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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에 희망을!] "그저 통계수치용"…취준생 두 번 울리는 '청년인턴제'

입력 : 2017-08-16 19:53:14 수정 : 2017-08-16 21:2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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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준비 과정 필수 스펙으로 고착화/ 실업률 해소 목적 악용 마구잡이 뽑아/ 업무 보조에서 정규직 일 넘겨받기도/ 각종 불합리한 처우 ‘열정페이’ 시달려/ 블라인드 채용·직무경험 중시 ‘엇박자’
취업준비생 이모(25·여)씨는 지난해 9월부터 3개월간 한 공공기관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다. 근무 초반 이씨의 업무는 일반적인 서류작업 정도였지만 점차 근태관리, 공문 작성 등 정규직 직원의 일을 넘겨받는 경우가 늘었다. 회사 안팎의 행사에 보조원으로 차출되기도 했는데 주말에 불려나가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행사 현장에서 이씨의 임무는 행사 준비와 뒷정리가 대부분이었다. 이씨는 “인턴 자체가 필수 스펙이 됐기 때문에 안 할 수가 없는 입장이지만 나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서도 “그나마 새 정부 들어 인턴 채용 폭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취업준비생들 사이에 커지고 있어 더욱 암담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각종 공공기관, 기업 등에서 일하는 청년 인턴의 현주소다. 스펙의 필수항목이 돼 안 할 수는 없지만, 막상 일을 해보면 내실 있는 경험을 쌓기는 힘들다. 일자리 대책의 일환으로 인턴 채용을 남발했지만 법적인 신분보장이 없는 채로 운영돼 청년들의 불안, 불만만 커졌다. 

◆인턴에 대한 법적 기준 마련은 언제쯤


1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5년 공공기관 245곳에서 청년 인턴 1만3253명을 채용했다. 이 중 정규직으로 전환된 인턴은 4033명(30%)에 그쳤다. 단 한 명의 인턴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은 곳은 152곳(62%)에 달했다. 공공기관에서조차 이런 상황이 공공연하게 발생하는 이유는 인턴에 대한 법적 신분이 보장되지 않은 탓이 가장 크다. 근로기준법 등 노동 관계법에 인턴의 법적 기준이 명시되지 않은 것을 비롯해 ‘근로자성’ 인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인턴제도는 취업을 앞두고 근로자가 직무경험을 쌓을 수 있는 ‘교육적 목적’과 불특정 다수 인재 사이에서 직무에 더 적합한 인재를 고르기 위한 사용자의 ‘인재선발 목적’이 맞아떨어지며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 확산하기 시작했다. 양측 모두 기대하는 이득이 있었던 만큼 정식 근로자에 준하지 않는 임금이 인턴제도 운영의 우선순위는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저성장, 실업률 증가 등으로 인턴제도가 일자리 창출 목적으로 악용되며 취지 또한 퇴색하기 시작했다. 채용 목적에 맞는 기준을 설정하기보다는 일단 다수를 채용하고 보는 식으로 변질된 탓에 직무경험 제공이나 다양한 평가 등의 본래 목적을 온데간데없이 채용 자체가 목적이 됐다는 거다.

후기 학위 수여식이 열린 16일 오전 서울 한 대학교의 취업진로지원처의 취업진로 게시판이 휑하게 비어 있다.
하상윤 기자
특히 이명박정부 시절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청년인턴제와 행정인턴제, 중소기업인턴제 등 매년 수만명의 인턴 채용을 대책으로 내놓았다. 이는 해를 거듭하며 창업을 위한 인턴, 해외 현지기업 인턴 등으로 확산했다.

