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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청소년 범죄 원인 다양… 소년법 폐지 신중 접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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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9-07 19:58:28 수정 : 2017-09-07 20:3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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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전문 법관’ 부산가정법원 천종호 부장판사 “소년법 폐지는 매우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형법과 청소년보호법 등 우리 법체계 전반과 연계돼 있는 문제입니다.”

전국에서 청소년 관련 재판을 가장 오래 해 청소년 전문 법관으로 정평이 난 부산가정법원 소년1단독 천종호 부장판사는 7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부산 여중생 집단폭행사건으로 촉발된 소년법 폐지 또는 개정과 관련, 신중한 입장을 표명했다.

천종호 부장판사가 소년법 폐지 여론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전상후 기자
천 부장판사는 21년 동안 법관생활을 했고, 8년째 소년사건을 전담하고 있다. 그는 “현재 만 19세로 돼 있는 미성년자 처벌 규정이 18세로 내려간다면 선거권도 18세로 해야 하는 등 전체적인 법체계와 맞물려 있어 소년법 개정은 간단하게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전 부장판사는 “소년사건을 다룬 경험에 비춰볼 때 청소년들이 ‘청소년 관련 처벌규정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 의도적으로 상상치 못할 극악범죄를 저지른다는 게 반드시 맞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청소년 범죄원인은 우리 사회가 잔인한 폭력게임 등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돼 있는 점, 어른들의 범죄행위가 갈수록 흉포화하고 있는 점, 가정해체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청소년 인성교육이 무너지고 있는 점 등 매우 복잡한 문제들과 얽혀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부산 여중생 집단폭행사건 가해자들이 이를 스스로 공개한 것은 상상이 안 되는 점인데, 이런 부분을 추후 수사기관과 관련 전문가들이 심도 깊게 조사·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천 부장판사는 청와대에 청원이 제기돼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소년법 폐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소년법을 폐지하면 형법으로 아이들 범죄를 다루게 되기 때문에 만 14세 미만의 경우에는 형벌을 부과할 수 없고, 결국 소년법에서 다루는 소년보호처분도 할 수 없게 된다는 게 그 이유다. 그는 “소년법이 폐지되면 동시에 만 14세 이상의 아이들은 성인과 동등하게 형법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한 폐지보다는 처벌 상한선을 좀 높이는 등 방안을 강구하면서 청소년보호법이나 민법, 형법, 아동복지법을 전반적으로 재정립하는 법체계의 큰 그림을 다시 그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이번 여중생 폭행사건도 폭력게임과 연관성이 있다고 봤다. 정규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 하고 부모의 관심도 받지 못한 아이들이 갈 곳은 PC방밖에는 없고, 폭력물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폭력게임을 하면 일방적으로 총을 쏘고 흉기로 찌르고 피 튀기는 장면을 보는데, 본인에게는 인격적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에 인격적 공감 능력을 기를 수가 없다”고 밝혔다.

천 부장판사는 청소년 게임 중독의 심각성과 관련, 잘 알려지지 않은 충격적인 일화 한 토막을 털어놓았다. “8년 전 사건으로 기억되는데, 폭력게임에 중독된 10대 후반의 청소년 2명이 심야에 택시를 타고 부산에서 김해까지 이동한 뒤 시가지 외곽 으슥한 곳에서 택시기사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 기록을 검토하면서 무자비한 폭력게임의 중독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는 “그 청소년들은 살인을 밥 먹듯이 하는 고강도 폭력게임에 중독돼 사람을 죽이는 게 얼마나 큰 범죄인지, 반사회적·반인륜적 행동인지를 생각하는 죄의식이 전혀 없었다”며 “본인의 순간적인 쾌감만을 좇을 뿐 타인을 배려하는 능력도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천 부장판사는 “인간성 회복은 기본적으로 가족관계의 회복으로 저녁시간만은 밥상머리 교육이 되도록 해야 하는데, 너무 바쁘니까 가족 간 만날 시간이 없는 게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래서 천 부장판사는 수년 전부터 ‘가족이 무너지면 청소년 교육은 대책이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신념으로 해체된 가정의 문제 아이들을 가정처럼 돌봐주는 ‘청소년 회복센터’ 설치운동을 전국적으로 펼치고 있다. 현재 전국에 19곳이 운영 중이다. 이 센터 운영비는 법원에서 보조해주는 교육비 외에 비용 일체를 종교단체나 개인이 부담한다.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했으나 예산이 한 푼도 편성되지 않아 확산이 되지 않고 있다. 천 부장판사는 “청소년 회복센터를 운영해보니 범죄예방 효과가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예산이 지원돼 전국적으로 잘 운영되면 청소년 범죄 예방에 매우 효과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산=전상후 기자 sanghu6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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