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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마시고 하자” 英·獨軍 잠시 총격도 멈췄다

입력 : 2017-08-12 03:00:00 수정 : 2017-08-11 21: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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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 당시 전장서 맥주 마시며 성탄 축하 / 유럽에서 가장 흔하면서 가장 특별한 술 / ‘맥주’가 빚어낸 흥미로운 사건들 풀어내 / 저자 “맥주가 없었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
미카 리싸넨·유하 타흐바나이센 지음/이상원·장혜경 옮김/니케북스/1만8000원
그때, 맥주가 있었다/미카 리싸넨·유하 타흐바나이센 지음/이상원·장혜경 옮김/니케북스/1만8000원


“발사 중지! 참호 밖으로 나오면 ‘맥주’를 주겠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그해 12월에는 총탄이 휘날리는 전장에서도 한 줄기의 인간애가 불빛을 반짝였다. 성탄절을 앞두고 영국과 독일이 대치한 전선 곳곳에서 병사들이 총을 내려놓은 것이다. 이들은 맥주를 함께 나누어 마시며 국적을 초월한 형제애를 나눴다. 
유럽의 역사에서 맥주는 가장 흔하지만, 가장 특별한 술이다. 맥주로 역사가 좌우될 만큼, 유럽인들의 맥주 사랑은 각별하다. 신간 ‘그때, 맥주가 있었다’는 맥주를 통해 빚어진 역사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책을 쓴 미카 라싸넨과 유하 타흐바나이넨은 모두 역사학자다. 역사를 연구해 온 이들은 “역사에서 맥주가 없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1차 세계대전 중인 1914년 12월, 영국과 독일 전선의 병사들이 비공식 휴전에 합의하는 모습.
인류는 발아한 보리가 달콤한 맛을 내며 발효된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달았다. 맥주의 역사가 보리를 경작한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이란 고원지대에서 발견된 석기시대의 토기는 현대식 측정법으로 분석한 결과 발아 곡물과 발효 곡물을 저장했던 용기로 밝혀졌다. 초기에는 곡물을 담은 용기에 습기가 차면서 의도치 않게 발효되었겠지만, 인류는 곧 발효의 유익함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더 나아가 곡물을 맥아로 만들고, 이를 맥주로 빚는 기술은 인류에게 효모를 이용하는 방법을 깨닫게 했다. 일부 학자들은 이 방법을 통해 빵을 굽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주식이기도 한 빵보다 맥주의 역사가 먼저라는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수메르인들의 경우 기원전 4000년부터 맥주를 마신 것으로 전해진다. 맥주를 빚는 최초의 제조법도 이 무렵 나오기 시작했다.

유럽인들이 맥주를 특별히 여겼다는 것은 당시 미술작품을 봐도 알 수 있다. 피터르 브뤼헐과 아드리안 브라우어르는 작품을 통해 술집에서 맥주를 신나게 마시는 모습을 그렸다.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으로 불리는 브뤼헐은 주로 농부들의 삶을 화폭에 담았는데, 이때 맥주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그가 그린 작품 ‘농가의 혼례’에서는 맥주가 주인공이나 진배없을 정도다.

피터르 브뤼헐이 그린 ‘농가의 혼례’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식사와 함께 맥주를 마시고 있다.
니케북스 제공
1차 세계대전 당시 본토의 기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병사들은 보급품이 부족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공군 조종사들은 전투기의 정기점검을 위해 본토 기지에 다녀오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이때마다 맥주를 운반했다. 런던 남부에 위치한 비긴 힐은 영국 공군의 주요 기지였다. 이 기지 인근에는 웨스터햄 양조장이 있었는데,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난 1944년 많은 양조장이 공짜로 맥주를 내놨다. 맥주를 실은 비행기가 본토의 기지에서 돌아오면, 그날 근무하지 않는 모든 조종사가 나와 환대했다.

맥주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 보니, 양조업은 활황을 이뤘다. 시대를 막론하고 양조업자들은 깨끗한 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맥주에 미량의 불순물만 섞여도 불순물의 뒷맛이 남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물이 깨끗할수록 그 물로 만든 맥주도 잘 팔렸다. 맥주는 양조 공정을 지켜 발효시키기 때문에 안전한 음료로 통했다. 당시 마을에서 구할 수 있는 물과 비교하면 무균 상태에 가까웠다. 실제로 맥주를 마시는 사람이 물을 마시는 사람보다 건강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그러나 포도주를 ‘신이 내린 선물’로 여긴 남부 유럽에서는 맥주를 저평가했다. 이들은 맥주를 ‘약간 상한 보리즙’이라 부르며, ‘품위 없는 술’이라는 기틀을 다졌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는 ‘포도주 지역’과 ‘맥주 지역’이 구분되기도 한다. 옛 로마 중심부에서는 지금도 포도주를 주로 마시지만, 영국과 독일은 여전히 맥주를 즐겨 마신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포도주를 마시는 곳에 시와 철학이 있었다면, 맥주를 권하고 마시는 곳에는 거사가 함께했다”면서 “맥주는 유럽 식문화와 관습의 기반이자 민족의 우호 기반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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