결국 ‘예비 근로자’ 성격의 인턴이 정식 근로자나 다름없이 일하고 있지만 법적 기준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고 있다. ‘임금을 목적으로 하는가’ 여부가 논란의 핵심이다. 이에 대해 “근로자의 범위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규정해 새로 등장하는 형태의 근로자들을 법적 사각지대에 방치하고 있다”며 “인턴도 엄연히 ‘임금이 지급돼야 하는 자’인 만큼 인턴에 대한 각종 불합리한 처우는 노동법상 부당노동행위와 같은 수준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문재인정부가 비정규직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법적 신분보장 등 인턴 제도에 대한 논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표방하며 내놓은 수많은 대책 중에 인턴만은 언급이 없다. 정부가 지난해 1월 ‘일경험 수련생에 대한 법적 지위 판단과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말 그대로 가이드라인일 뿐 강제성은 없다. 올해 상반기에 현장실습의 열정페이로 논란이 일며 교육부와 고용노동부 등이 대책마련에 고심 중이지만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등 고교 졸업생에 한정된 이슈일 뿐이다. 
◆블라인드 채용 확산하는데 직무경험은 어디서 쌓나


임금은 짜고, 신분 보장도 안 되지만 취준생들에게 인턴은 취업관문을 뚫기 위한 통로의 역할을 했다. 문재인정부에서 인턴 채용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 때문에 취준생들의 걱정이 커지는 이유다.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 등 일자리의 질 개선을 위한 각종 대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인턴제와 관련된 움직임은 이런 기조와 배치된다.

지난 5월 청와대가 비서실 등에서 운영하던 인턴 채용 제도를 잠정중단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일자리 공약 중 하나인 ‘비정규직 제로’ 원칙에 따라 인턴을 채용하지 않을 계획”이라며 “청와대 업무 특성상 인턴의 정규직 전환이 어려워 인턴 제도의 취지와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공공기관의 블라인드 채용 의무화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직무수행 능력을 중요시하는 블라인드 채용의 취지대로라면 직무경험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될 것이고, 취업준비생이 그나마 직무경험을 쌓을 주요 경로는 인턴이기 때문이다. ‘청년이여는미래’의 백경훈 대표는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공공부문뿐 아니라 민간영역에서도 인턴 채용 폭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인턴에 대한 법적 기준을 마련해 직무경험을 안정적으로 쌓을 방편을 마련해야 블라인드 채용 등 정부 정책이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인턴제, IMF 위기 후 일자리 늘리기 방편 변질

우리는 물론 해외 각국에서 인턴제는 예비 근로자에게 사회경험을 제공하고, 기업은 인재 채용 풀을 넓힌다는 긍정적인 취지로 도입됐지만 일자리 제공을 위한 방편으로 변질되며 본래의 취지를 잃는 경우도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1920년대 미국에서 의료계 인턴과 비슷한 수습 제도를 회계 등 일반 경영 분야에도 도입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1950년대 들어 대학과 기업이 산학 협정을 맺고 대학생을 파견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확산됐다. 이후 주요 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인턴제도가 활성화됐고, 대학 등 고등교육기관에서 재학생의 인턴십 참여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동부는 2010년 공정노동기준법을 통해 인턴 기준을 제시했다. 특히 정부지원 인턴제도의 경우 유급과 무급 구분이 명확하고 학과목·학점 인정 등 인센티브도 다양하다.

프랑스에서는 인턴에 대한 임금 기준뿐 아니라 운영 형태 등 세세한 부분까지 노동법을 통해 규정하고 있고, 위반 시 처벌규정도 명확하다.

1990년대 들어 교육개혁 차원에서 인턴제를 본격 도입한 일본에서는 자원봉사 형태의 사회적책임형과 기업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성과중시형, 채용을 전제로 한 채용연동형 등 다양한 형태로 발달했다. 경제위기 이후 고용률 제고를 위해 확산한 측면이 있지만 기업과 학생의 희망직종 등 취향을 고려해 매칭 작업을 실시하고, 수행 과정에서 각종 보험 등에 관한 사항까지 폭넓게 지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창 경제성장을 구가하던 1980년대 인턴제도가 시작됐다. 1984년 럭키금성(현 LG)그룹이 최초로 도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기업별 정기 공채와 맞물리며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제도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사태 등 경제위기가 이어지면서 정부의 일자리 늘리기 방편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청년소사이어티의 손한민 대표는 “국내 인턴 제도는 크게 직업경험을 쌓거나 취업을 전제로 한 두 가지가 있는데 본래의 취지를 잃다 보니 전공이나 직무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인턴 경력 기간·횟수만 늘리는 식의 폐해가 나타나고 있다”며 “인턴에 대한 법적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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