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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삶이란 감추고픈 시간의 조각들 아닐까”

입력 : 2017-08-24 20:20:02 수정 : 2017-08-24 21:5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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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 유작장편 ‘가수는 입을 다무네’ 나와 “꺼진 지 오래된 모닥불에 불씨가 남아 있는 걸 보았다면, 아직은 불이 타오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면, 이후로는 절대 타오르지 못할 불을 보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불이 나를 태우도록 두어야 할까, 아니면 물을 끼얹어야 하는 걸까?”
올 1월 갑작스럽게 타계한 소설가 정미경. 그네는 계간지에 마지막으로 연재한 장편에서 “아름다움과 완벽함과 음악이라는 추상만으로 도달한 도저한 슬픔의 수위”를 지닌 예술가를 그려냈다.
민음사 제공

소설가 정미경(1960~2017)이 마지막으로 쓰고 간 장편 ‘가수는 입을 다무네’(민음사)에서 던진 질문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까. 마지막으로 타오를 불꽃에 몸을 맡길 텐가, 뒤로 물러나 속절없이 유혹하는 저 불꽃에 물을 끼얹을 건가. 어떤 예술가들에게는 죽음과도 맞바꿀 집념이 있다. 뮤즈만 찾아와준다면 죽음마저 얼마든지 헌납할 수 있는 이들. 보기에 따라서 그들은 불나방 같은 불행한 존재이지만 범속한 잣대는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불이 꺼진 생은 지옥일 뿐이니까. 정미경도 그 마지막 불꽃에 자신을 태우고 떠났다.

2014년 ‘세계의문학’에 연재한 뒤 흔히들 그러하듯 다시 매만져서 단행본으로 출간할 계획이었지만, 그것까진 수행하지 못한 채 올 1월 암을 발견한 지 한 달 만에 서둘러 떠났다. 그네와 같은 해에 태어나 먼저 요절한 기형도(1960~1989)의 동명 시를 제목으로 삼은 이 장편은 왕년에 사랑받는 가수였지만 목소리를 잃어버린 채 칩거하다 마지막 노래를 부른 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의 이름은 ‘율’. 카페 아르바이트와 과외에다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리고 집을 나갔던 엄마까지 챙겨야 하는 대학생 ‘이경’이 수업 과제로 다큐를 찍기 위해 ‘율’을 만난다. 이경이 마음으로 찍은 율에 관한 다큐가 이 소설의 뼈대다.

얼터너티브록으로 시작해 블루스와 포크, 팝의 영역까지 아우르며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이루었던 ‘율’의 노래는 인디 후배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무무’라는 이름의 그룹으로 활동했지만, 그 외의 멤버들은 아무 존재감이 없었다. 격렬한 사랑을 받았던 그는 무대에서 멀어진 뒤 한낮에도 커튼을 쳐놓고 쉰밥처럼 삭아간다. 씻지도 않고 갈아입지도 않아 나는 퀴퀴한 냄새보다 성대를 다친 짐승의 신음처럼 잠결에 내는 울음소리가 더 처연하다. 그는 다시 노래를 쓰기 위해 꿈을 꾼다.

“다른 꿈을 꾸고 있어, 요즘은. …시간을 짐작할 수 없는데 붉은 하늘에서 음표들이 쏟아져 내려와. 눈송이처럼 많은 음표들이. 처음엔 먹새의 군무처럼 보이는데 지표 가까이 내려오면 그것들은 사슴으로 변해. 온통 초록의 사슴 수천수만 마리가 바로 내 가슴을 스칠 듯 달려가는 것을 황홀하게 바라보았어. 뿔만이 불꽃처럼 붉게 타오르는 초록 사슴들을.”

아내 ‘여혜’는 “노래를 만드는 일은, 잠에서 깨어난 샤먼이 막 꾸었던 꿈을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과 비슷”하고, “꿈을 얘기하기 위해서는 꿈을 꾸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잠들어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며 “눈을 뜨고 잠이 든다는 건, 사람들한테 꿈을 들려주어야 하는 자들에게 신이 허락한 고통스러운 특권 같은 거”라고 율을 보듬는다. 다큐를 찍는 이경에게 율은 조금씩 마음을 열지만 그네가 촬영한 것들은 수시로 “이건 내가 아니다”는 호통과 함께 지울 것을 강요받는다. 10년째 칩거한 그를 부추겨 록페스티벌 무대로 끌어내는 젊은 호영. 율은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그와 함께 무대에 섰다가 스러진다.

이경에게 다큐 촬영 과제를 준 ‘쌔까맣고 삐적 마른’ 선생 ‘쌔삐’는 “삶에는 점프 컷이 없다”고 말했다. “‘인간극장’이 누군가의 삶의 한 토막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것이라 착각하지 말라고. 시퀀스와 시퀀스 사이엔 사정없이 잘려 나간 삶의 조각들이 쌓여 있다고.” 그러므로 “진짜 삶이란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시간의 조각들, 잘려나간 그 아웃테이크에 있을지 모른다고.” ‘율’의 진짜 삶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가 무대 아래서 고민하고 누린 사소한 편린들이야말로 과연 생의 다른 음을 연주하는 또 다른 노래였을까. 그는 말했다. “좋은 생은 나쁜 노래를 만들어. 나쁜 생은 좋은 노래를 만들고. 그 둘을 다 겪은 사람만이 위대한 노래를 만들 수 있지.”

정미경은 록페스티벌에 모여 펄펄 뛰는 이들을 보면서 소설 속에서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이것들이 미쳤구나. 아름답게 미쳤구나.” 소설을 채굴하기 위해 날마다 반지하 작업실로 광부처럼 향하던 정미경. 그네가 부르고 떠난 마지막 노래는 좋은 생도 나쁜 생도 아닌, 찬란한 삶을 기리는 송가였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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