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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나마스테!] “영화 군함도, 강제징용 조선인 다시 이슈화시킨 자체로 의미”

입력 : 2017-08-07 21:06:18 수정 : 2017-08-07 21: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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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군함도’ 작가 한수산
“일제강점기 과거사가 제대로 청산됐나요? 영화를 둘러싸고 여러 말들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진실이 무엇인지 확인해봐야죠. 대중의 관심을 자꾸 불러내서 청산해 나가야 합니다. 강제 징용 조선인 노동자들을 다룬 영화는 처음일 겁니다. 화석이 되어가는 어제를 오늘로 데려와 우리 사회 이슈로 만들어내는 건 좋은 일 아닌가요? 문제가 있다면 다른 이들이 다른 버전, 다른 장르로 또 만들면 돼요.”

일제가 조선인들을 끌어가 열악한 노동 조건 속에 혹사시켰던 현장인 나가사키 인근 섬 군함도(하시마)를 배경으로 다룬 영화가 여러 화제를 만들고 있다. 실제 군함도 3분의 2 크기의 세트장을 만들고 순제작비 220억원을 투입해 류승완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만든 픽션이다. 조선인 노동자들이 대거 군함도를 탈출하는 과정이 실제로는 가능하지 않았던 왜곡이라느니, 맹목적인 애국심을 자극하는 ‘국뽕’인 줄 알았더니 악랄한 조선인이 나오는 ‘친일영화’라느니 말도 많다. 중국 언론에서는 기립박수를 치고 일본 네티즌들은 욱일기를 찢는 장면에 격분해 들끓었다. 군함도에 끌려간 조선인 노동자들과 그들의 피폭 문제를 생존 피해자와 함께 치밀하게 탐사해 5권짜리 대하소설 ‘까마귀’로 집필하고, 지난해에는 다시 소설 ‘군함도’(전2권·창비)로 압축하는 데 30년 가까운 작가인생을 쏟아부은 소설가 한수산(71)을 광화문에서 만났다.

30년 가까이 일제강점기 조선인 징용노동자와 피폭자 문제를 천착해온 ‘군함도’의 작가 한수산. 그는 “영화가 과거를 제대로 다루었느냐는 시비를 떠나 자꾸 거론해서 청산되지 않은 채 화석화된 어제를 다시 불러내야 한다”면서 “다양한 버전과 장르로 많은 ‘군함도’가 창작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제원 기자
그는 정작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했다. 빗발치는 문의에 무어라 답을 해야 되는데 영화 그 자체를 두고 이렇다 저렇다 따지고 싶지 않아서였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탈출 액션극이라던데 어떻게 만들었건 군함도 문제를 다시 이슈화시킨 건 의미 있는 일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의 현실을 정면으로 파고들고 조선인들의 원폭 피폭 문제를 본격적인 소설로 다룬 건 유례가 없다. 영화를 보고 진실이 궁금하다면 차분하게 소설을 붙들 일이다. 실제로 군함도와 피폭문제를 다룬 ‘까마귀’가 2009년 일본에 번역됐는데 일본인들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호의적이었다. 그들은 당시 징용노동자의 월급표까지 치밀하게 취재한 팩트 앞에서 토를 달지 못했다.

“군함도에 끌려가서 노동을 했고 그곳에서 나와 나가사키에서 피폭당했던 실제 인물과 함께 그곳에 가서 일일이 취재를 했어요. 여기는 잠을 잤던 곳, 저기는 지옥 입구 같은 막장 출입구…. 그렇게 증언하던 피해자들이 지금은 다 사라졌어요. 강제징용 피해 당사자와 현장을 직접 가서 취재한 작품이라는 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한수산의 동아일보 신춘문예(1972년) 등단작 ‘사월의 끝’은 시간과 죽음의 문제를 붙든 단편이었다. 이후 그의 소설은 섬세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개인적인 고뇌와 회한을 다룬 것들이었다. 1976년 발표한 장편 ‘부초’는 그를 널리 알린 출세작이었다. 문예지 ‘세계의문학’에 파격적으로 전재됐고, 떠돌이 서커스 인생을 다룬 이 작품은 ‘오늘의작가상’ 수상작으로 선정되면서 단행본으로 출간돼 90만부가 넘는 베스트셀러로 각광받았다. 바야흐로 ‘스타작가’로 떠올랐던 한수산은 1981년 일간지에 연재하던 ‘욕망의 거리’라는 소설에서 ‘대머리 군인’을 묘사했다가 보안사에 끌려가 지독한 고문을 당하는 필화를 겪으면서 무너졌다.

