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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은 슬픔… 당신은 외면하고 있지 않나요

입력 : 2017-09-07 21:07:48 수정 : 2017-09-07 21: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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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다룬 영화 2편

 “생리 때도 군인을 받아야 했어요. … 피가 새나오지 않게 솜을 말아서 깊이 넣고 … 나중에 솜이 나오지 않아 …”(김학순 할머니 증언)

“성병이 있으면 606호 주사를 놓아주는데 … 밑이 훌떡 뒤집어지도록 붓고 피가 나는 이들이 많았어”(김덕진 할머니 증언)

“옆 방 애는 … 이놈이 이빨로 젖꼭지를 꽉 물어서 끊어놨단 말이오 … 발로 마구 차서 골반뼈가 다 부서져 … 이틀만에 죽었습니다”(곽금녀 할머니 증언)

일본이 군 위안소를 만든 시기는 1932년이며 본격적으로 설치한 것은 중일전쟁을 일으킨 1937년 말부터다. 일본군은 위안소의 설치 목적, 관리감독, 위안부 동원에 대한 명확한 원칙을 세우고 체계적으로 운영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일본군의 ‘성노예’로 고통받은 여성들은 20만명에 달한다. 취업사기, 유괴, 강제연행의 형식으로 끌려간 여성들의 나이는 10대 초반부터 40대 중반까지 광범위했다. 

끝나지 않은 슬픔,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두 편이 관객과 만난다.

지난해 385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귀향’의 후속작 ‘귀향-끝나지 않은 이야기’와 나문희·이제훈이 주연한 김현석 감독의 ‘아이 캔 스피크’다.
‘귀향-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전작 ‘귀향’에 담지 못했던 장면들과 ‘나눔의 집’에서 제공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 영상을 소개한다. 홀리가든 제공
#귀향-끝나지 않은 이야기

전작에 미처 담지 못했던 장면들과 ‘나눔의 집’에서 제공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 영상을 합쳤다. 작년 상영 때 러닝타임의 제약으로 편집됐던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과 할머니들의 생생한 증언을 소개한다.

조정래 감독은 “피해자들이 실존하고 있고, 당시 겪었던 일이 사실이며, 여전히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며 “작년 ‘귀향’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리고자 만든 극영화라면 이번 작품은 역사적 사실을 증거로 남기기 위한 영상증언집”이라고 소개했다.
일본을 비롯해 전 세계 10개국 61개 도시를 순회하면서 1300회에 걸쳐 ‘귀향’을 상영하고 100회가 넘는 강연회를 열었던 조 감독은 이번에도 전 세계 곳곳에서 상영회를 개최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데 앞장설 예정이다.

“시간이 없습니다. 지난해 ‘귀향’ 개봉 때 46분이던 생존 할머니가 벌써 35분으로 줄었거든요. 대부분 거동을 못할 만큼 몸이 불편하십니다. 할머니들과 여성들에 대한 숙제를 하겠습니다. 일상처럼 여기고 우리가 함께 나서야 할 일 입니다. 일본은 반드시 사죄하십시오. 당신들의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사죄하길 바랍니다.”
‘아이 캔 스피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옥분(나문희)은 뒤늦게 배운 영어로 미 의회 청문회에 나가 일제의 만행을 증언한다. 영화는 옆에 비켜 서서 지켜보기만 하는 우리들의 모습도 담아낸다. 플래닛 제공
#아이 캔 스피크

김현석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처럼 정감어린 장면들로 다가온다. 따뜻한 웃음과 흐뭇한 눈물을 한아름 안기지만, 이번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 ‘결점 하나 없는 영화를 보았다’는 충만감까지 선사한다.

그의 신작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현재’를 무겁지 않은 시선으로, 휴먼 코미디처럼 녹여낸다.

