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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컨틴전시 플랜’은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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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8-15 21:53:22 수정 : 2017-08-15 23: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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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만은 막을 것”이라 한 대통령
국민 생명·안전 지킬 복안도 밝혀야
미국 43대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백악관에 입성한 2001년 가을 ‘9·11’ 테러 참사를 겪는다.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미국은 왜 무방비로 당했을까. 알카에다에 관한 정보를 미처 접하지 못했기 때문인가. 알카에다가 그토록 유능했나.

‘그렇지 않다’가 답이다. 부시는 미국 법률과 관행에 따라 대통령후보 시절부터 알카에다 보고를 받았다. 그러나 부시는 무시했다. 전임 빌 클린턴 행정부의 알카에다 노이로제를 유별나다고 여겼다고 한다. 만에 하나, 테러 공격이 있더라도 해외에서 발생할 것으로 믿었다. 부시는 실제 취임 후 해외 공관 보안을 강화하도록 지시했다.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다 9·11을 당했다. 결국 국내 테러가 발생할 리 없다는 부시의 고정관념이 화를 부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승현 편집인
2017년 한반도는 2001년 9·11 직전의 미국보다 훨씬 위태롭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광복절 경축사에서 지적한 대로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지 않을 수 없는 안보상황이 화근이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화염과 분노’를 경고했고, 북한 전략군사령관 김락겸은 미국령 괌에 대한 타격 협박을 가했다. 북·미 양측의 어제 동태로 미루어 소강국면이 유지될 것으로 보이지만 앞날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청와대는 어찌 보고 있을까. ‘말싸움’으로 보는 모양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최근 “말싸움을 하는 상황”이라고 요점 정리했다. 실로 대범하고 초연하다. 문 대통령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제 경축사에서 “정부는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이라며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국익은 평화”라고 했던 전날 발언과 대동소이했다. 베를린 선언을 통해 밝힌 대북 제안이 유효함을 재확인하는 대화 제스처도 잊지 않았다. 말싸움으로 보거나 보고 싶어한다는 뜻이다.

말싸움 프레임을 원하는 것은 청와대만이 아니다. 온 나라가 그렇다. 하지만 당위와 현실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 명운을 가를 실타래가 이번엔 다르게 풀리면 어찌하나.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최악을 예방하고 제어할 정부 대응 능력이고,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이다. 나아가 국가적으로 새우 신세를 면할 근본 처방도 필요하다. 하지만 국민 손에 잡히는 것은 말싸움 진단이고 평화 애호 구호뿐이다. 그것도 문재인정부의 고정관념과 희망에 토대를 둔 날림 진단에 일방 구호인 감이 짙다. 이래서야 알카에다 정보를 무시한 부시의 반응과 어찌 다른지 알 길이 없다. 국민을 안심시키기엔 역부족이다. 럭비공 안보 정세에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킬 복안이 무엇인지, 대통령 발언만 듣고는 가늠할 방법이 없으니 허망하기조차 하다.

물론 말싸움 규정이 반드시 허물일 수는 없다. 이런 이름짓기는 효험이 있다. 적어도 진정제 구실은 한다. 캄캄한 숲길에 나타난 어떤 물체를 고양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불필요한 공포를 덜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정체 모를 형체와 소음이 겁난다고 무조건 고양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말싸움 규정도 마찬가지다.

외신은 국내 반응을 대서특필한다. ‘놀라울 만큼 평온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매우 정상적인 모습이 저들에겐 매우 이채롭게 보이는 것이다. 어느 쪽이 옳은지 예단할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비상사태가 발생한다면 어느 쪽이 땅을 치게 될지는 자명하다. 정부는 무한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공자 말씀’만 할 게 아니라 전방위 대비 태세를 보여줘야 한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관한 어정쩡한 입장도 조속히 정리해야 한다. ‘전술핵 재배치’ 공론화 등도 마다할 계제가 아닐 테고….

부시에게 재앙을 면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9·11을 한 달 넘게 앞둔 2001년 8월6일 자신의 텍사스 목장에서 휴가를 즐기던 중 미국중앙정보국(CIA)이 전한 메모를 받았다. “빈 라덴이 미국을 공격하기로 했다”는 메모였다. 부시는 어찌 반응했을까. 낚시를 하러 떠났다. 실로 대범하고 초연하게. 지금은 낚시터의 부시를 비웃을 계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정부는 각성해야 한다. 김정은의 북한은 노무현정부 시절의 북한이 아니라는 점만 인정해도 각성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승현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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