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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小窓多明] 중국의 운명, 우리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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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8-21 21:30:24 수정 : 2017-08-21 22:4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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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동북아 상황 ‘신삼국시대’ 규정
한국 자기와 협력해야 생존 주장
주변 강대국 한국 압박하는 형국
관건은 우리 운명이고 우리 선택
중국 근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인물을 들라면 2차대전 중에 중국을 지배한 장제스(蔣介石)와 대전이 끝난 후 장제스를 밀어내고 대륙을 차지한 마오쩌둥(毛澤東) 두 사람일 것이다. 장제스는 1911년 중국이 신해혁명으로 근대국가로 탈바꿈한 이후 쑨원(孫文)의 뒤를 이어 1928년부터 중국을 통치해 온 인물이다. 그런 그가 쓴 ‘중국의 운명’이란 책이 새삼 조명을 받고 있다.

일본과의 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에 나온 이 책에서 장제스는 일본의 침략으로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된 중국의 참담한 현실을 격정적으로 묘사했다. “최근 100년 이래 국세는 부진하고 민기(民氣)는 소침(消沈)하여 5000년 이래 일찍이 보지 못한 정세를 초래했다. 중화민족의 생존에 필요한 영역은 분할되고 불평등조약의 속박과 압박은 국가·민족의 생활기능을 끊었다. 5000년의 역사에 국가·민족의 흥망성쇠가 때로 나타났으나 최근 100년 동안처럼 내우외환이 절박하고 재흥(再興)의 기초까지도 단절되려 한 위기는 없었다.” 이런 진단과 함께 장제스는 중국이 다시 일어서려면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자유와 독립심을 갖춰 모든 방면에서 강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5000년의 역사 속에 형성된 민족 고유의 특성을 회복해서 사회를 개조하고 정치를 쇄신해 중국을 부강하게 함으로써 일본의 침략을 저지하고 새 나라를 건설해 세계 역사의 주체가 되자고 역설했다.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이 책은 출간 후 중국의 비참한 현실을 모두 외국 탓으로 돌렸다는 비난을 받았고, 이 때문에 영어 번역판과 중국어판까지도 회수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언론인 송지영씨가 우리나라가 해방된 그 이듬해인 1946년 7월에 이 책의 한국어 번역판을 냈다. 129쪽밖에 안 되는 얇은 책이지만 초판으로 무려 2만부나 발행했다. 송 선생에 따르면 해방 전 선생이 중국 난징(南京)에서 공부할 당시에 중국의 지식인들은 거의 모두가 장제스가 쓴 이 책을 읽었고, 그때 이미 세계 14개 나라에 번역돼 수백만 부가 팔려나갈 정도로 중요한 책이었다고 한다. 당시 중국의 친구들은 송 선생에게 이 책을 읽어보지 않았으면 중국과 동아시아의 운명에 대해서 논할 자격이 없다고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제 치하에 살던 우리 동포들은 이 책을 접할 수가 없었다. 일제는 당시 조선인뿐만 아니라 일본인들도 이 책을 보지 못하도록 했단다. 장제스가 본 중국 근대사의 문제, 열강의 중국 침략에서 중국인들을 각성시키는 국민정신의 태동 같은 것을 우려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제 일제로부터 광복이 되고 새 나라를 건설해야 하는 중대한 시점인 만큼 우리 국민도 이 책을 읽고 새 나라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를 고민하자는 것이 송 선생의 뜻이었다. 실제로 광복을 맞은 이 땅의 많은 젊은이가 마음 놓고 이 책을 읽으며 중국의 미래, 나아가서는 조국 한국의 미래에 대한 꿈을 키웠을 것이다.

일본의 패망 후 72년을 맞은 지금 ‘중국의 운명’은 어떻게 변했던가. 대륙을 흔들던 장제스의 중국은 마오쩌둥에 밀려 대만이란 작은 나라가 됐지만 경제적으로는 크게 발전했다. 대륙은 공산화돼 공산당 일당 독재 속에 갇혀 있다가 덩샤오핑이란 불세출의 지도자를 만나 개혁·개방을 한 후 세계 2위의 경제력을 가진 대국이 됐다. 이제 대륙의 중국은 경제력에다 군사력까지 갖추고 세계의 질서와 역사를 좌지우지하려 하고 있다. 장제스가 본 중국의 운명과 꿈은 그렇게 달라졌다. 거기에는 중국인들이 각 방면에서 과거 역사에 대한 각성을 통해 스스로가 강해지겠다는 열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하겠다.

2차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은 6·25전쟁을 계기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가 최근에는 다소 추락했지만 여전히 재기를 노리며 감췄던 속셈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해방 이후 남쪽이 크게 발전해 국제사회의 중요한 멤버가 됐고, 문을 닫아건 북한은 가장 낙후된 상황에서도 핵무장으로 동북아의 긴장을 높이고 있다. 지난 70년 중국의 운명은 장제스가 꿈꾸었던 것과는 다른 길을 갔지만 그래도 대만과 대륙은 서로를 인정하고 왕래하며 경제적·사회적 교류를 통해 중국 민족의 재흥을 가져왔다. 남북한은 45년 전 7·4공동성명으로 새 길을 찾는 것 같았지만 그 뒤 다시 으르렁거리며 서로를 가로막은 장벽을 치울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다.

요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연일 한국을 압박하는 중국은 동북아의 현 상황을 현대판 삼국시대로 규정한다고 한다. 미국과 연합한 일본이 가장 강력해서 삼국시대 위나라에 비견된다면 중국은 오나라, 한국은 촉나라라고 할 수 있다며, 한국은 중국과 협력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며 우리에게 중국식의 해법을 권하고 있다고 한다. 주위의 모든 나라가 자국 이익 위주 정책으로 우리를 압박하는 형국이다. 결국 관건은 중국의 운명이 아니라 우리의 운명이고 우리의 선택이다. 우린 과연 어떻게 ‘신삼국시대’라는 이 상황, 일본과 미국, 중국, 러시아라는 4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독립국이라는 자존을 세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남과 북이 소통해서 전쟁 위기를 해소하고 한 형제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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