철거위기에 놓인 재래시장에서 옷 수선을 하며 홀로 생계를 꾸려가는 나옥분 할머니(나문희)는 구청의 ‘블랙리스트 1호’다. 지난 수십 년간 제기한 민원만 8000건. 족발 가게 앞 불법 입간판 등 사소한 것도 샅샅이 찾아내 매일 구청에 민원을 넣는다. 옥분 할머니가 나타나면 직원들은 모두 눈길을 피하고 다른 일에 바쁜 척 연기한다.
원칙주의자에다 까칠한 성격의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는 전근 온 첫날부터 옥분 할머니의 일을 맡아 밀고 당기기를 시작한다. 할머니와 손자뻘인 두 사람의 격돌이 곳곳에서 웃음을 낳는다.

앙숙이던 두 사람의 관계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옥분 할머니가 민재에게 영어를 배우면서부터. 민재는 쉬운 노래에 영어표현을 넣어 불러 녹음해 주거나, 영어만 사용하는 알까기 놀이, 외국인들이 자주 오는 맥줏집에서 대화 나누기 등 실전영어를 가르친다.

소소한 웃음을 주며 즐겁게 흘러가던 영화는 옥분 할머니의 영어를 배우는 진짜 이유가 드러나는 순간, 감동 드라마로 전환한다.

“내 부모형제마저 날 버렸는데, 어떻게 내가 떳떳하게 살 수 있었겠어?”
사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위안부 할머니 피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는 척’할 뿐, 깊게 공감하지 않는다. 아픈 역사를 마주하는 것이 편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알면 알수록 더욱 어둡고 무거운 탓에 모른 척하는 게 사실이다. 영화는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닫힌 시각과 옆에 비켜 서서 지켜보기만 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90년대 초 국내 여성운동이 성장하면서 비로소 이슈화되었다. 이후 아시아 피해국으로 전파되자, 유엔이 일본에 진상규명, 사죄와 배상, 책임자 처벌 등을 권고했지만 일본은 이를 무시하고 사실 자체를 왜곡한다. 1997년 미 하원 의원들이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위안부 사죄결의안’(HR121)을 의회에 제출했고, 이를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기까지는 무려 10년 세월이 걸렸다. 이때 의원들의 결정을 굳히게 한 것은 2007년 2월 15일 미 하원 의회 청문회에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김군자 할머니가 밝힌 증언이었다.
영화는 전 세계를 향해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과 만행을 적나라하게 증언한 청문회 현장을 한국영화로는 처음 재현해낸다. 당시 2명의 한국인 할머니와 함께 증인으로 참석해 눈물로 절규한 네덜란드 출신의 위안부 피해자 잰 러프 오헤른 할머니의 이야기도 소개한다.  

아픈 과거를 60년간 혼자 삭여온 옥분 할머니가 마침내 용기를 내어 미 의회 청문회에서 증언하는 대목은 잔잔하지만 진지하면서, 서툰 영어 발음만큼이나 설득력을 얻으며 가슴 저미는 눈물을 부른다.

이 장면은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의회에서 촬영됐다.

나문희의 연기는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 어떤 배역이든 동일화하는 그는 이번에도 ‘관록’이 무엇인지 입증해 보인다. 긴 호흡의 영어 대사도 거뜬히 해냈다.

“이 나이에 주인공을 맡는 기분은 아무도 모를 거예요. … 촬영 내내 부담감도 컸지만 결국 제가 해냈다는 것 … 그거예요. 네. 하하.”

이준익 감독의 ‘박열’로 올여름 인기와 흥행의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이제훈은 상대를 배려하는 절제된 연기로 ‘훈남’ 타이틀을 빛낸다.
애드리브의 달인 박철민의 ‘여유’는 기대만큼 여전하다. 동네 슈퍼 주인 진주댁 역 염혜란의 연기는 눈여겨볼 만하다. 주변에서 보아온 영락없는 아줌마다.

근무시간에 실내골프장에 있던 구청장(이대연)의 “나 있는 곳이 집무실이야”라는 변명은 김 감독의 센스다. 웃기다가 울리고 다시 웃음을 터뜨리거나 왈칵 눈물을 쏟게 만드는 것은 그의 주특기다. 이번 영화는 옆자리 눈치 볼 필요 없이 그의 주문을 충실히 따르며 웃다 울면서 보면 된다.   

2014년 CJ문화재단이 실시한 위안부 피해자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75대 1의 경쟁률을 통과한 당선작이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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