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 리싸넨·유하 타흐바나이센 지음/이상원·장혜경 옮김/니케북스/1만8000원 |
“발사 중지! 참호 밖으로 나오면 ‘맥주’를 주겠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그해 12월에는 총탄이 휘날리는 전장에서도 한 줄기의 인간애가 불빛을 반짝였다. 성탄절을 앞두고 영국과 독일이 대치한 전선 곳곳에서 병사들이 총을 내려놓은 것이다. 이들은 맥주를 함께 나누어 마시며 국적을 초월한 형제애를 나눴다.
1차 세계대전 중인 1914년 12월, 영국과 독일 전선의 병사들이 비공식 휴전에 합의하는 모습. |
유럽인들이 맥주를 특별히 여겼다는 것은 당시 미술작품을 봐도 알 수 있다. 피터르 브뤼헐과 아드리안 브라우어르는 작품을 통해 술집에서 맥주를 신나게 마시는 모습을 그렸다.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으로 불리는 브뤼헐은 주로 농부들의 삶을 화폭에 담았는데, 이때 맥주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그가 그린 작품 ‘농가의 혼례’에서는 맥주가 주인공이나 진배없을 정도다.
피터르 브뤼헐이 그린 ‘농가의 혼례’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식사와 함께 맥주를 마시고 있다. 니케북스 제공 |
맥주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 보니, 양조업은 활황을 이뤘다. 시대를 막론하고 양조업자들은 깨끗한 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맥주에 미량의 불순물만 섞여도 불순물의 뒷맛이 남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물이 깨끗할수록 그 물로 만든 맥주도 잘 팔렸다. 맥주는 양조 공정을 지켜 발효시키기 때문에 안전한 음료로 통했다. 당시 마을에서 구할 수 있는 물과 비교하면 무균 상태에 가까웠다. 실제로 맥주를 마시는 사람이 물을 마시는 사람보다 건강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그러나 포도주를 ‘신이 내린 선물’로 여긴 남부 유럽에서는 맥주를 저평가했다. 이들은 맥주를 ‘약간 상한 보리즙’이라 부르며, ‘품위 없는 술’이라는 기틀을 다졌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는 ‘포도주 지역’과 ‘맥주 지역’이 구분되기도 한다. 옛 로마 중심부에서는 지금도 포도주를 주로 마시지만, 영국과 독일은 여전히 맥주를 즐겨 마신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포도주를 마시는 곳에 시와 철학이 있었다면, 맥주를 권하고 마시는 곳에는 거사가 함께했다”면서 “맥주는 유럽 식문화와 관습의 기반이자 민족의 우호 기반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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