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황영미의영화산책] 불완전한 기억이 주는 면죄부

관련이슈 오피니언 최신 , 황영미의 영화산책

입력 : 2017-09-08 23:53:29 수정 : 2017-09-08 23:53:28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작가 수전 손택은 “사진은 대상화한다. 사진은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소유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변형시켜 버린다”고 했다. 사진이라는 기록이 찍은 자의 주관에 의해 변형되듯 기억도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잘된 것은 내 탓, 잘못된 것은 남 탓으로 기억하며 왜곡시키기 일쑤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감독 리테시 바트라)는 사진과 기억에 관한 불확실성을 추적하는 영화다. 런던에서 빈티지 카메라 상점을 운영하는 토니 웹스터(짐 브로드벤트)는 레스토랑에서도 옆자리에 떠드는 아이가 있으면 호통을 치는 노인이다. 그러나 자신은 늘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영화의 많은 부분이 토니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되기에 관객들은 토니의 관점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토니가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한 마디에도 돌아서버리는 이혼한 전처나 딸의 반응이 오히려 이상해 보인다.

그런 토니도 자신의 과거를 자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 생긴다. 첫사랑 베로니카(샬롯 램플링)가 그녀의 어머니 사라 포드(에밀리 모티머)의 부고와 함께 사라가 토니 앞으로 유품을 남겼다는 편지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문득 떠오르는 베로니카라는 이름은 그를 대학시절로 이끌며 멜로 영화의 수순을 따르는 듯하다.

토니는 어렵게 베로니카와 재회하지만, 그녀는 어머니의 유품은 태워버렸다며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토니가 베로니카의 새 연인이 된 아드리안 핀(조 알윈)과 베로니카에게 갖은 악담과 저주를 쏟아부었던 내용이 담긴 편지를 내민다. 토니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이 편지를 쓴 정황을 다시 상기해야만 했다. 게다가 자신의 저주가 베로니카의 삶을 지배했다는 것을 아는 순간, 토니는 그동안의 선한 화자 코스프레를 벗어야 하는 역전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다. 그는 다정다감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기억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다. 불완전한 기억이 준 면죄부는 반납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 나이 들어 평소와는 달리 철든 행동을 하면 ‘죽을 때가 됐나’며 농을 한다. 달리 말하면 죽을 때가 돼서야 인간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줄 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미 생의 질곡 속에서 깨달을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타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볼 수 있는 성숙의 이치를 우리는 늦어서야 깨닫는다.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영화평론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