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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제때 막지 못한 학교폭력으로”…한 초등생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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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28 06:00:00 수정 : 2017-07-28 15: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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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2016년이었으면 좋겠다.”

김유성(14·가명)군은 지난 1년여가 지옥같았다. 타임머신을 타고 모든 일이 벌어지기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지난해 3월24일 경기 용인의 한 초등학교 6학년 교실. 아침 등교시간에 유성이와 이정수(가명)군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유성이가 자신의 짝인 정수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먼저 날렸고, 정수도 발차기로 맞섰다. 마침 교실에 있던 담임교사 A씨가 이들을 말렸다. 말리는 중에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유성이는 다시 주먹을 뻗었다.

유성이는 학기초부터 정수에게 폭행과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 특히 다툼이 있기 전인 21일에는 정수에게 가슴 쪽을 맞아 멍이 들었다. 어머니 신모(50)씨는 담임교사인 A씨에게 연락해 이를 알렸다. 하지만 다음날 A씨는 정수와 주변 학생들에게 이 같은 사실이 있느냐고 물어본 뒤 “그런 적 없다”는 대답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유성이의 가슴 부위 상처는 확인하지 않았다. 유성이는 ‘선생님에게 고자질했다’는 이유로 정수에게 또다시 정강이 등을 맞았다고 말했다.

“내가 얼마나 아픈지 알려면 정수도 똑같이 아파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성이는 다툼이 있던 날, 일기장에 이 같이 적었다. 그리고 자신과 정수를 말린 선생님에 대해 “친구들이 있는 앞에서 서로 맞은 데를 똑같이 때리라고 했다”며 “나는 그때 깜짝 놀랐다”고 썼다. 선생님이 유성이는 정수의 얼굴을 두 대 때렸으니 그만큼 얼굴을 맞고, 정수에게 가슴을 맞았다고 하니 정수의 가슴을 때리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유성이는 이전에 정수가 때린 것은 둘째치고 당일 발차기를 당했는데 선생님은 ‘헛발차기’였다며 가슴만 한 대 때리라고 해서 억울했다고 한다.

27일 A씨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자신이 때리라고 지시한 적은 없다”며 “유성이가 자기는 가슴을 맞았고 정수 얼굴을 두 대 쳤다고 해서, 그러면 똑같이 되기 위해서 유성이가 정수 가슴을 치고 정수는 유성이 얼굴을 두 번 쳐야 하는데 그렇게 하겠느냐 (의사를) 물어본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그 건으로 유성이 어머니가 저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학교 측은 A씨가 교사 경력이 짧다보니 바람직한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 같다며 생활지도 강의 30시간 연수를 지시했다.

유성이는 다음날부터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A씨의 비교육적 지시에 충격을 받았고, 담임 선생님이 무섭다는 이유였다. 신씨는 “아들을 때리게 한 담임 선생님과 가해자인 친구가 교실에 그대로 있는데, 어떻게 아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었겠느냐”고 토로했다. 더욱이 신씨는 지난해 4월에 개최된 학교폭력대책위원회(학폭위)에서 유성이가 일방적인 가해자로 결정돼 버렸다고 울분을 토했다.

학교 측은 “당시 유성이가 정수를 먼저 때린 것은 반 아이들 대부분이 봤다”며 “그 전에 정수가 유성이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아서 그 같은 결정이 났다”고 말했다. 또한 “신씨가 사전 고지에도 학폭위에 나오지 않았고 아들이 피해자라면서 어떤 근거도 내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학교 관계자는 “학교에서는 당시 유성이가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신씨도 다툼이 있던 당일 유성이가 먼저 정수를 때린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유성이가 가슴을 맞았다고 선생님에게 신고했을 때는 학폭위가 열리지도 않았다”며 “그때 조치가 있었으면 우리 유성이가 정수를 때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가해자로 몰리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억울해했다. 먼저 발생한 학교폭력에 대해 제때 조치 받지 못한 것이 발단이었지만, 이런 사정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2년 개정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안’에 따라 교내 폭력이 발생할 경우, 학교는 의무적으로 학폭위를 열어야 한다. 해당 학교의 학폭위 규정에도 학교폭력이 발생한 사실을 신고받은 경우 바로 학폭위를 열어야 하고, 교원이 이를 알게 됐을 경우 학교장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신씨가 A씨에게 학교폭력 사실을 알렸음에도 이 같은 조치는 없었다. 이후 A씨는 학교폭력 신고를 제대로 조치하지 않은 이유로 교육청으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았다.

당시 상황을 감사한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해당 담임교사의 교육 등 지도감독을 철저히 하지 못한 점, 학교폭력 사안에 대한 초기 대응에 미흡했던 점, 학폭위 구성의 부적정한 점 등이 있어 관리자 등 관련자 3명에 대해 신분상 처분을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학폭위에서 유성이가 가해자로 결정된 부분에 대해서는 번복하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당시 유성이 측에서 재심청구나 분쟁조정 신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씨는 이에 대해 “학폭위 결과와 관련해 학교로부터 어떤 전달도 받지 못해 재심이나 분쟁조정은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건 유성이었다. 유성이는 학교에 결석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집에서 인터넷 교육을 통해 공부를 계속했다. 하지만 사건 당시 충격으로 불면증과 대인기피증상을 보여 정신과 진료까지 받았다. 신씨는 “생활기록부 상에 학교폭력 가해자로 적시가 돼 있는 상태에서 다른 학교로 전학을 보내는 건 아들이 가해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돼서 전학도 시킬 수 없었다”고 답답해했다. 그 사이 신씨는 국민신문고와 총리실 등에 백방으로 진정을 넣었지만 유성이를 구제할 방법은 없었다.

초중등교육법에 따르면 수업일수(190일)의 3분의 2 이상을 출석하지 않으면 졸업을 할 수 없다. 학교폭력의 피해학생의 경우에는 보호를 위해 필요한 결석을 출석일수에 산입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이 있지만, 학폭위에서 ‘가해자’로 못 박힌 유성이는 해당되지 않았다. 결국 유성이는 결석 장기화로 올해 2월 열린 졸업식에 가지 못했다.

유성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려면 학교로 돌아가는 방법 밖에 없었다. 신씨는 어쩔 수 없이 올해 3월부터 유성이를 다시 학교에 보냈다. 1년 후배들과 같은 반에서 생활하는 유성이는 같은 반 학생들이 자신을 향해 “중학교 형 아니야”라고 수군대는 소리가 힘들었다. “엄마, 난 졸업장·졸업앨범도 없네요”, “난 6학년 친구가 모두 사라졌어요”라며 의기소침해 질 때도 있었다. 신씨는 “한번은 유성이가 ‘엄마, 지난 밤 꿈을 꾸었는데 죽어있는 상황이 마음이 편안하고 너무 좋았어’라고 해서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며 “아들이 없는 곳에 가서 몰래 혼자 울 수밖에 없었다”고 힘들어했다.

유성이는 지난 5월15일 스승의 날에는 일부러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자신과 같이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이 중학생이 돼서 학교에 찾아올 텐데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해서 미리 피한 것이다. 신씨는 “아들이 피해자로 인정돼 졸업 소급을 받았으면 하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라며 간절하게 말했다. 유성이가 졸업 소급을 인정받으면, ‘수시 입학’으로 바뀐 현 중학교 입학 절차에 따라 바로 중학생이 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김선영 기자 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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