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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가 잊혀질 때, 日 미쓰비시는 배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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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8-15 06:00:00 수정 : 2017-08-15 20:5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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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전경
탄광이 있던 일본 나가사키 하시마섬(군함도)과 일본 굴지의 대기업 미쓰비시. 얼핏보면 서로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으로 묶이는 밀접한 관계다. 바로 ‘전쟁’이다. 1890년 하시마섬을 인수한 미쓰비시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이던 1940년부터 1945년까지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을 탄광에 투입해 석탄을 채굴했다. 탄광 내부는 늘 가스 폭발 사고 위험에 노출됐고 장소가 비좁아 제대로 서있기도 힘들었다. 징용을 당한 조선인들은 하루 최대 16시간 섭씨 40도에 이르는 굴 속에서 제대로 된 식량조차 제공받지 못한 채 강제노역을 당했다. 미쓰비시는 그렇게 확보한 석탄을 일본으로 운송해 전쟁에 필요한 물자 생산에 사용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하시마섬은 서서히 잊혀져갔다.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은 하시마섬에서 사라졌고, 산업 에너지가 석탄에서 석유 및 천연가스로 옮겨가면서 하시마섬은 쇠퇴해 1974년 폐광됐다. 하지만 ‘전범기업’이라 불릴 정도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전쟁수행능력 유지 측면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미쓰비시는 일본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일본 자위대와 정보기관이 필요로 하는 육해공군 관련 장비들을 공급하고 있다. 말 그대로 일본판 록히드마틴이다.

1870년대 처음 등장한 미쓰비시는 해운업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일본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조선, 광업, 제철 등 중공업 부문으로 기업의 기반이 이동했다. 1930년대부터는 전기, 화학, 석유, 항공기 산업이 핵심이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미국을 놀라게 했던 A6M 함상전투기, 일명 ‘제로센’을 생산한 기업이 미쓰비시다. J2M, G4M, A5M 등 일본 육군과 해군 항공대가 사용했던 미쓰비시 항공기들은 태평양 상공에서 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아름다운 태평양의 바다와 하늘을 피로 물들였다.
일본 항공자위대 소속 F-15J 전투기. 미쓰비시 중공업이 면허생산했다.
미쓰비시는 우리나라에도 그 흔적을 남겼다.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2동이 삼릉(三菱)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일제강점기 때 부평에 미쓰비시 군수 공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당시 일본의 군수기업은 임금지불 의무가 없는 노동력을 제공받았는데, 주로 조선인 징용자였다. 인건비 등 생산비용은 줄어들면서 판매량은 대폭 늘어난 덕분에 기업은 급성장을 거듭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쓰비시는 일본의 재벌을 해체하는 맥아더 사령부의 정책에 따라 해체됐다. 미쓰이와 스미토모 등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산업을 떠받쳤던 재벌들은 예전의 위세를 잃고 몰락했지만 미쓰비시는 1950년 6.25 전쟁을 계기로 부활한다. 종합상사였던 미쓰비시 상사가 1954년 부활한 직후 항공기와 군수산업 분야 역시 미쓰비시 중공업으로 다시 일어섰다.

미쓰비시 중공업은 이후 탄탄대로를 걸었다. 자위대가 필요로 하는 무기는 무조건 일본 국내에서 생산했던 일본 정부의 정책에 따라 자위대 무기공급을 거의 독점하다시피했다. 독자 개발한 무기와 미국에서 면허생산에 납품하는 것까지 대부분 미쓰비시 중공업이 생산했다. 미 공군의 주력전투기인 F-15의 일본 버전인 F-15J와 F-4EJ改(개), F-104J, F-86F 등 미국제 전투기를 면허생산했다. 첫 국산전투기 F-1과 국산 훈련기 T-2, 두 번째 국산 전투기인 F-2, 스텔스기인 F-3를 개발하면서 독자적인 기술을 확보했다. 여기에 F-35A 면허생산이 더해지면서 항공기술은 세계적 수준을 확보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해군 항공대의 제로센 전투기
우주발사체 분야에서도 미쓰비시 중공업은 일본 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H-IIA, H-IIB 로켓을 통해 1t 무게의 인공위성을 지구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달 탐사선 ‘가구야’와 소행성 탐사선 ‘하야부사’ 등을 실은 로켓도 미쓰비시 중공업이 제작했다. 그 덕분에 연매출이 1조5371억엔(한화 16조원, 2015년 3월 기준)에 달하는 거대 기업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 내에서 독보적인 군수, 항공산업 기업으로 성장한 미쓰비시 중공업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자위대 수요만으로는 방위산업 기반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데다 냉전 시절 방위산업에 줬던 혜택을 축소하던 일본 정부가 반대급부로 해외 수출을 장려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자국의 영향력 강화와 경제적 이득, 산업계의 방산 기반 유지 등 복합적 이유가 작용하면서 일본은 호주에 자국산 잠수함 판매를 제안하는 등 본격적인 무기 판매에 나서고 있다.

미쓰비시가 일본 자위대에 무기를 공급하며 승승장구하는 동안 하시마섬의 비극은 잊혀져갔다. 일본은 이 섬을 관광지로 개발했지만 조선인 징용자들에 대한 언급은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광복 72주년을 맞은 지금, 하시마섬에서 조선인 징용자들이 겪은 고통과 그 고통 위에서 전쟁을 통해 돈을 번 미쓰비시 중공업의 과거와 현재를 잊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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