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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연극사회’와 ‘연기사회’의 같고 다른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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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31 21:17:42 수정 : 2017-07-31 21: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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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은 南·北을 이미 얕잡아보고
자신들 국익 위해 이용하고 있어
우호적으로 이웃나라 이끌려면
문화능력이 있어야 가능한지도
연극은 인류문명사에서 매우 획기적인 예술장르에 속한다. 운율에 의존하던 고대 ‘시(詩)의 시대’를 지나 사람들을 한 장소인 극장에 모아놓고 배우와 관객이 함께 삶을 호흡하는 극(劇)의 발견은 그야말로 극적인 사건이었다. 연극은 살아있음을 재현하고, 극화함으로써 삶을 요약하는 또 다른 삶의 현장이요, 교육장이었다. 아시다시피 그리스 비극은 서양문명의 정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비극을 삶의 교육텍스트로 사용했다.

오늘날의 예술은 시, 연극을 거쳐 소설의 황금기를 보내고 바야흐로 영화에 와 있다. 연극의 드라마적 요소는 오늘날도 삶의 필수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드라마적 요소가 없으면 재미없어하고 어떤 예술이나 축제에도 드라마는 필수요건이다. 말하자면 삶은 드라마이고, 드라마적인 것이야말로 삶이다. 인간의 본능 가운데 유희성은 주목을 받았고, 오늘날 인간을 ‘놀이의 인간’(Homo Ludens)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박정진 세계일보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문화예술장르에서 연극은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사회학적으로 흔히 ‘연극사회’라고 하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삶은 연극이지만, 역으로 삶을 하나의 대본에 따른 완전한 연극으로 탈바꿈하면 그 사회는 꼭두각시사회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북한 사회를 ‘연극사회’라고 말했다. 최고통치자의 명령 한마디에 따라 사람들의 운명이 바뀌는 그야말로 꼭두각시처럼 살아가는 북한 사회를 두고 한 말이었다. 북한 사회의 꼭두각시성은 대남방송을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자연스럽지 못한 그들의 말과 행동거지를 보면 참으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북한의 실정은 김일성 통치 시절보다 오늘날 점점 심화되는 것 같다. 그러한 이면에는 북한 자체의 모순과 세계정세가 상호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북한은 미사일을 계속 발사하고 있고, 핵과 미사일은 북한 정권의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생존적 차원의 구속임이 드러나고 있다. 사람이 자신이 살아오던 삶의 관성을 일순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남북한의 대치국면과 이념대립을 보면 해방공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한민족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평화적으로 타결할 능력이 없는 것인가.

북한이 ‘연극사회’라면 남한은 ‘연기사회’인지도 모른다. 남한의 정객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민주적 혹은 민중적 이미지를 연기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국민의 현재적 삶보다는 삶을 핑계한 권력자들의 당쟁은 도를 넘은 것 같다. 겉 다르고 속 다른 모습은 저들의 발언과 행동과 표정에서 읽을 수 있다. 큰일은 함부로 처리하고 작은 일에서는 민주적인 양 과시하는 모습은 때로는 국민을 바보 취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쉬운 원전포기 선언, 박정희 전 대통령 우표발행 취소 등은 조급과 졸속의 혐의가 없지 않다. 심지어 바로 직전 정권의 청와대 문서 공개 등은 역대 어떤 정권도 결코 하지 않았던 일이다. 이념형의 정권은 불상사를 나을 위험이 있다. 이념형과 합리주의는 다른 것이다. 이념형은 과거 특정 이념의 틀에 현실을 재단하는 것이고, 합리주의는 현실을 바탕으로 이성적인 판단을 내려가는 것이다. 현 정권의 정치스타일은 이념형에 가깝다는 국민들의 우려가 있다. 정치적 이념형은 종교적 근본주의를 닮아서 자칫 독선과 어설픈 소신으로 역사를 후진시킬 위험이 있다. 이념과 이상은 필요하지만 언제나 수정될 것을 역사는 요구했다.

오늘날 국제정세는 복잡다단한 이해관계 속에서 국가이익의 달성을 점차 어렵게 하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만 하더라도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 후 바로 달라질 것을 국내용으로 떠들었음이 드러났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에서 수세로 몰린 것은 결코 그것과 무관하지 않다. 소탐대실의 전형적인 것이다. 못난 가장은 흔히 집안에서는 큰소리치지만 집밖에 나가면 아무 소리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미 당쟁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정치는 섣부른 연기나 쇼가 아니다. 쇼를 좋아하던 국민도 자신의 삶이 핍박해지면 어느 날 갑자기 돌아설 것이다. 정치는 도리어 포커페이스이다. 최종적인 국가 이익이나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속셈을 드러내지 않는 정치인들의 게임인 것이다. 정치는 국민의 생존을 걸고 벌이는 게임이다. 만약 정치가들이 시대착오적인 이념의 소유자들이라면 우리는 이미 실패한 국민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 정치가 인기에 연연하는 코미디언이나 연예인들의 농락이나 농단의 대상으로 전락한다면 머지않아 역사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중국과 미국은 북한과 한국을 이미 얕보고 자신의 국익을 위해 이용하고 있다. 그렇게 보면 우호적인 우방이란 없는 것이다. 도리어 우호적으로 이웃나라를 이끄는 것은 자신의 문화능력이 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북한이 문화능력이 없는 것은 이미 국민의 배도 채우지 못하는 데서 드러났고, 한국은 소득에 걸맞은 국제·외교적 대접을 받지 못하는 데서 드러났다.

국가 철학이 없으니 국가 정체성이 없고, 국가 정체성이 없으니 국민소득과 별개로 국가의 위상이나 품격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돈 버는 데만 혈안이 됐던 것 같다. 도덕과 인격은 사라졌고, 있는 자나 없는 자나 이기주의와 족벌주의에 매몰돼 있다. 연극사회와 연기사회는 오십보백보인지도 모른다.

박정진 세계일보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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