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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디지로그(digilog)라는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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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9-22 20:10:33 수정 : 2017-09-22 2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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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도 기술에 의해 탄생 / 부활 아닌 새 디지털에 가까워 / 기술 선택권 절대 포기 말아야 / AI의 역습 감당하기 어려워 손 글씨는 그 자체로 지문(指紋)이다. 그래서 손 글씨로 범인도 잡고 재산도 지킨다. 심지어 손 글씨를 보면서 쓴 사람의 성격을 유추해볼 수도 있다. 개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특히 작가들의 인쇄된 손 글씨는 따뜻한 감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2010년도에 출판된 박민규의 소설집 ‘더블’에는 작가의 손 글씨인 ‘多感, 하소서 박민규’가 속지에 같이 인쇄되어 있다. 유발 하라리의 최신작 ‘호모 데우스’에도 ‘Everything Changes’(모든 건 변한다)라는 저자의 손 글씨가 인쇄되어 있다. 이 책들을 받은 독자들은 작가가 직접 사인을 해준 듯한 친밀감을 느꼈을 것이다.

올해 연말에 무료로 배포된다는 소설가 김훈의 손 글씨체인 ‘김훈체’에서도 이런 감성과 기술의 융합을 확인할 수 있다. 김훈체를 쓰면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면 마치 김훈처럼 글을 쓰는 것 같은 기분에 빠질 듯하다. 김훈이 인터뷰에서 “글씨는 단순히 활자가 아니라 글 쓰는 한 인간의 숨결”이라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김훈체의 보급에서 보듯이 디지털 기술이 아날로그적 감성과 만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미 이어령의 책 ‘디지로그’에서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중에서 ‘둘 중 하나’를 택일하는 사고가 아니라 ‘둘 다’를 융합하는 디지로그적 사고를 강조했다. ‘기계 같은 인간’의 소외를 ‘인간 같은 기계’가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미현 이화여대 교수·문학평론가
요즘에는 디지털 카메라의 편리함이나 보정 기술에 흥미를 잃은 사람들에게 옛날 필름 카메라처럼 한정적으로 24장을 찍은 후 사흘을 기다려야 인화할 수 있는 데다가 보정이 불가능한 사진 앱이 인기란다. 진짜 필름으로 사진을 찍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흉내 낸 디지털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고화소에 자동보정 기능까지 갖춘 최신식 카메라로는 담을 수 없는 빛바랜 색깔이나 다시 지을 수 없는 표정들에 오히려 열광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흘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견디지 못해 휴대전화 날짜 설정을 바꿔 즉시 인화하는 경우도 속출한다니 역시 아날로그 자체는 아닌 디지로그적 정서라고나 할까.

중년 세대 이상은 그냥 펜으로 직접 메모를 하거나 카메라 종류와 상관없이 사진을 찍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은 컴퓨터 서체로 굳이 육필을 모방하고, 앱을 통해 일부러 필름 사진을 모방한다. 인간이 직접 경험했던 것들을 기술의 힘을 빌려 그와 비슷하게 경험한다. 가장 좋은 냉장고란 방금 수확한 채소나 과일처럼 신선도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듯이, 최고의 기술이란 기계가 아닌 것처럼 자연을 구현하는 것이다. 기술이 자연을 창조하는 격이다. 하지만 창조된 자연은 자연 자체가 아니라 그냥 자연 ‘스러운’ 것이다.

젊은 세대들이 향유하는 아날로그도 인공적으로 아날로그를 구현한 것이다. 기억에 의해 재생(再生)된 것이 아니라, 기술에 의해 신생(新生)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들을 아날로그로의 퇴행이나 향수로 평가할 수 없다. 아날로그 세대를 경험해 보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게는 또 다른 디지털이거나 새로운 디지털에 가까울 테니까. 이것을 아날로그가 부활한 것이 아니라 디지털이 진화한 것으로 본다면 너무 비관적인가. 혹은 여전히 디지털 기술로 구현하고 싶을 만큼 아날로그적 감성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으로 본다면 너무 낙관적인가.

보다 절실한 것은 이런 비관과 낙관 사이에서 앞으로의 기술을 인간이 적극적으로 선택할 권리를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기술적 올바름’이 ‘정치적 올바름’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디지로그를 통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기술을 인간 중심으로 구현하자는 환상만으로는 인공지능(AI)의 역습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 선택조차 인간을 통제하는 빅브러더의 역할을 담당할 빅데이터가 결정하지 말란 법이 없기에 더욱 그렇다.

김미현 이화여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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