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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년 전인 1910년 8월22일. 창덕궁 홍복헌에서 순종 황제와 총리대신 이완용을 비롯한 내각 대신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한제국의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렸다. 말이 어전회의이지 실제로는 데라우치 마사타케 통감이 사전에 건네준 ‘한국병합에 관한 조약’안을 체결하는 데 필요한 ‘전권위임에 관한 조서’에 대해 순종의 재가를 받아내는 자리였다. 전권위임장을 받아든 이완용은 곧바로 남산의 통감 관저로 달려가 데라우치와 ‘한국병합에 관한 조약’ 문서에 도장을 찍었다.

조약 제1조는 “한국 황제 폐하는 대한제국 전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하고도 영구히 일본국 황제 폐하에게 양여함”이다. 이 조약은 강제적이었을 뿐 아니라 훗날 조약 체결 절차의 합법성을 놓고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시에는 비밀을 유지하다가 일주일 만인 29일에 이 조약이 공포됐고 대한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경술년에 당한 나라의 수치라 해서 ‘경술국치’라 부른다. 이에 따라 통감부를 대신해 조선총독부가 세워지고 데라우치가 초대 총독에 임명돼 35년간의 일제강점기가 시작됐다.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천고의 역사를 회고하니/ 글을 아는 인간의 구실이 어렵구나.” 한·일 강제병합 소식을 들은 매천 황현이 자결하기 직전에 남긴 ‘절명시(絶命詩)’의 한 구절이다. 하지만 후세에는 8·15 광복절을 국경일로 기리면서도 유사 이래 처음으로 국권을 빼앗긴 경술국치일을 아는 이는 드물다.

근래에 경술국치를 기억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광복회가 벌이는 경술국치 조기 게양 운동에 호응하는 지방자치단체와 학교, 시민단체들이 늘고 있다. 오는 29일 꽤 많은 곳에서 조기를 게양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서울시는 한·일 강제병합 조약 체결 현장인 한국통감 관저 터에서 일제가 세운 신사인 ‘조선신궁’ 터에 이르는 남산길 1.7㎞ 구간을 ‘국치길’이라는 이름의 역사탐방로로 조성하기로 했다. 국권 상실의 치욕스러운 일을 잊지 말자는 다짐이다. 그래야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게 된다. 과거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박완규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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