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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적 판단으로 볼 수 없다"…국민 신뢰 심각한 훼손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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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27 19:17:38 수정 : 2017-07-27 22: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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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내용 보니 / 정치적 관여 배제 ‘팔길이 원칙’ 거론 / 예술창작활동 지원 결정 자율성 강조 / “좌편향 시정하려면 투명하게 했어야… 사익추구 목적 아냐 국정농단과 달라” / ‘사직강요’ 직권남용은 판단 엇갈려 / 1급은 해당 안 돼… 노태강 伴만 유죄 / 김기춘·조윤선 모두 항소 의사 밝혀
법원은 27일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블랙리스트’) 작성·실행 행위를 정부의 정책적 판단으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그 어떤 명목으로도 포용되지 않는 직권남용 행위”라고 따끔하게 꾸짖었다.

◆“‘세월호 선언’ 등 배제 기준 합리성 없어”

당초 김기춘(78) 전 청와대 비서실장 측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블랙리스트를 본 적도 없고 만약 예술계 지원배제 업무를 했더라도 편향된 정부 지원을 바로잡는 ‘비정상의 정상화’였다”는 논리를 폈다.
법정으로 박근혜정부의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 작성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왼쪽 사진)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하지만 재판부는 지원배제 기준이 합리적이지 않고 절차가 불투명했던 점을 지적하며 이를 일축했다. 재판부는 “좌편향 시정을 통해 정책 결정을 시행한 것으로 평가받으려면 투명하게 추진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야당 지지’, ‘세월호 시국선언’ 같은 지원배제 기준 역시 자율적 심사과정에서 적용돼야 할 기준이라고 보기 어렵고 합리성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예술창작 활동에서 불필요한 정치적 관여를 배제하는 ‘팔길이 원칙’(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의 중요성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현행 관련 법령이 문화예술 및 영화 진흥을 위한 기금의 관리·운용을 문화예술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에 맡기고 그 위원의 직무상 독립을 보장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제도는 예술창작 활동에 대한 지원을 정치권력 또는 문화관료의 간섭에서 벗어나 전문가들의 자율적 결정에 맡긴다는 팔길이 원칙을 천명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태강 사직 강요는 위법…문체부 1급은 위법 아냐”

김 전 실장이 노태강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현 2차관)과 문체부 1급공무원 3명의 사직을 강요했다는 혐의에 대해선 유무죄 판단이 엇갈렸다. 재판부는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과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나쁜 사람’으로 찍힌 노 전 국장의 사직을 강요한 것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당시 2급공무원이던 노 전 국장은 공무원법상 신분이 보장되는 위치라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대통령에게 인사권이 있는 점을 감안해도 마찬가지라고 봤다. 하지만 1급공무원에 대해선 “국가공무원법상 신분보장 대상에서 제외되기에 의사에 반해 면직됐더라도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 전 실장 등의 직권남용이 비선실세 최순실씨 등 다른 국정농단 관련자들과 달리 특정 개인의 사익 추구를 위한 게 아니라는 점을 양형에 참작했다. 재판부는 “보수주의를 표방한 대통령을 보좌하는 정무직 공무원들이 문화예술계가 지나치게 좌편향돼 있다는 인식에 따라 이를 단기간에 바로잡겠다는 의욕이 지나쳐 범행에 이른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기춘 측 “부당” 항소 뜻 내비쳐

블랙리스트 사건의 ‘정점’으로 지목되며 징역 3년 실형을 선고받은 김 전 실장 측은 “부당한 판결”이라며 사실상 항소할 뜻을 내비쳤다. 김 전 실장 변호를 맡은 법원장 출신 김경종 변호사는 판결 직후 “직권을 남용한 것인가에 대해 의견이 다를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전 실장이 블랙리스트) 지시를 직접 한 사실이 없다는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조윤선(51) 전 문체부 장관은 이날 6개월 가까운 수감생활을 마치고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돼 집으로 향했다. 조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 관여 혐의가 무죄로 인정된 데 대해 “저에 대한 오해를 풀어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위증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 데 대해선 “항소해 다투겠다”고 밝혔다.
집으로 박근혜정부의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의 작성에 관여한 혐의로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은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7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오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의왕=하상윤 기자

공직자가 블랙리스트 관련 행위로 기소돼 사법부 판단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례가 없는 일인 만큼 이를 정당한 정책 결정으로 볼 것인지, 부당한 직권남용 행위로 볼 것인지를 놓고 법조계 내에서도 이견이 분분했다. 항소심에서도 블랙리스트를 둘러싼 첨예한 법리적 공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장혜진 기자 jangh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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