유모차 통행금지’라고 적힌 노면 표시를 보고는 발길을 막 돌리는 것으로 추정됐다. 횡단보도를 건넌 두 사람은 반대편 인도를 이용했다.
한 시민이 서울 서대문구 홍제천 인근의 자전거 전용도로로 이동하고 있다. 사고 위험이 있으니 보행자 통행을 금지한다는 안내판이 설치되었지만 대다수는 지키지 않고 있다.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자전거 도로는 4가지로 구분한다. 먼저 자전거 전용도로는 자전거만 통행할 수 있는 도로다. 분리대와 경계석, 그 밖의 유사한 시설물로서 차도·보도와 구분해 설치하도록 돼 있다. 두 번째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다. 자전거와 더불어 보행자도 다닐 수 있도록 차도와 구분하거나 별도로 놓은 도로다. 세 번째는 자전거 전용차로다. 인도와 떨어져 있고 차도에 속해 있다. 차도 일부분에 자전거가 다닐 수 있게 별도 선을 긋거나 안전표지나 노면표시로 일반 차량의 통행을 금지한다. 마지막인 자전거 우선도로는 자동차 통행량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보다 적어 도로 일부 구간과 차로를 지정해 자전거가 다닐 수 있도록 한 시설물이다. 자전거로 차도를 달릴 수 있다는 얘기다. 자전거와 다른 차량이 안전하게 통행하도록 노면에 관련 표시가 있다.

이날 1시간 넘게 관찰한 결과 자전거 전용도로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앞서 언급한 두 여성 외에 사실상 없었다. 보행자 통행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함께 사고 위험이 있으니 건너편 인도를 이용해 달라는 서대문구청 안내문이 도로 양끝과 가운데에 있었지만 보행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한 중년 남성은 “자전거가 올 때 부딪히지 않게 비켜 걸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 남성은 물론이고 보행자 대다수는 자전거 전용도로를 두고 바닥 색깔이 좀 특이한 인도로 인식하는 듯했다. 전용도로에서 손수레를 끌고 이동하는 한 여성은 “자전거 길이라고 선만 그어 놓고 사람은 쓰지 말라고 지시하면 누가 듣겠느냐”고 오히려 물었다. 위험천만하게도 유모차를 밀며 유유히 지나는 한 여성도 관찰됐다.

이들이 스스럼없이 자전거 전용도로로 이동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반대편 인도로 넘어갔다가 홍제천으로 들어서려면 건널목을 다시 건너야 하는 게 번거롭다고 입을 모았다. 자전거 전용도로로 조금만 더 가면 천변으로 쉽게 접어들 수 있는데, 굳이 인도로 다녀야 하는 이유가 있느냐는 게 이들의 항변이다.

자전거를 이용하는 시민들은 전용도로를 법으로 정한 만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라이더는 대부분 헬멧을 비롯한 전용복장을 갖추고 있다. 제대로 달릴 준비가 됐다는 뜻이다.

한 남성은 “자전거 전용도로를 누비는데 갑자기 보행자가 가로막으면 서로 다치게 된다”고 우려했다.

도로교통법은 ‘보행자는 보도와 차도가 구분된 곳에서는 항상 보도로 다녀야 한다’고 명시한다. 이를 어기면 20만원 이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자전거 전용도로를 걷다가 적발되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실제 단속이 이뤄지거나 벌금을 물리는 일은 거의 없다는 전언이다.

지난해 서울시는 시민참여예산으로 이곳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설치했다. 천변으로 접어드는 자전거 이용 시민들의 불만을 받아들여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에 도로를 놓았다. 그 결과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자전거는 마치 곡예하듯 사람을 피해 쌩쌩 달리고 있고, 보행자 상당수는 여전히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있다.

서대문구 관계자는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호소했다. 그는 “자전거 접근성이 떨어져 전용도로를 만들었으나, 보행자 질서는 잡히지 않고 있다”며 “전용도로를 없애고 인도를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서대문구가 실제로 자전거 전용도로에 인도를 설치한다면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나올 건 뻔한 게 현실이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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