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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 한국어가 한 이슬람 국가의 학교 정규과목으로 채택됐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린 적 있다. 한국어 위상이 그만큼 높아진 반증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오보였다. 해외 뉴스통신사가 보내온 영문 기사를 잘못 번역한 탓이었다. 이슬람 경전 ‘코란(Koran)’을 ‘한국어(Korean)’로 읽어 빚은 해프닝이었다. 영어 실력을 책망할 일만은 아니다. 몇년 전 국회가 영문 홈페이지에 ‘한류’를 ‘코란 웨이브(Koran wave)’로 소개했을 정도로 흔한 실수이니 말이다.

해외에 나간 특파원에게 현지 언론은 주요 취재원이다. 현지 신문을 읽다가 번역은 되는데 뜻을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더러 있다. 스포츠나 역사 등 배경 지식이 없으면 본뜻을 파악하기 어렵다. 그럴 때 이중언어에 능통한 친구가 있다면 크게 도움이 된다. 접해 본 적 없는 표현에 애를 먹기도 한다. 미국이 멕시코 국경에 설치하기로 한 ‘three-tier fence’를 국내 유수 언론사가 ‘3층 울타리’로 번역한 적 있는데, ‘3중 울타리’가 정확한 해석이었다.

며칠 전 번역 실수로 인한 오보 참사가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윗글이 촉발했다. 북한 주유 사정을 빗대어 ‘북한에서 주유를 하기 위한 줄이 길어지고 있다. 딱하다’(Long gas lines forming in North Korea. Too bad)고 표현한 것이다. 일부 언론이 이를 ‘북한에 긴 가스관이 형성 중’이라고 오역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해 밝힌 러시아 가스관 구상에 부정적 견해를 드러냈다는 해석을 낳을 만하다. 청와대가 발끈한 이유다.

오보는 언론에 숙명과도 같다. 속보경쟁 속에서 마감시한에 쫓기다 보면 본의 아니게 오보를 낸다. 그 폐해는 심각하다. 이탈리아 기자의 오보로 베를린 장벽이 하룻밤 새 무너진 것과 같은 해피 엔딩은 거의 없다. 북한 핵문제로 국제적 긴장감이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에서 ‘긴 가스관’ 같은 오보는 위험하다. 언론 불신을 넘어 국가 간 불신까지 조장할 수 있다. 온라인 속보경쟁까지 가세한 언론 환경에서 기자들이 자세를 다시 한번 가다듬을 때다.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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