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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스케일·깊은 감동… 창작뮤지컬 키우는 ‘아픈 역사’

입력 : 2017-08-06 20:29:08 수정 : 2017-08-06 20:2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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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극장 무대 대세로 ‘아리랑’ ‘영웅’ ‘명성황후’ ‘윤동주, 달을 쏘다’ ‘잃어버린 얼굴 1895’ ‘곤 투모로우’…. 1000석 안팎의 중·대극장에 오른 국내 창작 뮤지컬들이다. 공통점은 또 있다. 모두 구한말이나 일제강점기가 배경이다. 국내 대형 창작 뮤지컬은 한국적 소재를 쓸 경우 유독 근대사에 집중한다. 반면 고대·중세 한반도나 지금 우리 이웃의 삶을 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뮤지컬의 ‘근대사 사랑’은 우연의 일치일까.


국내 대형 창작뮤지컬은 한국적 소재를 쓸 경우 대립구도와 뮤지컬만의 판타지를 표현하고 관객을 확보하는 데 유리해 구한말·일제강점기를 주 배경으로 한다. 사진은 뮤지컬 ‘영웅’.
에이콤 제공
◆선명한 대립구도·손쉬운 공감대

뮤지컬 ‘아리랑’은 조정래 대하소설이 원작이다. 군산부터 만주까지 일제강점기 민초의 삶을 되살린다. ‘영웅’은 안중근 의사의 거사를 그렸다. ‘윤동주, 달을 쏘다’는 우리말로 시를 쓰고 저항한 시인의 일대기를 담았다. ‘잃어버린 얼굴 1895’는 명성황후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한국적 대형 창작 뮤지컬은 대부분 근대사가 배경이다. 중·소극장 뮤지컬이 6·25전쟁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소재를 차용하는 것과 대비된다. 주요 이유는 일제강점기가 대극장 뮤지컬다운 극적 표현을 하기에 제격이기 때문이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뮤지컬은 대립구도가 선명해야 하고, 이를 음악·춤으로 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며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는 이런 특성을 살리기에 좋다”고 설명했다. 원 교수는 또 “우리 창작 뮤지컬은 보통 한 달에서 두 달반 동안 공연한다”며 “짧은 기간에 깊은 인상을 주려면 풍전등화의 위기나 뚜렷한 대립구도를 활용하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원 교수는 “시대적으로 보면 최근 몇 년 사이 이런 콘텐츠가 부쩍 인기”라며 “우리 사회의 변동, 불안정한 정치, 외세에 흔들리는 정세를 빗대기에 용이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최대한 많은 관객을 확보해야 하는 대극장 뮤지컬의 숙명도 이런 흐름을 낳았다. CJ E&M 박종환 공연사업부 팀장은 “애국심을 다룬 역사적 소재는 관객 저변 확대에 도움된다”며 “일제강점기는 이야기 자체도 강렬하기에 앞으로 계속 다뤄지지 않을까”라고 밝혔다.

뮤지컬은 관객과의 거리감과 친근감이 동시에 필요하다. 일제강점기는 이런 필요에 딱 들어맞는다. 이색적이고 웅장한 볼거리를 올리는 데도 좋다. 전통과 신문물이 혼재해 다양한 무대가 가능하고, 억압과 항거의 역사를 역동적 군무로 나타낼 수 있다. 박병성 ‘더뮤지컬’ 편집장은 “우리 관객은 대극장 뮤지컬에서 블록버스터 같은 볼거리와 판타지를 원한다”며 “일제강점기는 드라마틱해 이야깃거리가 굉장히 많고 전근대와 근대문물이 결합돼 시각적으로 잘 꾸밀 수 있다”고 말했다.

대형 창작 한 편 올리는 데 최소 3, 4년 이상 투자되는 것도 이런 흐름을 부채질한다. 공연기획사 입장에서는 다양한 소재에 두루 도전하기가 쉽지 않다. 신시컴퍼니 최승희 홍보팀장은 “대극장 뮤지컬은 전 세대를 아우르고 기획사 자체로도 의미 있는 작품이어야 해 웅장하고 역사적인 소재를 다루는 것 같다”고 했다.


뮤지컬 ‘아리랑’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
◆사극·현대극 하려니 제작비가 걸림돌

비슷한 이유로 대형 창작 뮤지컬 중 현대극과 사극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현대극으로 뮤지컬만의 ‘판타지’를 구현하려면 특수효과와 화려한 볼거리를 넣어야 한다. 결국 제작비가 문제다. 원 교수는 “뮤지컬에는 감탄할 만한 볼거리가 필요한데 기껏 두 달 공연하는 환경에서는 제작비를 무리하게 들여 기술적 완성도를 추구하기가 힘들다”고 전했다. 박 편집장 역시 “대극장에서는 블록버스터급 무대효과를 보여줘야 하는데 현대가 배경이면 판타지가 깨지기 쉽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현대를 배경으로 하면 사랑·사람 이야기로 흐르는데 중·소극장에서는 소소한 감정에 호소하는 게 가능하나 대극장에서는 힘들다”며 “현대의 사랑을 담더라도 ‘그날들’처럼 시대를 얘기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사극은 의상·무대에 소요되는 제작비가 걸림돌이다. 메시지 전달에도 제약이 있다. 최 팀장은 “지난 14년간 회사 내부에서 뮤지컬 소재로 사극이 제안된 적이 한 번 정도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원 교수는 “영상은 클로즈업을 통해 연출자의 의도를 표현할 수 있으나 무대는 의상·세트가 다 어우러져야 해 오늘날의 얘기를 빗대서 표현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보편적 소재를 다룬 사극은 살아남기 힘들다. 박 팀장은 “사랑 등 일반적 주제의 사극은 자녀 교육용으로 보기 애매해 수요가 제한적”이라며 “젊은층은 기회비용 면에서 10만원 가까이 내고 사극 뮤지컬을 보려 하지 않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2007년 ‘대장금’ 2010년 ‘선덕여왕’이 뮤지컬로 제작됐으나 흐름이 이어지지 못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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