당시 털끝만 한 비판도 용납하지 않았던 신군부 집단은 이 소설의 표현을 빌미로 문인들을 엮어 간첩단 사건으로 조작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자 고문만으로 종결했다. 이 와중에 박정만 시인은 끝내 고문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술로 나날을 보내다 요절하고 말았다. 한수산도 정신착란 직전까지 갈 정도로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억지로 참으면서 그동안 써놓았던 작품들을 매만지는 시간을 보냈는데, 그들을 고문한 보안사령부 수장 노태우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그는 도저히 이 땅에 머물 수 없었다고 했다. 미국과 인도와 일본을 놓고 고민하다 가족과 함께 1988년 일본으로 떠났고, 도쿄의 고서점에서 오카 마사히루의 ‘원폭과 조선인’을 접하면서 군함도와 나가사키 피폭의 상처와 직면했다.

“필화사건이 없었더라도 랄랄라 즐거운 인생을 사는 문학을 하진 않았을 겁니다. 우리 근현대사에 대한 정밀한 인식 없이 작가 생활을 하는 건 불가능했을 테니까요. 내 세대 작가들은 그랬어요. 지금까지 작가 인생 절반 이상을 여기에 쏟은 걸 후회하지 않아요. 내가 알고 있는 군함도나 피폭 문제를 제대로 쓰지 않고는 다른 작품에 매달릴 수 없었습니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시간의 문제를 천착하던 초기 작품세계가 폭을 넓히면서 군함도라는 정점에서 만난 게 아닌가 싶어요.”

한수산은 유난히 감수성이 섬세하고 예민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냇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가 학교에서 배운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떠오르면서, 신도 되돌릴 수 없는 완벽한 사라짐의 상태인 죽음이라는 것이, 한없이 작은 자신의 존재가 너무나 서러워서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이후 그는 우연히 박목월 선생을 접하면서 먼저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됐다가 경희대에서 황순원 선생을 만나 다시 소설가로 등단했다. 그는 데뷔작에서부터 시간과 죽음을 천착했고, 이후 반공포로 문제를 비롯해 확장된 시간과 맞닿은 역사와 만나다가 결정적으로 군함도에 상륙했다.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피폭으로 이름도 없이 억울하게 무수히 죽어간 이들은 물론 살아남은 이들까지 우리 정부에서조차 철저하게 무시당했습니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이기 때문에 자꾸 거론해야 합니다. 범죄 행위의 역사가 있는 섬도 세계문화유산일 수 있습니다. 다만 유네스코의 조건처럼 분명히 그 사실을 적시해야죠.”

소설 군함도에는 화려한 볼거리와 액션이 자극적인 영화와는 달리 차분하게 역사를 톺아가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도 팩트를 중시하는 다큐 스타일의 소설에서는 쉬 찾아보기 힘든 문체와 문장이 돋보인다. 풍성한 속담과 팔도에서 모여든 징용공의 사투리에다 등장인물들의 느꺼운 사랑까지 폭염을 잊기에 맞춤한 서사가 핍진하게 펼쳐진다. ‘지상’은 친일파 집안의 유복한 둘째 아들이었다가 형 대신 징용에 끌려가 차츰 민족의식을 깨닫게 되는 인물이다. 지상의 아내 ‘서형’은 유복자를 낳고 기다리다가 하시마 탄광까지 남편을 찾아간다. 옷고름으로 눈물만 닦으며 기다리는 건 조선 여인이 아니라고 한수산은 말했다. 수많은 징용 노동자들이 하시마 깊은 막장에 끌려가 탄을 캐다가 죽었다면 한수산은 반세기가 흐른 후 그곳에 가서 그들의 한을 캐온 셈이다. 그는 “조국의 이름으로 살다 조국의 이름으로 죽어갔으나 그 주검마저 조국의 이름으로 경멸과 차별 속에 버려져야 했던 조선인 나가사키 피폭자의 영혼에 바친다”고 ‘군함도’에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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